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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Mar 15. 2021

퇴근길, 자연과 친구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면

대자연의 치유가 필요하다면 ⑥ 코스타리카의 몬테베르데


코스타리카는 ‘Pura Vida'(= Pure Life)라는 인사말처럼 행복하고 순수한 삶을 지향하는 국가다. 영세중립국으로서 국방비 예산을 국민들의 행복을 위한 ‘복지비’로 사용하고, 국토의 1/3을 야생 동물 보호 구역으로 지정할 만큼 잘 보존된 자연 생태계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국가 행복 지수’에서 여러 번 1위를 했고 중미 국가 중 치안이 가장 좋은 나라이기도하다.



코스타리카에서 즐겨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대자연’이다. 이 곳에서 약 일주일 간 체류하면서 짚라인, 캐녀닝, 야외 온천, 나이트 워크(밤에 산림 보호 구역을 걸으며 야생 동물을 구경하는 활동) 등 대자연 속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액티비티에 참가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전 세계에서 1%만 존재한다는 운무림(Cloud Forest)에서의 트레킹이었다. 



운무림은 ‘습도가 높아 구름이나 안개가 늘 끼어 있어 풀과 나무가 무성한 숲’을 말한다. 운무림 트레킹에는 연간 방문 관광객이 20만 명이라는 ‘몬테 베르데 운무림’과 2만 명이라는 ‘산타 엘레나 운무림’의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사람이 아닌 자연을 만나기 위한 트레킹이었기에 규모가 작아 조용히 산책할 수 있다는 산타 엘레나 운무림에 가기로 했다. 태곳적 야생의 숲 속에서 신비로운 자연의 숨소리를 듣고 그 기운을 온몸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생각에 트레킹 전 날부터 마음이 들떴다. 


 

셔틀버스 시간을 고려하여 비교적 짧은 코스인 ‘Youth Challenge’를 선택하고 초입에 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한 번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무성한 나무와 풀들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토록 야생 그대로 보존된 숲은 살면서 처음 만나보았기에 눈길을 두는 곳마다 나의 호기심이 부풀어올랐다. 마침 한국에는 봄의 불청객인 황사와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터, 일부러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호흡을 수시로 더 깊게 하며 걸으니, 청정도 100%의 이 공기를 내 호흡이 더럽히고 있는 건 아닌지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Cano Negro’ 코스 시작점부터 본격적으로 진짜 운무림이 나타났는지 수풀은 더 빽빽해지고 어두워졌다. 게다가 인적마저 드물고 한 동안 오가는 사람이 없어 오싹한 기분으로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더 씩씩하게 수풀을 헤쳐나가 보고 가끔 노래도 흥얼거려 보았지만 공포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자연 속에서 경외감을 느끼며 홀로 사색하는 시간도 좋지만 또다시 운무림 트레킹을 한다면 그때는 누군가와 꼭 함께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덧 다시 관광객이 보이기 시작해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고 계속 걸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3시간 만에 출구에 도착했다. 그래서 버스 시간이 넉넉히 남았기에 같은 코스의 가까운 전망대까지만 한번 더 다녀오기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천천히 걸으면서 아까는 무심코 지나쳤던 수많은 풀과 나무들을 찬찬히 관찰하고, 가끔씩은 멈춰 서서 그 촉감을 느끼고 향기를 맡아보았다. 놀랍게도 마치 모두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로웠다. 만약 한번 더 와서 제대로 보지 않았더라면, 내 머릿속의 이곳 운무림은 어둡고 거친 이미지가 더 강하게 남았을 것 같다. 



이렇게 가까이서 가만히 자연을 관찰했던 때가 언제였었나. 세상 모든 사물이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요즘 아이들에게 자연은 어쩌면 생소한 존재이며 실내의 디지털 기기만으로도 보고 놀 것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자연은 최고의 놀이터였고 주로 그 속에서 놀잇감을 만들어 냈던 것 같다. 어렸을 적 시골에 놀러 가면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서 먹고,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며, 소가 송아지를 낳는 모습을 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때 묻지 않았던 그 시절, 산타 엘레나의 대자연은 내게 잊고 있었던 그 순간을 잠시나마 투영하여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누린 특별한 세대로서 그런 추억을 가질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해 주었다.


☆ 2018년 3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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