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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비 Oct 30. 2024

개막식 날 벌어진 시민혁명

파리 올림픽 개막식 당일 분위기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이 다가왔다. 올해 이맘때 쯤 프랑스에 오겠다는 결정을 한 데에는 올림픽 기간과 비슷하다는 것도 큰 작용을 했다. 가장 기대되었던 점은 파리 올림픽 개막식이다. 센 강변 위에서 배를 통해 등장한다는 프랑스의 신박한 계획은 나의 마음을 쫑긋 세우게 만들었다. 센 강을 따라서 각국 선수들이 입장할 때 강변 위에 지나다니는 시민들에게 개막식을 볼 수 있게 하겠다는 생각도 너무나 멋졌단 말이지.



프랑스는 국토 면적이 우리나라(남한) 면적의 5배의 크기에 달하는 큰 나라이다. 그에 비해 수도 파리는 서울의 1/6밖에 안되는 아주 작고 밀집된 도시다. 대부분의 나라가 올림픽을 개최할 때, 개최 여파로 인한 도시의 번잡함을 줄이기 위해 수도 중심부보다는 가장자리나 외곽에서 개막식을 개최한다.




그런데 파리 올림픽 계획은 대담했다. 파리의 경기 스타디움들도 파리 외곽인, 일 드 프랑스(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에 있는데 개막식을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센 강에서 열겠다는 말이다. 그것도 다리 위에서 개막식을 볼 수 있도록 하고 말이지. 국제 이미지가 프랑스하면 파리이긴 하지만 진짜로 파리 중심부에서, 에펠탑 앞에서 행사를 거행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담한 생각이었다. 파리 올림픽 계획 조감도를 봤는데 아주 아름다운 올림식 개막식이 그려젔다. 적어도 개막식 만큼은 꼭 여기 있어야겠어. 코로나 이후에 다시 관광 소득을 얻겠다는 듯 올림픽 기간의 숙소 가격은 치솟고 있었다. 그리하야 나는 센 강가와 멀지 않은 곳에 개막식 숙소를 미리 하나 예약해두었었다. 파리 올림픽에 있어서 내 유일한 목표는 개막식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랬겠지만, 파리 올림픽이 개막식이 사람으로 가득차고 붐빌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내 계획은 개막식 당일 파리에 올라가서 개막식을 보고, (저녁에 시작하니까) 그 다음날에 다른 곳에 이동하는 거였다. 내 수중에는 작년에 예약한 축구 경기 티켓 두 장이 있었다. 몇 일 후에 낮 시간대라서 인근 국가 벨기에 혹은 보르도와 같이 인근의 다른 도시를 몇 일 구경하고 다시 와서, 당일 경기만 보고 또 이동하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차병원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수도권에서 산 이력을 가진 나는 아직도 대도시에 있으면 눈이 돌아갈 것 같은데, 오밀조밀한 파리는 더 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해도 파리에서 이렇게 조용한 개막식을 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7월 26일 파리 올림픽 개막 당일, 나는 리옹에서 출발해 파리에 도착했다. 갈라진 캐리어 바퀴 고무를 위태롭게 바라보며 손으로 들다가, 조심스럽게 끌며 숙소로 향했다.



골목을 건너오는데 이상하리만치 여유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거리에 사람들이 붐비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했다. 나는 숙소에 미리 짐을 내려두고 밖으로 나왔다. 천천히 밖을 걸어 다니는데 밖은 사람 반, 경찰 반이었다. 닫은 식당들이 많았고 사람이 조용했다. 테러 위협과 안전문제로 인해 프랑스는 개막식 직전 인증을 받은 사람만이 센강과 인근의 도로를 지나다닐 수 있게 했다. 그러니 강을 건너려면 올림픽 패스가 필요했다. 나도 몇 일 전에 그걸 알고 부랴부랴 올림픽 티켓을 인증해 받았었다. 패스쥬 (Pass Jeux) 통행증을 받으면 마치 기차 온라인 티켓처럼 큐알코드가 나온다.



