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두 번째로 큰 미식의 도시
"나 이 날 행사하는데 보러 올래?"
여행을 하다 만난 친구가 연락을 해 왔을 때는 이미 리옹의 숙소를 예약해 둔 후 였다. 나는 그리 길지 않은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남은 숙박일을 날리고 바로 리옹으로 가기로 했다. 이 비좁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열 감기에 들고는 더 이상 있을 수 없었다.
또, 리옹에 간 덕분에 나는 기차에서 만났던 이탈리아계 독일 남자가 어디냐고 돌아오라는 말에 ‘나는 리옹으로 가 잘 있어~~’ 라는 최후의 굿바이를 외칠 수 있었다.
영화에서처럼 여행을 하다 기차에서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를 시작하고, 데이트를 하는 건 현실에서 가능한 이야기였다. 다만 영화와 다른 건 그것이 그리 로맨틱하거나 설레는 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누군가와 밥 한 번 먹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된 퍽퍽한 삼십대 감성으로는 더더욱이 말이다.
딱히 별 건 없던 만남이라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려고 한다. 만약 이걸 담는다면, 그 날 한 나의 농담이 마음에 들어서 기록하고 싶어서 정도일 것이다.
리옹으로 움직일 때부터는 나는 내 여행을 한 치 앞도 계획하지 않았고, 예기치 않게 여기서 2주를 보냈다.
리옹은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경제적 규모가 큰 도시로 미식과 강, 각국의 학생들이 공부 하러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위치는 남부와 북부 파리의 중간쯤. 프랑스의 중심부쪽에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큰 도시인데다가 중심부에 있어서, 파리나 남부까지 기차를 타고 2시간 정도면 오갈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다.
리옹 가서 시간 되면 이것 좀 사줘, 하고 부탁하는 또다른 친구 덕에 나는 리옹이 생택쥐페리와 관련이 있는 도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린왕자>를 쓴 생택쥐페리는 이 도시, 리옹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리옹의 공항 이름은 생택쥐페리 공항이다.
여행 출발부터 지금까지 외로울까 걱정했던 건 그야말로 오산이었다. 나는 집 안이든 밖이든 누군가와 계속 마주치고 있었다. 내향적이고 타인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나는 사람들 틈에서 벗어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리옹은 내가 유럽 여행 동안 유일하게 온전히 혼자 시간을 보낸 곳이다.
리옹 파듀 역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해가 지고 깜깜했으니 밤 10시쯤이었을까. 생각보다 큰 역에서 내려 트램을 타러 갔다. 역 맞은 편에는 백화점 건물이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작고 날렵한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캐리어를 들고 빅 브랜드의 쇼핑백을 잔뜩 든 화려한 중동여자가 트램에 같이 탔다. 내게 펼쳐진 이 한 장면만으로 나는 이곳이 대도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트램에서 내려 예약해 둔 복층 스튜디오 룸으로 갔다. 아파트 내부 입구에서 열쇠를 찾았는데, 열쇠를 아무리 돌려봐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내 핸드폰 배터리는 0%가 되기 직전이었다. 나는 복도 한복판에 26인치 캐리어를 열고 배터리를 찾으려 끙끙댔다. 호스트에게 메세지를 보내두고 몇 번을 더 열쇠를 열려고 했지만 도무지 어떻게 여는지 모르겠다. 왜 이 나라는 디지털 도어락을 도입하지 않는 건가. 문을 두드리다 바로 옆에 투숙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문을 열어주며 설명을 해 준 덕에 열쇠는 반쯤 돌리며 열어야 열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조그마한 팁으로 속으로 열려라 참깨, 를 외치면 더 잘 열린다. 물론 뻥이다.
어질어질하게 들어온 숙소에서 나는 간단히 짐을 풀고, 옷가지를 가지고 씻고 곧바로 자러 갔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열감기도 코로나도 한 번 걸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때는 열이 나고 하루종일 피곤함이 몰려왔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 낯선 곳에서 코로나에 걸렸던 것 같다. 무슨 감기가 이렇게나 지독한가. 기침은 심해지고, 열이 올라 이마에서 땀이 났다. 나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하루종일 자기만 했다.
