북유럽에서 가족과 지내는 여행
개막식 다음날 나는 곧장 스웨덴으로 갔다. 아프리카로 휴가를 떠난 동생네가 집에 돌아오기도 전에 말이다. 나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는데, 동생은 스웨덴 사람과 만나 결혼했다. 동생은 벌써 햇수로만 7년 넘게 스웨덴에서 살고 있다.
스웨덴을 아세요? 스웨덴은 북유럽 복지국가 중 하나로 인구 천만의 아주 귀엽고 인구 밀도도 낮은 나라다. 우리가 알만한 스웨덴의 기업으로는 볼보, 이케아, 그리고 H&M 등이 있다. 스포티파이도 스웨덴 기업의 스트리밍 서비스다. 말괄량이 삐삐 (Pipi longstocking)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도 스웨덴 사람이다.
북유럽은 꽤나 부유한 경제강국이다. 스웨덴은 1인당 GDP가 세계 14위로 독일이나 캐다나, 영국보다 잘 산다. 하지만 노르웨이, 덴마크 등의 인근 북유럽 국가는 더 상위에 있어 동생의 남편 요서방은 아 우리가 이겨야 하는데!, 라며 배부른 소리를 했다.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중국을 이기고 싶어 하듯이 아무래도 주변국과 더 잘 비교하게 되는 것 같다.
또, 스웨덴은 노벨상 수상자를 정하고 시상식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올해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곳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이다. 시상식은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리며 스웨덴의 왕 구스타프 6세가 수상자에게 직접 노벨상을 시상한다.
노벨상의 주인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스웨덴인 화학자다. 이 순수한 과학자는 평화를 위해 무기를 만들었다. 폭탄을 만들었다는 말을 들으면 무서워서 전쟁을 하지 못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인간 본성이 그러하듯이 이는 실제 전쟁에 쓰이며 무기 발전에 이용된다. 오펜하이머도 노벨과 마찬가지로 원자 폭탄을 만들며 이것이 사람에게 쓰이며 그리 잔인하게 죽이는데 쓰이는 건 원치 않았다. 이 순진한 과학자들이 느꼈을 충격과 내면의 갈등은 얼마나 컸을까. 노벨은 자신이 번 막대한 돈을 후대 과학자를 지원하는 상을 만드는 데 쓰기로 한다.
스웨덴은 반 사회주의 국가(복지국가)이면서 굉장히 진보한 나라이다.
15년 전쯤 우리나라에도 북유럽 국가 붐이 한 번 불었었는데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아이들이 행복하고 교육지수도 높은 나라로 유명했었다. 실제로 대학원까지 모든 교육은 무상이며 학교 들어가는데 필요한 준비물까지 싹 다 지원된다. 게다가 스웨덴 국민은 대학 생활비를 무이자로 최장 20년쯤 빌릴 수가 있다.
이렇게 교육을 평등하게 받을 수 있는 환경이어서 교육지수가 높은 것 같다. 요서방은 북쪽의 작은 마을 피테오에서 자랐는데 요서방의 두 형들을 비롯해 친구들 모두 똑똑하고 아는 것이 굉장히 많다. 우리 요서방은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 스웨덴은 여성 비율이 낮고, 인구 밀도가 낮고 외출 모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솔로로 지내는 요서방의 친구들이 많다. 다들 사지 멀쩡하고 능력도 좋다. 대체로 스웨덴인들은 차분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 살이 괜찮다면 연락바란다 호호.