다리 근처로 들어가봤다. 경찰들이 특정 부근에 통행구간을 열고 패스쥬를 확인했다. 패스쥬를 찍고 센 강 인근으로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오늘 여기서 개막식 하는 거 맞아?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조용했다. 센 강을 쳐다봤더니 똥물이다. 솔직히 여기에 수영할 용기를 낼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시테섬 쪽으로 들어가서 천천히 걸어봤다. 개막식 행사를 볼 수 있게 하는 큰 스테이지가 하나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복잡할 시테섬에도 사람이 없었다. 몇몇 목에 신분을 착용한 기자가 간간히 지나갔다. 그 수보다 훨씬 많은 경찰이 지나다녔다.


패스쥬의 통행구간은 요상하게 지정이 되어 있어서, 강변을 따라 있는 큰 길 이후에도 중간 정도의 길과 작은 길까지 조금 더 깊게 뻗어있는 구간들이 있었다. 거기에는 뉴스에 나왔던 문닫은 식당들이 있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식당 입면 바로 앞에 펜스가 쳐 있었다. 그러면 야외석을 못 만드는 건 둘째치고 통행의 어려움이 생긴다. 긴 길을 굽이 들어 걸어가 그 식당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고, 앞이 펜스니까 굳이 그 식당에 들어갈 마음도 사라진다. 실제로 개막식 당일에는 문을 닫은 식당들이 많았다.



또, 문은 열었지만 손님들이 도통 없는 곳도 많았다. 그 중에는 기대를 받았던 데에 비해 최근 프랑스 측에서 실행하는 제도들에 실망스러운 행보가 많았기 때문에 파리를 찾는 시민들이 훨씬 적었을 것으로도 추정된다. 많은 사람들이 얽혀있는 도시인 만큼 파리 시민들의 반발도 컸다.



올림픽 기간대에는 대중교통비가 2배였다. 원래 파리의 대중교통은 편도 2유로 대, 한화로 3000원 대로 우리나라의 2배 이상이다. 그런데 4유로로 올리겠다고 하니 6000원은 좀 선넘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중교통편이 더 많아졌으면 모르겠는데, 오히려 공사를 하거나 서지 않는 역들이 생겨 이동이 불편해졌다. 몇 개의 호선 중 일부는 운행을 안하거나 정차를 안하는 역들이 있는데, 구글 맵으로는 업데이트가 잘 안되어 있다. RATP 어플을 이용하면 가장 정확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숙소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가 알려주었다. 이걸 몰랐다면 많이 헷갈렸을 것 같다.


또,(안 그래도 더러운데) 트라이애슬론을 열려는 센 강에 똥을 누겠다는 사람들이나 여름에 에어컨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올림픽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국제 사회의 여론들도 많았다. 그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개막식날 아침은 정말이지 조용했다.





파리 올림픽 개막식 당일
조용한 시테섬 방향









다행히 나와 동행이 보기로 한 장소는 운영을 하고 있었다. 나는 한 식당 앞에서 동행을 만났다. 식당 이름은 ‘르 프로코프’. Le procope는 나폴레옹이 방문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깊고 오래된 이곳은 1686년부터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파리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카페이자 식당이다. 역사 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라고 한다. 그만큼 유명한 식당인데 이 날은 파리가 붐비지 않아 오히려 운이 좋았다. 따로 예약을 하지 않았는데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안내 받아 1층의 자리에 착석할 수 있었다.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앞에 카펫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곡선으로 나 있다. 신데렐라의 궁전에서 나올 법한 둥근 계단 형태 말이다. 내부는 정말 옛 시대에 온 것 같은 느낌의 인테리어였다. 쇼파도 옛날 풍의 느낌이고 벽지도 그랬다. 나무 베이스의 내부와 분홍 계열의 쇼파의자, 그리고 따뜻한 색감의 노란 조명들까지. 클래식하고 따뜻한 고급 식당 같이 생겼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동행은 육회 타르타르를, 나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시켰다.



