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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가 오지 않는 집

동심 파괴자는 초딩이 범인이었다.

by Lou


”엄마, 나 이제 동심은 없어 “

크리스마스이브 아침부터 산타를 왜 믿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한 10살 아들의 대답이다.

다른 아이들은 꽤 커서도 산타를 믿고 있던데 아직 엄마 눈에 아기 같은 막내가 이런 시크한 대답을 하다니

선물을 몰래 구입해서 포장하고 숨겨 두고 이브 날 저녁 아이들이 잠든 사이 살포시 꺼내어 몰래 놔둔 편지를 숨기고

현관 앞에 놔두는 일이 은근히 귀찮았지만 나름 스릴도 넘치고 재미도 있었다.

산타를 볼 때까지 밤새 기다린다며 호기롭게 버티는 아이들과 눈치싸움이자 시간싸움이었다. 어느 타이밍에 선물들을 세팅할 것인가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돈도 안 들고 몸도 편했지만 마음 어딘가가 허전하고 아쉬웠다. 한 마디로 시원 섭섭!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기 시작한 시기가 엄마인 나와 비슷하지만 너무 일찍 노골적으로 의심에 대해 드러내면 선물도 못 받는 건데

엄마만 안타까운 상황이 돼버렸고 아이는 쿨하게 대답하고 받아들이니 기분이 묘한 이브 아침의 시작이었다.




눈치가 빠르지 않은 성격임에도 10살 즈음되어서는 산타의 존재를 의심하는 계기가 있었다.

크지 않은 아파트 2층 침대에서 동생과 내가 잠을 자던 시절

크리스마스 아침 눈을 떴는데 산타할아버지가 놓아두고 가야 했던 자리에 선물이 없다!

너무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혼자 그 자리를 바라보며 당황했던 기억

다시 잠자리로 돌아와 수시로 눈물 바람인 울보라 선물을 받는 명단에서 제외된 건지 혼자 낙담했더랬다.

워낙 눈물이 많아 수시로 울기가 취미인지라 엄마는 그때마다 캐럴을 불러 주셨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 주신대요’

노래를 들으면서도 부르면서도 섬찟 섬찟했다.. 아이가 울 수도 있지. 운다고 선물을 안 준다니 너무 한 거 아닌가?

나처럼 수도꼭지는 선물 받을 자격마저 미연에 박탈이라니

울면 크리스마스 선물을 못 받으니 그치긴 해도 불안한 마음은 항상 있었다.

이미 많이 울어버렸는데 선물을 받고 싶고 내적 갈등이 심화가 폭발하던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혼자 머릿속이 복잡할 무렵 동생이 깨서 언니를 찾고, 그 소리를 들은 아빠가 우리 방으로 오셨다.

두 자매를 눕히고 아빠가 들려주는 재밌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무심코 열린 방문 사이로 왔다 갔다 하는 엄마가 보였다.

별생각 없이 아빠가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엄마의 이동 방향과 의심스러운 행동이 눈에 띈 상황 뒤에 제자리에 놓인 산타의 선물과 편지

산타에 대한 의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신기하면서 이상했던 건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산타할아버지에게 쓰는 카드는 언제나 엄마의 지도아래 작성되었다.

동생과 나는 원하는 선물이 여러 개이기도 했지만 이것저것 적고 있으면 엄마의 조언이 시작되었고 그대로 작성했야 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되면 정말 카드에 있는 선물들 중 한 가지가 예쁘게 포장되어 도착해 있어 신기했지만 그 와중에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우리 집에는 굴뚝이 없는데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걸까? 현관문 앞에 놓인 걸 보면 현관문을 열고 온 거 같은데 엄마아빠가 열어준 건지

혹시 우리 집 열쇠(그때 모든 문은 열쇠로 열어야 했다)를 비롯해 모든 집의 열쇠를 산타 할아버지가 가지고 다니는 걸까? 열쇠가 대체 몇 개야?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에 수억만 개의 선물을 취향별로 가가호호 방문전달이라니

머리를 계속 굴려가며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을 끊임없이 생각해내고 있었고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심만 늘어갔다.

결정적으로 산타가 써준 카드에는 나의 생활에 대한 조언과 필체를 억지로 바꿔 쓴 듯한 엄마의 글씨를 보며 최종적인 의심의 정점을 찍었다.

엄마는 선생님이셨고 그 당시 학교에서는 ‘통지표’라는 걸 학기말에 나누어 주었는데

당시는 때마다 시험도 보고 평가해서 ‘수, 우, 미, 양, 가’ 다섯 단계로 과목별 성적을 매겼더랬다.

