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되찾은 엄마
요즘은 고급스럽게 '트램폴린'이라 불리지만
나의 어린 시절에는 그물망에 올라 방방 뛴다 하여 우리 동네에선 '방방이'라고 불렸다.
지하철역 앞 주차장 옆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던 방방이 옆엔 아이들이 둘러싸인 달고나 할머니가 계셨고,
가끔씩 고속도로 휴게실에서 틀법한 요란스러운 노래를 튼 형형색색의 말타기 구루마 아저씨가 오시기도 했다.
그 어떤 현대식 놀이기구도 무섭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방방이는 너무 무서웠다.
언니랑 같이 뛸 때면 내가 반동으로 철조망 너머로 날아갈 것 같았고
미끌미끌한 그물 위에서 혼자 힘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언니와 친구들이 방방이를 탈 때면
조용히 어디 안 가고 같이 놀아달라고 하지 않는 조건으로 쥐어준 500원으로 달고나를 사 먹고 흥겨운 리듬에 맞춰 핑크색 말만 골라 통 크게 200원을 내고 언니의 방방이가 끝날 때까지 탔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기억 속 그곳의 방방이를 타는 꿈을 꾸었다.
평소 회전목마도 무서워하는 엄마가 하늘을 뚫을 것 같은 높이로 방방이를 뛰는 모습을 보며
불안한 마음에 계속 내려오라 하려 했지만
그 광경을 목격하는 현재 내 나이의 내 모습과
나보다는 훨씬 어려 보이는 방방이 위의 엄마 모습이 너무 해맑아
멍하게 바라보다 내려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엄마 모습이 얼마나 해맑았는지,
처음 듣는 엄마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에
나도 웃다가 깼다.
문득 엄마의 젊음은 어땠을까 생각했다.
엄마의 이름으로 잊힌 엄마의 그 해맑은 모습이 나 때문인 것 같아
장난스럽지만 지금까지 난 엄마를 엄마의 이름을 딴 애칭 '조미'라고 부른다.
엄마도 할아버지 무릎을 차지하던 사랑받는 딸이었고,
남학생들의 마음을 흔든 소녀였고 (엄마 피셜),
코 앞에서 이룰 수 있는 꿈을 나와 언니 때문에 스스로 놓아야 했던 엄마가
이제는 '조미'로써 깔깔 웃으며 하늘을 뚫어도 되니 행복하다 느끼길 바란다.
Mm.
*이미지
Pablo Picasso, Trois personnages sur un tremplin,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