르 프로코프 식당


음료나 디저트 혹은 다른 애피타이저 같은 음식을 원하는 지 물어 보셨지만 그걸 먹으면 나같이 평범한 덩치의 동양인의 위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 프랑스의 음식점에서 정석의 코스는 음료를 먼저 시키고, 디저트나 애피타이저 중 1개 이상, 그리고 메인 음식을 시키는 거다. 간단히 먹는 식당의 경우 메인 음식과 음료 정도를 시킨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먹으면 배가 빵 터질 것 같다. 왜냐하면 기본적인 1인분의 양이 많기 때문이다.


스테이크를 시키면 그것 자체도 많은데, 바게트나 감자튀김이 같이 나온다.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먹는걸까. 게다가, 우리 집은 종교는 안 믿지만 밥 먹을 때 물은 피해서 먹어야 한다는 음료 불소화설은 믿는다. 고로 밥 먹을 때 물이든 어떤 음료든 안 먹는 게 익숙하다. 반면, 유럽에서는 밥을 먹을 때 간단한 음료나 술을 곁들이는 것이 보통의 수순이다.


평범한 젊은 사람들의 경우 끼니와 함께 콜라를 시켜 먹는 경우도 많다. 나의 개인적인 추측으로는 유럽 음식은 단백질 위주로 된 음식이 많아 우리나라가 탄수화물을 주로 먹으며 충족하는 당을 콜라로 대신 갈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동물성 식품은 탄산으로 밀어내기도 좋고 말이다.


그리고, 생각 외로 감자튀김을 진-짜 많이 먹는다. 물 프릿츠(홍합 감자튀김) 는 바다 인근 도시의 대표음식이다. 음식점에서 메인 음식을 시키면 감자튀김이 나오는 경우가 꽤나 많고, 하나의 음식처럼 쓰여 있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일반 프릿츠만 파는 음식점 (감자튀김집)도 곳곳에 많다.


르 프로코프에서도 어김없이 바게트와 감자튀김이 사이드로 나왔다. 나는 사실 고기를 거의 안 먹는다. 그래서 평소보다 훨씬 많은 단백질을 먹는 것만해도 포만감이 충분했다. 맛은 어땠냐고? 아주 맛있었다. 그야말로 굽기가 딱이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움은 아니지만 살짝 질겨서 충분히 씹어야하면서도 적당히 부드러운 정도였다.






밥을 먹고 일찍이 개막식을 보기 위한 자리를 잡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패스쥬를 통해 다리쪽을 가려고 했으나, 경찰이 막아 섰다. 아까 들여보내주었던 것과 달리 패스쥬가 안 통한다고 한다.

걸어서 다른 입구를 또 찾아 갔는데, 이번에도 안된다고 했다.


출입문 앞에 서 계시던 한국분께서 통제가 강화되어서 다리를 못 지나다니게 한다고 알려주셨다. 개막식 표가 있는 사람만 다리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나머지는 파리 시내 곳곳에 대형 화면 설치를 해두었는데, 그곳에 찾아가서 보면 된다고 했다.



인증 하며 통행증까지 받았는데 그것이 아무 소용이 없어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행분과 현재 위치 근처에 있는 설치관을 찾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 가서 괜찮으면 그 곳에 있고, 아니라면 다른 곳의 스크린을 찾아보자는 생각이었다. 때는 세 시 쯤이었을까.