이 내용도 통지표에 선생님들의 수기로 작성되었고 선생님이 지도하며 느낀 아이에 대한 평가도 담임 선생님이 일일이 손으로 한 명씩 정성 들여 작성했다.

업무가 많았던 엄마는 우리의 숙제를 봐주면서까지 반 아이들의 통지표를 하나하나 손으로 꼼꼼히 작성하시는 걸 가끔 어깨 넘어로도 봤고

서류나 글씨를 적는 일도 많아 엄마의 필체는 익숙했었다.

워낙 글씨체도 분명하고 필체가 좋으신 분이라 단번에 알 수 있었는데 이런 점이 산타 의심에 대한 증거가 되어 주다니





아이가 생기고 크리스마스마다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선물 구입과 숨기기 작전을 남편과 요리조리 상의하고 실행하며 즐거웠더랬다

항상 엄마와 한 몸처럼 생활하는 아이들이고 원하는 게 다양하게 많기에 몰래 원하는 선물을 구입하는 건 어렵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큰 아이가 조금씩 산타의 존재와 선물의 위치, 산타의 이동 방향등을 의심을 하기 시작할 때는 에둘러 말해 동심을 지켜주려 했건만

결정적으로 학교에서 형이나 누나가 있는 친구들에게 산타의 존재를 듣고 온 것이다.


사실 유치원에서 매년 하는 산타행사마다 선물을 받고 돌아와 ”엄마,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야! 우리 체육 선생님이야! 목소리가 똑같거든”

단번에 의심을 크게 하지는 않았지만 자주 존재에 대한 질문과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점점 드러내놓고 원하는 것을 말하며 믿지 않는다는 티를 내면서도 선물이 받고 싶어 모르는 척 아닌 척하는 아이를 보면 헛헛해졌다.

엄마 마음으로는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게 산타의 존재를 믿고 선물과 함께 성탄절을 즐기는 모습을 원했건만

현실은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선물의 요구와 타협으로 점점 변해갔다.


심술인 건지 사실 공유를 원하는 건지 왜 어린 동생에게 자꾸 산타를 믿지 말라고 주입식 교육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혼자 변하면 안 되는 건가? 굳이 3살이나 어린 동생을 붙들고 산타의 존재에 대한 의심의 씨앗을 굳이 왜 심어주는가

동생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면 ‘엄마, 얘도 이미 알고 있어! 친구들한테 듣고 왔다니까?’ 한 마디도 안 지고 되받아치는데 할 말을 잃었다.

고작 9살인 동생에게 ‘넌 산타할아버지가 있다고 믿어?‘ ’ 진짜 산타할아버지가 있으면 왜 우리는 못 보는 거야? ‘

‘산타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왔다 가는 게 무단침입을 하는 걸까?’ ‘ 엄마 아빠는 산타할아버지를 만났겠지?’

정말 줄줄이 이어지는 질문과 그에 대해 대답을 같이 고민하는 동생의 모습에 기가 찼다.

의심하는 시기가 올 줄은 알았지만 예상보다 빠른 진행에 당황스러워 마음속으로만 냉탕에 마음을 넣었다 빼는 기분이 들었다.



나날이 늘어가는 의심,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날 때마다 해대는 반복적인 날카로운 질문에 대답이 난감해지고 있을 무렵

결국 두 형제는 오랜 시간 쑥떡쑥떡 토론을 거쳐 형의 내린 결론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동생

그리고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가감 없이 동생에게 전달하고 형제는 더 이상 엄마가 말해주는 진실 따윈 관심이 없어졌다.

둘 만이 아는 진실만 남겨질 뿐

그렇게 의심과 형의 산타 존재의심과 사실의 주입으로

동생은 10살이 되기 전 산타할아버지의 존재가 사라지고 동심도 흔들리고 있었다.

형이 과연 동생에게 득인지 실인지 난감한 건 엄마다.



먼가 허무하게 지나가는 듯한 크리스마스이브에 막내를 품에 안고 둘만 들리게 작은 소리로 물어봤다.

"친구들은 산타할아버지 선물 받을 텐데 산타할아버지도 안 믿어서 선물도 못 받는데 안 섭섭해?"

"아니야, 엄마. 내 친구들도 대부분 산타 없는 거 알고 있어! 그리고 산타엄마아빠가 어제 갈비 사줘서 배 터지게 먹었잖아. 괜찮아."

말문이 턱 막혀 대답을 못했다.

다 컸다고 기특해야는데 아직 순진하고 귀여운 모습의 막내이길 바랐는데 너무 현실적인 대답에 가슴속이 차갑게 일렁이며 크리스이브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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