7월 27일 샤를 드골 공항에서 환승 구간인 핀란드 공항에 들어섰다.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북유럽 나무를 닮은 높은 나무 조형물과 동그랗고 따뜻한 빛 전구들. 그것도 있지만 가장 다른 것은 사람들의 분위기다. 떠들썩한 샤를 드골, 아니 프랑스 대부분이 그렇다. 사람 많고 말도 많은 프랑스 공공장소에 익숙해져 있다가 핀란드 공항에 들어오니 쥐죽은 듯 조용했다.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데. 4명의 단체 손님이 공항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왜 소음이 없지? 정말 조용하다. 카페에서 일하는 두 직원은 서로 말을 할 수 있는데도 각자 등을 돌리고 본인 할 일을 했다. 사람들은 웃지 않지만 편안한 표정으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는 이 분위기의 격차에 적응하는데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무민샵 앞에서 양말을 살까, 귀여운 손톱깎이 세트를 살까 고민하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동생의 핀잔을 듣고 마음의 눙물을 머금은 채 가게를 나왔다. 공항 창 밖 풍경도 어쩜 그렇게 차분하다. 북유럽은 사람들이 정말 차분하다. 또, 겸손하기도 하다. 다른 유럽이랑은 조금 다르다. 프랑스와 다른 느낌의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이다. 그들의 삶은 도파민 없는 차분하고 고요한 홈바디에 가깝다. 실내에서 따뜻한 커피와 담요, 몇 명의 친한 친구와 함께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이미지랄까.
스웨덴 클럽에 가면 터치나 과한 흥 없이 각자 리듬을 살짝씩 타며 대부분은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흥 많은 동생은 이런 점을 조금 아쉬워했다. 나는 춤추는 걸 좋아하는데 한국의 클럽 문화가 싫어서 한 번 가고 다시는 가지 않았는데(저기 사회적 거리좀요) 스웨덴 클럽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그래서 동생은 차분하고 이지적인 스웨덴을 나에게 지속적으로 강력 추천했다. 하지만 나는 기후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으로서 연중 기온이 영상인 곳에서 살고 싶다고 정중히 거절해왔고. 나는 갑자기 찾아든 핀란드 공항의 조용함에 적응이 안 되었다. 차라리 시끌시끌한 프랑스가 낫지 않을까?
춥고 일조량이 낮은 것은 스웨덴이 가지고 있는 크나큰 단점 중 하나다. 위도 때문에 여름에는 해가 거의 하루종일 떠 있다가, 겨울에는 어둠이 반복되는 나날이 계속된다. 여기에는 초파리가 없어 음식물 쓰레기 통을 열어둔다. 심지어 바퀴벌레도 없다. 그래서 동생은 처음에 해충이 없다니 아주 좋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 생각은 바퀴벌레도 못 살 정도면 인간도 살기 힘든 것이구나... 라는 깨달음으로 바뀌었다고. 해를 많이 보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타민 D를 필수로 섭취한다. 그리고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사실 스웨덴이 복지국가가 된 데에는 이런 기후 영향이 컸다.
스웨덴은 과거에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률이 높았다. 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행복증진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복지국가를 채택한 스웨덴에서는 인생에서 맞이하는 경제적인 고민거리에 대한 기본보장이 잘 되어있다. 노후는 당연히 보장되며, 구직 과정이나 실업 과정에서 월급의 80%가 제공된다. 아이를 낳으면 부모 모두 6개월 간 육아휴직을 하며 월급 비율을 줄이면 한 사람당 거의 9-10개월까지도 휴직이 가능하다. 아파서 병원에 가면 무슨 병이든 내야 하는 금액은 15만원 이하다. 그 이상은 모두 국가에서 지원한다.
따라서 북유럽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복지국가로 공공 재분배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남여평등 지수 또한 거의 세계 1위다. 여성임원 비율 40%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여성임원 비율이 현재 약 27% 정도라고 한다. 이곳의 문화는 남녀 함께 일하고 가정일 또한 함께 책임진다. 여자도 본인의 자신 몫의 짐을 들 수 있다고 교육받다보니 여기선 여성들에게 차 문을 열어주는 게 실례되는 행동이라고 한다. '나도 할 수 있는데 왜!'이렇게 생각한다고. 물론 우리 요서방은 짐도 잘 들어주고 매너가 아주 좋다.
