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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Dec 30. 2020

퇴근길, 야경 종합 선물세트를
받고 싶다면

황홀한 밤을 느끼고 싶다면 ②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세상에 아름다운 곳은 많지만 ‘야경’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그 도시 밖에 떠오르지 않는 곳이 있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이 곳의 야경은 처음 본 순간 숨이 막힐 것 같았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철철 넘쳐흐르는 분위기에 눈물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헝가리는 아시아계 유목 기마 민족인 마자르 족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몽골,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 소련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민족의 지배를 받은 아픈 역사에 동질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이 되었을 만큼 우울한 정서가 지배적이지만 오히려 그 알 수 없는 무게감이 도시의 매력을 더해준다. 마치 천진난만하고 티 없이 밝은 소년보다 과묵하고 중후한 멋의 신사에게 끌리는 것처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카의 마지막 황후, 엘리자베스 ‘시시’가 사랑했던 나라가 바로 헝가리다. 그녀는 온갖 규율로 가득 찬 왕실 생활을 답답해하며 요양을 이유로 여러 나라를 여행했는데, 그중 헝가리에서 가장 오래 머물며 언어까지도 완벽히 배웠다고 한다. 직접 여행 해 보니 전형적인 유럽의 동화 같은 모습이 아닌 그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갖고 있는 이 나라를 그녀가 왜 그리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한 나라의 공주와 왕비로 화려하게 살았지만 평생 자유를 그리워하다가 암살을 당해 허무하게 저버린 삶을 보면서, 바로 지금 소소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평범한 오늘을 감사하게 된다. 



시내를 걷다가 도나우 강변에 도달할 때쯤 부다페스트의 야경과 처음 만났는데, 그 순간 감탄사가 멈추지 않았고 벌어진 입은 오랫동안 다물어지지 않았다.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적어도 3일 밤 동안 각각 다른 장소에서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하루는 ‘부다’ 지구의 어부의 요새와 마차시 성당에서, 하루는 세체니 다리를 건너 ‘페스트’ 지구의 국회의사당 쪽에서, 그리고 하루는 도나우 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부다와 페스트 지구를 동시에 감상하는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머무는 동안 매일 감상해도 좋다. 부다페스트의 황홀한 밤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으니까. 



사실 어부의 요새 전망대에 올랐을 때, 부다페스트의 환상적인 야경의 비결이 아낌없이 쏘는 강한 조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곳이 부다페스트였기 때문일까, 인고의 세월을 감내하기 위한 슬픔을 강렬한 빛으로 덮은 듯, 과하거나 요란한 느낌이 없이 기품으로 승화시킨 것 같았다.



야경을 더 황홀하게 감상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만약 혼자라면 헝가리의 명물인 ‘토카이 와인’을 한 잔 마신 뒤 몽롱한 기분으로 감상하는 것이다. 토카이 와인은 '곰팡이가 밤새 습한 공기를 타고 포도송이의 껍질에 스며들면, 수분을 증발시켜 당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져 그 제조법조차 신비스러운데, 달달하면서 깊은 맛이 그간 마셔본 와인 중 손꼽을 정도였다. 



만약 야경을 감상한 후에도 부다페스트의 떠나는 밤이 아쉽다면 ‘루인 펍’으로 가면 된다. 루인 펍 (Ruin Pub)은 말 그대로 폐허가 된 공간을 인수하여 펍과 예술 공간으로 만든 장소다. 나 역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일주일 체류 기간 동안 다양한 루인 펍을 다니며 몇 번의 ‘불금’을 보낼 수 있었다. 내부는 다소 음산하고 정신이 없지만 여러 친구들과 와서 한바탕 놀기 좋은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우아하고 고상한 줄만 알았던 부다페스트 밤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렇게 어떤 날은 다뉴브 강변에서 어떤 날은 루인 펍에서, 이 도시에서의 밤은 매일매일이 황홀했다. 


☆ 2017년 9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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