혹시 이 사실을 아는가. 리옹에는 론 강이 흐른다. 바로 아를에서 흐르던 그 론 강 말이다. 리옹에는 큰 강이 두 개 흐른다. 하나는 론 강이고, 하나는 손 강이다. 그리고 두 강 사이에 있는 작은 섬처럼 생긴 지구가 있는데, 여기가 관광지구의 중심지이다. 나의 숙소는 론 강 근처여서 일주일 동안은 거의 론 강 인근을 산책하기만 했다. 인근에는 대학교와 기숙사 등이 있었는데, 여름 방학이라 그런지 생각보다는 길거리가 한산했다.
여행 삼 주차. 정말 많은 곳을 둘러봤고 즐겼다. 물론 단점도 있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가령 이를테면 길거리의 캣콜링이나 식당에서 마주하는 인종차별 같은거. 한국만큼 편리하지 않은 시스템과 나갈 때 무겁게 짤랑짤랑 달고 다녀야 하는 열쇠도.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대중교통 이용법과 도시에 볼 것들을 찾고 가기로 정하는 것도. 다 금방 적응이 되었다. 그런데 딱 하나, 적응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음식이었다.
동서양, 거리만큼 반대되는 문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길게 난 창에 화려한 벽면의 건물의 차이처럼 큰 차이는 음식에도 있었다. 한식은 국물음식과 쌀, 그리고 매콤한 음식이 주를 이룬다. 프랑스에 와서는 대부분 유제품과 밀가루 그리고 올리브 기름이 주가 되는 음식을 먹게 된다. 입맛을 대체할 겸 일주일에 한두번은 베트남 쌀국수를 찾아먹었다. 그러나 삼 주가 지나자 너무나도 한식이 당겼다. 라면도 너무나 그리워졌다.
리옹은 국제 학생들이 많이 공부하러 오는 큰 도시라서 아시안 마트가 많았다. 숙소 근처에 있는 한 마트는 규모도 꽤 컸다. 거기에는 비비고 만두부터 또보겠지 떡볶이, 각종 라면 종류와 김치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첫 주에 나는 음식이라는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그 아시안 마트에 갔다. 한국에서 a.k.a. 맵찔이지만 불닭볶음면도 사고, 김치, 그리고 인도식 커리도 사면서 식욕심을 잔뜩 부렸다. 일주일 동안 몇 번을 그곳을 들리며 마음은 기뻤던 것 같다. 한식집도 몇 군데 찾아 볼 수 있어서, 그 다음주에는 리옹역에 있는 한식음식점에 찾아가 포장도 해왔다. 나도 여기 살면 아시안 마트나 해 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으니 누워서 풍자의 또간집을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메뉴 하나하나가 어찌 그리 맛있어 보이던지. 언제 갈 지도 모르면서 네이버 지도에 압정을 많이 박아뒀다.
감기가 일주일 째 되던 날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첫번째 숙소 근처에 있는 약국에 찾아갔다. 약국의 약도 우리나라와 정말 달랐는데, 대부분 천연성분이었다. 나는 바닷소금물로 코세척하는 것과 목감기에 좋은 시럽을 샀다. 시럽도 다 천연 성분이었다. 시럽이 효과가 좋아서, 기침은 3일이 지나니 거의 멎었다. 요즘 코로나가 다시 유행 한다고 한다. 약사가 코로나 테스트를 해 봤냐며, 감기가 계속 낫지 않으면 꼭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다행히 열흘 정도가 되자 감기가 대부분 괜찮아졌다. 몸이 전반적으로 무겁고 피로한 것은 여전했는데, 이것은 흔한 코로나 후유증이라고.
론 강과 손 강을 건너가면 언덕 위의 푸르비에르 성당을 볼 수 있다. 지하철이 실내 케이블카로 이루어진 역과 이어져있는데, 타고 올라가는 게 상당히 재미있다. 올라가는 터널 양 옆에 역사 유적물 같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프랑스의 여느 역과 다르지 않게 에어컨 없이 사람들이 오밀조밀 몰려 찜쪄지는 재미까지 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는 성당. 푸르비에르 성당은 성당 자체도 넓었지만 높은 지대에 있어 주변 구경하기가 좋았다. 푸르비에르 성당 왼쪽으로 들어가면, 리옹의 시내 시내 한복판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공터가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도 있고, 벤치도 많아 앉아서 쉬기도 좋다. 리옹을 내려다보니, 저 멀리에는 꽤나 높은 마천루 건물도 몇 있다. 통일성을 이루는 주황지붕의 낮은 건물들과 두 개의 강 사이를 잇는 다리, 강가로 나 있는 초록 가로수들이 정갈한 조화를 이루는 멋진 도시 경관이다. 경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가족들, 연인들, 그리고 친구 사이가 가득해 보기 좋다. 벤치에 앉아 고독을 씹으며, 아니 여유를 즐기며 책을 읽는 청년도 있다. 여기 멋진 경치만큼 그들이 아름답다는 걸 그들은 알까. 역시 도시는 이용하는 사람들로 완성된다.
