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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Dec 20. 2020

퇴근길, 쉼에 대한 휴식이
필요하다면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면 ⑥ 우루과이의 꼴로니아 델 사끄라멘또


남미 최대의 축제인 카니발이 막 지나서였을까.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대도시답지 않게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좋은 공기’라는 뜻의 그 이름처럼 부드러운 바람에는 꽃 향기가 실려 와 평범한 산책길도 즐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곳 역시 어쨌든 대도시였다. 체류한 지 5일 정도 지나니 슬쩍, 고층 빌딩 숲을 벗어나 페리로 한 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옆 나라 우루과이의 아기자기한 풍경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새로운 국가에 대한 호기심, 하루에 여권 도장 네 개를 획득하고(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각각 입국과 출국) 남미 지도 위에 여행 한 국가를 깔끔히 색칠하겠다는 세속적인 욕망이 더해져 우루과이 당일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왕복 페리 티켓+점심 샌드위치+1시간 가이드+Hop on hop off 버스 티켓’ 패키지가 75 달러로 저렴하지 않아 망설이기도 했지만,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해 본 뒤 만족하거나 혹은 후회하는 것이 답이라고 믿었다.  



페리로 한 시간 달려 도착한 ‘꼴로니아 델 사끄라멘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보다 날씨가 쾌적하고 사방에 꽃이 만발해 있어 첫인상이 아름다웠다. 우선 패키지에 포함된 대로 서양 노부부 관광객들로 가득 찬 버스에 올라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우루과이는 가톨릭 국가임에도 낙태와 동성애가 허용될 만큼 진보적이며 투표는 권리가 아닌 의무로서 행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또한 1930년 월드컵 최초 개최국이자 우승국인 축구 강국으로서 당시 ‘FC 바르셀로나’의 공격수였던 ‘수아레스’도 이 나라 출신이라고 했다. 



버스에서 내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역사 지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우루과이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과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아르헨티나 사이에 위치해 있기에 양국의 지배를 받아 두 나라 모두의 영향이 남아있다고 한다. 실제로 거리의 이름을 나타내는 표지판은 포르투갈의 푸른색 타일 장식인 ‘아줄레주’로 되어 있었고, 건물의 양식과 색깔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 온 듯한 인상을 주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오후에 노천카페의 테이블에 앉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상큼한 복숭아 스무디를 마시며 가만히 멍 때리는 시간. 몇 달 전 유럽을 여행할 때는 이렇게 몸과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을 자주 가졌었는데 남미 여행에서는 큰 대륙 내 이동과 다이내믹한 날씨 때문인지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가끔 내가 여행을 통해 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OO에 방문하기’ 과제 수행 중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이윽고 졸음이 와서 잠시 테이블에 엎드려 눈을 붙였고 잠시 후 귓가를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에 깨니, 이토록 달콤한 낮잠을 잤던 적이 언제였었나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짧지만 만족스러웠던 씨에스타로 재 충전 후 다시 산책을 시작했다. 장기 여행 중이라 여행이 일상이 되어 알게 모르게 지쳤었는데, 이렇게 쉬고 나니 근교에 콧바람 쐬러 나온 듯 다시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지난 몇 달간 마추픽추와 우유니 사막, 파타고니아 등 남미의 주요 명소를 돌아보느라 몸이 참 바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달팽이처럼 걸으며 길에서 마주치는 소소한 물체 하나하나에도 느린 시선을 보내니,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여행의 의미를 상기하게 되었다. 일상에서도 긴 여행에서도 적당한 휴식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 2018년 2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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