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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Dec 24. 2020

퇴근길, 할머니가 되어서도
사랑에 빠지고 싶다면

황홀한 밤을 느끼고 싶다면 ① 이집트와 모로코의 사막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소설 알퐁스 도데의 ‘별’, 언제부터인가 소설의 배경처럼 ‘여름밤에 쏟아지는 별을 보고 싶다’는 로망을 품게 되었고, 그것을 처음 실현하게 된 곳은 스물두 살 이집트의 시와 사막에서였다. 로마의 옛 수도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시와 오아시스 마을로 가는 길, 그동안 매체를 통해서만 봐 왔던 사막을 실제로 만난다는 생각에 들떠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버스 속 모두가 잠든 깜깜한 밤, 창 밖으로 보이는 달은 더욱 또렷하게 빛났고 청명한 달빛에 반사된 흙 집은 새하얗게 눈부셨다. 



‘낮의 사막’은 한 편의 예술 작품이었다. 고운 모래가 만들어 낸 부드러운 곡선의 미학으로 마치 여성의 유방을 연상케 하는 사구가 바람결을 따라 자유롭게 펼쳐져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파란 하늘과 붉은 모래의 두 가지 색깔로 세상의 풍경은 단순해졌고, 석양 무렵 사막의 붉은빛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 아름다움을 발산하려는 듯 강렬하면서도 따스하게 느껴졌다.  



‘밤의 사막’은 내가 우주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는 천체의 향연이었다. 밤이 되어 급격히 차가워진 모래 속을 조금만 파보면 낮에 뜨겁게 달궈졌던 부분이 나오는데, 그곳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침대로 느껴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별의 개수와 밝기도 증가하여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별’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북극성과 은하수를 보았고 순식간에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눈물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장면이었기에 아주 밝게 빛나는 별부터 주의 깊게 관찰해야만 보이는 흐릿한 별들까지도 하나하나 눈과 가슴속에 담았다. 



그날 밤, 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소는 ‘밤의 사막’이라고 생각하며 일기장에 다음과 같은 감상을 적었다. 


"밤의 사막은 얼마나 낭만적인 공간인가. 누구나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장소. 나중에 신혼여행은 꼭 사막으로 오리라는 나의 생각을 더욱 굳게 해 주었던 곳.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 목동의 마음의 얼마나 설렜을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스물 두 살인 내가 서른 살이 넘어서도 계속 낭만적인 사랑을 꿈꿀 거라 다짐해 본다"


그런데 30대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2017년, 서른이 넘어서도 다시 여름밤의 별이 보고 싶어 이번에는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을 찾았다. 그런데 9년 전 그 날 보았던 별은 생생하게 기억했지만 밤새 쏟아지는 별을 감상하기에 체력이 같지 않음을 잊고 있었다. 결국 달이 완전히 져 별을 선명히 볼 수 있는 새벽 3~4시에 다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고 1시쯤 잠깐 누웠다가, 먼 동이 틀 무렵까지 숙면했다. 



스물두 살, 그때의 바람과는 다르게 이번에도 혼자였고 체력도 떨어졌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 아래에서 낭만은 버릴 수 없었다. 다음에 다시 사막에서 별을 만난다면 그때는 정말 로맨틱한 순간의 배경이기를 바라며…. 이번에는 좀 더 현실적이고 진지하게 다시 다짐하기로 했다. 서른 한 살인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 낭만적인 사랑을 꿈꿀 거라 다짐해 본다’


 ☆ 2008년 7월과 2017년 6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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