나는 다시 푸르비에르 역 쪽으로 걸어갔다. 역 앞에는 감정을 풍부히 담으며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성당 반대편의 로마 유적지가 있다는 원형 극장에 갔다. 오데옹과 갈로 로마 극장이다. 박물관은 유료인데 원형 극장 두 개는 무료로 길을 따라 구경할 수 있다. 원형 극장은 말 그대로 예전에 공연이나 행사를 할 때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원형으로 계단이 나 있는 극장이었다. 계단 부분이 옛날 골조와 같은 것은 많이 파괴 되었지만 무대 근처의 좌석들은 꽤나 보존이 잘 되어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옛 로마 극장을 여름 축제 무대로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지금이 여름 축제 기간인지 음료를 파는 간이 부스도 보였다. 옛날 사용했던 것 그대로, 고대 로마 시대에 사용했던 극장에 앉아 21세기의 공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매력이다. 문화재라고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두기만 하지 않고, 실용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또, 하루는 리옹 식물원에 갔다. 리옹에는 식물원과 동물원이 모두 있는 거대한 공원이 있다. 모두에게 무료로 개방된 이 공원은 생각보다 방대한 동물과 식물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나는 공원을 걷다 예고 없이 낮은 담장 뒤의 사슴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공원을 둘러 조금 더 걷다보니 거북이들이 한두 마리도 아니라 백 마리 이상의 떼거지로 작은 호숫가에 서식하기도 하는 신기한 광경도 볼 수 있었다.
길을 따라 들어가 본격적으로 동물원에 들어가면, 적당한 높이의 투명한 유리막 너머로 기린과 코뿔소 등의 야생동물을 볼 수 있다. 담장을 크게 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있는데 사람들 쪽으로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앞에는 작은 강을 두었다. 그리고 그 강변의 사람들이 지나가는 데크에는 긴 벤치를 두어 사람들이 강 건너편의 기린과 코뿔소를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벤치에 앉거나 투명한 유리막 너머를 바라보며 동물을 감상한다.
공원에는 아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기구와 아이스크림 등을 파는 간이 편의점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락이나 포장음식을 가져와 공원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삼삼오오 수다를 떨었다. 이름하야 떼뜨도흐 공원. Tete d’or. 직역하면 금으로 만든 머리 공원이다.
도시에서 사람들이 사는 데 있어 중요한 공간은 가볍게 운동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공공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대부분 정해진 거처가 있고, 일로 묶인 일상을 살고 있는 우리네 삶에서 중요한 공간은 화려한 명소가 아닌 이런 숨을 틜 수 있는 공간 아닐까. 리옹에는 아침 저녁이면 론 강을 달리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주말이면 이 금머리 공원에서 피크닉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리옹은 참 살기 좋은 도시다.
나도 감기에 들어 고생하는 동안 바람을 쐬고 싶으면 어김없이 론 강으로 걸어갔다. 유적지, 박물관, 미술관, 쇼핑센터로 가득했던 그 전 여행지와는 달리 리옹에서는 별달리 많은 관광을 하지 않고 코리안 푸드를 해 먹고, 아침 저녁 론 강 근처를 걸었다. 떼뜨도흐 공원을 걸을 때는 심신이 안정되고 치유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나라도 더 보려고 여행지를 욱여넣는 게 아니라 그냥 여유롭게 있는, 현재를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리옹이라는 여행지가 준 균형감각이었다. 나도 일상을 사는 사람이었지, 하는 거 말이다.
+P.S. 코리안 푸드
리옹에서 만든 김치볶음밥. 볶음밥은 밥에 렌틸콩을 조금 넣는다. 쉬었을리 없어 아삭함이 살아있는 김치와 최소한의 채소로 양파와 당근을 준비한다. 팬에 넣고 볶아서 잘 녹지 않는 에멘탈 치즈와 계란을 얹으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