개막식이 저녁 일곱시 넘어 시작했으니 아직 시간이 꽤 남은 때라 자리가 한산했다. 가까운 스크린 장소는 분수대 앞에 있는 관람장소였다. 그것에는 분홍색 올림픽 텍스트가 쓰여있는 낮은 펜스가 둘러있었다. 그 펜스에는 출입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을 경찰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경찰이 가방을 검사를 하고 나서 우리는 그 펜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대형 스크린 앞에 앉을 곳은 원래 있었을 법한 몇 개의 벤치들, 분수대의 둥그런 자리, 그리고 바닥 자리였다. 관람티비 앞 바닥에는 올림픽 관람을 위해 엉덩이를 대고 앉을 만한 푹신한 구역이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 구역에 앉았다. 꽤나 앞쪽이었다. 그리고 인근 국가에서 밤새 달리는 버스를 타고 와 합류하기로 한 나머지 한 사람을 기다렸다.








이 날 사건은 개막식이 일어나기 직전에 일어났다.


우리는 개막식을 볼 때 간단한 칩 같은 간식과 맥주를 마실까 했다. 분수대 맞은 편에는 케밥과 볶음 쌀국수와 같은 간단한 음식과 술과 음료를 파는 부스가 세 개 정도 있었다. 그런데 가격 차이가 있었고, 잔도 아주 조그마했다. 조금 이따가 인근에 있는 슈퍼마켓에 교대로 가서 사기로 했다.


다섯시가 지나자 사람들이 슬슬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착한 새로운 동행과도 인사를 나눴다. 이제는 정말로 사러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둘 중 누구하나도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제가 가서 다 사올게요, 하고 나는 찌뿌둥했던 몸을 일으켰다.



학창시절 때 주기적으로 반 청소를 했다. 어떤 아이들은 청소가 하기 싫어 대충 하거나 어물쩡대며 미뤘다. 나는 언제나 그냥 하는 쪽이었다. 청소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나도 아마 살짝은 귀찮았을거다. 깨끗한 곳을 누리는 게 아니라 더러운 먼지를 코 앞에 한데 모아 치워야 하니까. 하지만 잠깐의 일을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이 하기 싫다고 느낀 적은 없다. 게다가 청소는 어차피 다 같이 해야하는 것이고, 그 과정이 있어야 깨끗한 공간에서 공부할 수 있다.

누가봐도 늦장을 부리는 아이들이 보이면 조금 얍삽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똑같은 1인분의 청소가 어떤 사람에게는 1.5배가 된다거나 하면서 불공평해지는 거니까. 생각은 잠시 했지만 나는 그냥 내가 하지 뭐, 하고 묵묵히 청소를 하는 편이었다. 이게 요령없는 내 성격이었다. 어차피 해야 하는 거면 내가 하면 된다.



그냥 내가 가지 뭐.

이번에도 나는 어차피 해야 할 일을 내가 묵묵히 하기로 결정했다.



‘제가 가서 다 사올게요. 원하시는 맥주 있으세요? 간식은 뭘로 사올까요?’



나머지 둘은 반색하면서 아무거나 대중적인 걸로 사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입구 반대편의 펜스로 걸어갔고, 가까운 꽤 큰 마트에서 감자칩 두 개와 내가 먹을 젤리를 골랐다. 그리고 선반에 있는 맥주 사진을 찍어 공유해 각자 원한다는 맥주를 사 왔다. 스테이크로 인해 포만감은 느껴졌지만 저녁 먹을 시간은 없으니까 오니기리를 살까? 고민하면서 장을 보고 돌아오니 여섯시 쯤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펜스 밖에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은 사람들이 아예 들어가지 못하도록 펜스 입구를 막아버렸다.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요? 물으니 출구였던 반대편쪽으로 가 보라고 했다. 그래서 반대편 출입문으로 갔다. 거기에는 들어가려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경찰을 향해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들여보내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선별한 몇몇의 사람들만 가끔 들여보내줬다. 펜스 안에서 사람들이 열 명쯤 나오면, 세네명 정도를 들여보내주는 정도였다. 나는 여기 아까부터 와 있으며, 친구도 가방도 있다고 설명했지만 기다리라는 말만 돌아왔다. 손에 든 맥주가 무거웠다. 나는 일단 현재 상황을 두 분에게 전달한 다음, 지금 안 들여보내주니 맥주와 음식부터 먼저 가져가라고 했다.



