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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m Mar 02. 2022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1990년 KBS에서 방영한 멕시코 드라마 <천사들의 합창>은 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막연히 지우개 달린 노란색 연필을 쓰고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자유로워보이는 수업 분위기에 막연히 '나도 저런 학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예쁘고 새침한 주인공을 따라 흰 레이스 장갑을 끼고 다녀 아이들의 재수 없음을 한 몸에 받았던 기억도 나고, 엄마 미용실 간 김에 1+1으로 했던 뽀글 머리도 곧게 피고 머리를 길렀던 기억이 난다.


5학년 때쯤, 길을 걷다 드라마 속 교실 같아 보이는 벽보를 보았고 무작정 그 건물로 들어가 사진 속 학교가 어디냐고 물었다. 나중에서야 깨달았지만 내가 들어선 건물은 유학원이었고 부모님도 없이 어린애가 다짜고짜 광고 사진 속 학교 이름을 달라고 조르자 귀찮은 듯 학교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당시에는 이메일이 대중화되기 이전이었다;;)


손에 쥐어진 주소로 "I want to go to your school"을 내가 가지고 있는 최대한 예쁜 편지지에 적어 보냈고 얼마 후 집으로 학교 입학 신청서가 도착했다.


꽤 분량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사전을 찾아가며 답변을 적어내렸고 얼마 후 난 합격 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다음 관문은 부모님.

이 모든 사실을 알리 없는 부모님은 합격 통지서를 내밀며 보내달라는 막내딸의 당당한 요구에 한 동안 말을 잊지 못하다 어차피 꺾지 못할 고집, 혼자 가서 고생 실컷 하다 스스로 돌아올 거란 생각에, 딱히 적절한 반대 의견을 찾을 수 없어 아시안이라고는 한 명도 없던 그곳에 막내딸을 보냈다.


힘들다고 울고 불며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막내는 27살이 되어서야 한국에 돌아왔고

이제는 노란색 지우개 연필보다 모나미가 힙해 보이는 마흔 넘은 막내가 되었다.


꿈에 펼쳐진 교실 속 모습은 예전 그대로였다.

아시안이 나밖에 없었던 교실에 낯익은 검은 머리의 뒷모습들이 앉아있었고

반가운 마음에 한 명씩 어깨를 돌려보니 내가 늘 의지하고 그리워하던 친구들이 어디 갔다 지금 왔냐며 투덜거렸다.


오늘도 아침부터 늦었다고 데려다 준 광섭 오빠,

흐트러진 교복을 매만져주는 한샘 언니,

교과서보다 코스모폴리탄 잡지가 더 많았던 수연 언니,

다이어리 꾸미기에 바쁜 지연이,

양손으로 농구공을 돌릴 줄 안다며 자랑하는 성한이 오빠와 지욱이,

책을 높게 쌓아놓고 범생 티 팍팍 내지만 동안 비결의 이유인 듯한 거울이 포인트였던 정우.


모두 그리운 얼굴에 지금은 뭐하고 지내냐고 묻고 싶은 찰나

학교 종이 울리며 잠에서 깼다.


평소 하늘을 날고 우주에서 사는 미래지향적인(!) 꿈을 꾸는 내가

요즘 들어 부쩍 예전 기억의 파편들을 꿈에서 만난다.


아련한 기억과 묵직한 그리움으로 오늘 아침도 시작되나 보다.


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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