만약 자녀가 있는데 이혼을 하면 양육부담의 시간도 반반이다. 거주지는 한쪽이겠지만 자녀는 반은 엄마와 반은 아빠와 시간을 보낸다.
그간 한 달의 여행으로 인해 내 일상의 루틴이 깨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을 하고, 주 2-3회 운동을 하고 집 밥을 해먹는 그런 평범하지만 건강한 일상 말이다. 나는 스웨덴에서 보내는 2주 넘는 시간 동안 나의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을 되찾아보기로 했다.
동생네로 들어온 이튿날에는 장을 봐서 연어 샐러드를 해먹었다. 집 가까이에 호수가 있어 달리기도 매일 하러 나갔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소소하게 쌓인 긴장감과 낯익은 가족의 공간에 들어온 안도감이 더해져 낮이나 되어서야 잠이 깼지만. 낮에 일어나면 어김없이 호수로 갔다. 여름이라 많은 사람들이 햇빛을 받으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동생이 돌아온 후로는 동생과 함께 뛰었다. 한 20분 내외여도 뛰고 나면 체온이 높아지고 숨이 거칠어지는 것이 좋았다. 생명의 역동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살아있는 생생한 기분 말이다.
여기는 뛰는 사람이 정말 많다. 호수를 달리면서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은 라떼파파다. 라떼파파란 한 손에는 라떼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버님들을 말한다. 육아휴직을 필수로 하니 낮에 공원에 라떼파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들은 공원에서 만나면 육아에 대한 이야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유모차를 가지고 달리기를 하는 라떼 파파들도 있다는 거다. 스웨덴에는 달리기가 가능한 기능성 유모차가 있다. 유모차 앞바퀴를 손으로 들고 뛰는 거다. 나한테는 정말 흥미로운 광경이었는데, 그들은 정말로 유모차를 잡고 달리기를 한다. 때로는 웃통을 벗고 뛰기도 하신다. 나는 양심상 잘 안 봐서 모른다. 다들 몸이 좋으시더라.
스웨덴은 또 굉장히 진보적인 국가로 모든 성을 평등하게 생각한다. 일 년에 한 번 게이 퍼레이드가 크게 열리는데, 길을 막아 스톡홀름 시내를 가로지른다. 이 때 온 시민들이 나와서 이 축제를 즐기는 흥겨운 분위기다. 기업들도 퍼레이드 전후로 소수성지향자를 지지하는 광고를 내보낸다. 때가 마침 딱 맞아 동생과 퍼레이드를 구경했다. 기업로고를 담은 차들이 퍼레이드에서 행렬이 이어지고, 춤을 추는 행사자들도 많았다. 우리나라는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보수적인 쪽이 많지만 반대로 스웨덴은 성소수자를 존중하지 않으면 욕먹는 분위기다.
나는 스웨덴에 있는 동안 동생네 덕분에 편안하게 잘 지냈다. 중국인 부부네와 수영장도 가고, 중국 대 스웨덴인 탁구 경기를 보며 응원도 했다. 요서방의 만 서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들이 지방에서 스톡홀름으로 내려왔다. 스웨덴식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 올드카 구경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한식도 실컷 해먹고 빈티지샵 구경도 했으니 평온한 가족과의 이 주였다.
티비로 올림픽을 보는 것도 즐거운 일상 중 하나였다. 한국은 양궁뿐 아니라 펜싱의 본국 프랑스에서 펜싱 금메달도 선전해서 뿌듯했다. 동생네와 함께 한국과 스웨덴의 경기들을 보며 응원하던 것도 참 즐거운 추억이었다. 나는 참 운이 좋다. 유럽 여행 중에 거쳐갈 든든한 혈육이 있고 또 다른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북유럽 가족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젠틀하고 개방적인 복지국가 스웨덴. 교육과 출산 걱정없는 스웨덴. 아바를 비롯한 음악가와 스포티파이로 유명한 음악 사랑의 나라. 스웨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