다시 입구쪽으로 돌아왔지만 펜스 앞에 굳게 서 있는 경찰이 있는 건 여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들여보내달라고 했지만, 이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이 다 찼다고 했다. 개막식 전에 지하철 테러가 생겨서 보안을 더욱 강화한 것 같다. 그런데 웃긴 건 내부는 텅텅 비어있었다. 오백 명이 정원이랬는데 그 정도도 안 되어 보였다. 빈 공간이 80%를 차지했다.


펜스 밖은 애절한 사연자들로 가득했다. 아까 부스 안에서 파는 샴페인 잔을 들고 잠깐 밖에 나온 거라고 들여보내달라고 스페인어로 외치는 여자, 화장실이 펜스 밖에 있어 갔다왔는데 입구가 막혀 청천벽력을 맞은 사람이 있었다. 각자의 상황을 설명했지만, 경찰은 꿈쩍하지 않았다. 남편은 안에 있고 아내가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내 동행들도 차례로 설득하려 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안된다는 말 뿐이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들어가게 해주기를 설득하고 하고 질문을 해댔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이 낮은 펜스와 펜스 밖에 있는 많은 인원들이 몰린 상황에서 내부 인원을 통제하는 것이 보안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는 것이었다. 펜스는 내 허리 위 정도의 높이었고, 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넓은 펜스 안에는 여유공간이 많은데에 비해 밖은 사람들로 점점 빽빽해졌다. 내외부는 이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었다. 테러가 밖에서 일어난다해도 밖에 있는 시민들이 많은데다, 안까지 영향을 받을 게 뻔했다.



같이 왔던 동행들은 나를 보고 안타까워하더니 차라리 반대편인 대형 스크린 앞쪽으로 자리를 잡고 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했다. 한 시간쯤 서서 기다리다 스크린 앞쪽으로 향했을 때는, 개막식이 30분 남은 시점이었다. 개막식을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빽빽했다.

동행은 나에게 내 가방과 내 분의 맥주, 그리고 현금을 주었다. 내 마음은 처참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개막식만을 보려고 동행을 구했고, 패스를 받았지만 다리쪽으로 넘어가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개막식 네 시간 전에 스크린 앞으로 왔건만. 맥주 셔틀만 한 셈이었다. 게다가 개막식 직전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다 포기하고 갈까 생각했다. 숙소 복도에 티비있던데 그거나 봐야겠다…



일곱 시 반,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개회식을 듣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저 그냥 숙소에 가려고요, 이렇게 인사를 하는 참이었다. “보세요 다른 사람들이 펜스를 넘고 있어요! 펜스 넘어서 오세요!”


스크린 앞부분의 가장자리쪽에서 시민들이 펜스를 넘고 있었다. 경찰은 스크린 뒷편에서 스크린을 등지고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으므로 이 광경을 보지 못했다.



사실 아까도 경찰들 몰래 뒷편에서 펜스를 넘은 사람이 몇몇 있었다. 그런데 곧 지나지 않아 들키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놓고 사람들이 펜스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도 잠시 고민했지만 바로 펜스를 넘었다. 여기 펜스는 경계선이에요, 라고 한 나이든 여성분이 프랑스어로 말했던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담을 넘어 갔다. 담을 넘어 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파도가 들어오듯 너도나도 물밀듯이 들어왔다. 경찰은 더 이상 시민들을 제지하지 못했다. 사실 경찰은 3-4명쯤으로 곳곳에 배치된 터라 시민들과 수를 비길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람들을 뚫고 앞으로 지나가 원래 자리, 스크린 앞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결국 오백명 정원이라고 했던 때의 세 배쯤의 인원이 빽빽히 모여 올림픽을 관람했다. 시민들은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이 불합리한 제지가 말로는 설득이 안 될 거라는 걸 안 거다. 경찰은 한 두명이 펜스를 넘을 때는 한 명을 잡아다가 엄청 고함을 지르더니 사람들이 물밀듯이 내려가자 그 상황을 보고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서양인의 길쭉한 다리로는 그냥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펜스는 그렇게 허무하게 뚫려버리고 말았다. 그까짓 높지도 않은 펜스 그게 뭐라고.


나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한시간 반 동안의 자리 투쟁과 회복과정이 너무 웃겨서 웃음이 피식 나왔다. 이게 말로만 듣던 프랑스의 시민혁명 정신인가?


우리나라였다면 물론 이런 펜스 규칙을 만들지도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만약 그랬다 하더라도 경계선이 뚫리게 놔두지 않았을 것 같다. 사람들도 대체로 도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이렇게 틈틈히 담장을 노리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시간 전부터, 사람들은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장소에서 조금씩 담을 넘었다. 나는 이 상황이 너무 허탈하면서도 웃겼다.


나는 추후에 파리민수의 프랑스 생존기 (안되면 우겨라) 클립을 보고 그것이 얼마나 이 사회 밀착형 실전 요령인지를 공감하게 된다...




광고처럼 흘러가는 지단의 성화봉송 신과 함께 개막식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나는 극적으로 대한민국 선수단이 나오는 것을 자리에 앉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센 강에 배를 띄워 그 위에 각국 나라들이 손을 흔들며 들어왔다. 선수단 입장은 프랑스어 어순으로 진행되어서 프랑스어로 Coree, C로 시작하는 대한민국은 금방 앞에 나왔다. 주요 역사적 장소인 성당과 궁전에서는 폭죽이 터졌다.


레이디가가가 홍학 퍼포먼스로 문을 열고, 락가수가 나와 락을하고 흑인 남자 발레리노가 솔로로 발레를 하며 힙합 가수가 나오는 등 여러모로 원래 올림픽이 가진 이미지를 깨는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프랑스의 모습을 보여준 배치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는 셀린디온의 홀리한 음악까지 완결성있는 무대였다.


중간에 창문에서 폭죽이 터지고 다른 창문에서 락기타 연주를 했던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센 강을 따라 난 건물들과 센느 강변, 그리고 배 위에서의 공연이 교차해서 펼쳐져서 하나의 필름, 미장센을 이루었다. 중간에 나오는 장면들도 가히 영화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프랑스에서 예술성을 담은 전개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센느강변 아래 길을 따라서 춤추는 것도, 배 위에서 단체춤추는 것도 넘 멋졌다. 덤블링하는데 보트에서 안미끄러지는 게 제일 신기하더라. 또, 장애와 성별을 모두 동등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대회인 것도 인상적이었다. 성화봉송을 달리는 사람들도 휠체어와 인공다리를 가진 패럴림픽 선수로 추정되는 사람들과 같이 나란히 뛰는 모습을 생중계했다.


물론 라이브 방송을 틀어두고 숙소에서 볼 수도 있었겠지만, 확실히 스크린 앞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함께 응원하는 기를 받는 것 같다. 에너지를 주고받기 위해 모였다고나 할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날씨 운이 따라주지 못했다는 거였다. 개막식 시작을 기점으로 비는 점점 더 거세게 내렸다. 동행분들은 얇게 입고 오거나 우산없이 와서, 한시간이 지나자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나는 우산을 펼치고 외투를 꽉 껴입은 채 두세시간 정도 개막식을 더 보고 왔다.







앞으로 파리 올림픽, 하면 사람들이 담장을 넘는 그 장면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펜스를 넘는 그 순간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경찰을. 이내 몇 백명쯤 되는 사람들이 펜스 내부 바닥에 오밀조밀 앉게 된 그 광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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