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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Dec 06. 2020

퇴근길, 현실에서 벗어나
동화 속으로 가고 싶다면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면 ① 부탄의 푸나카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는 여행 중 그리고 여행 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 대답 앞에는 항상 “저에게는요”가 생략되어있었습니다. 개개인의 취향이 다르고 여행한 시기와 날씨, 만난 사람, 심지어 당시의 개인적인 컨디션까지, 여행지의 인상을 결정짓는 수많은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추천하는 여행지들은 순전히 한 개인의 취향임을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너무 유명하고 관광객들로 붐비며 뻔한 기대를 갖게 하는 곳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90여 개 국을 여행했지만 그곳의 모든 도시와 장소를 가 본 것도 아니고, 나머지 100개 이상의 나라는 아직 가 보지 않았으므로 제한된 정보이기도 하다는 점을 감안해 주세요.


동화 같은 스위스의 풍경이나 비현실적인 우유니 소금사막처럼 너무 유명한 곳은 제외하고자 했는데 그럼에도 그런 장소가 들어가 있다면 도저히 뺄 수가 없었던, 정말로 추천하고 싶은 장소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방문 시기를 참고할 수 있도록 마지막에 표기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언젠가 또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마음 잡으며 비행기를 타기 전 머뭇거릴 때, 공항 직원이 미소를 띠며 다가와 혹시 떠나기 싫은 거냐고 물었다. 많은 외국인들이 그런다면서. 2008년 터키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지내다 집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눈물이 나왔었다. 그런데 일주일 간의 짧은 여행 후에도 떠나기 싫어 눈물을 머금은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부탄’이었다.



부탄은 처음 그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 흠모하던 곳이었다. 높은 행복 지수 및 체류 비용을 높임으로써 관광객을 제한한다는 점이 (다만, 가이드 말에 따르면 1년에 방문객을 일정 수로 제한한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라고 한다. 자유 여행이 불가하며 비수기 기준 개인 가이드와 운전기사, 차량, 숙박과 식사 등 모든 비용을 포함하여 일일 약 200불을 지불했었다) 남과는 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는 여행 허세를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서른 살, 30대의 첫 여행지로서 부탄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부탄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청정한 공기’였다. 이토록 코가 뻥 뚫리는 깨끗한 공기는 태어나서 처음 맡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부탄인들이 행복한 이유가 매일 이 공기를 마시기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말이다. 공항에 도착 해 나만을 위해 준비된 가이드와 운전기사를 만나 차를 타고 수도 팀푸를 향해 달렸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감동적인 공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본능에 창문 밖으로 목을 쭉 내밀 수밖에 없었다. 앞 좌석에 앉은 가이드는 부탄에 처음 도착한 모든 외국인이 다 그런다면서 웃었다.  



다음 날, 3천2백 미터 고도의 안개 덮인 도출라 패스를 지나 ‘푸나카’로 향했다. 우기라 밤새 폭우가 쏟아졌는데 다행히 점차 밝아지더니 맑은 햇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부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푸나카 종은 포추와 모추강 사이의 환상적인 입지 속에서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내뿜었고, 남녀 화합이라는 상징성도 있어 현재 왕과 왕비의 결혼식이 열린 로맨틱한 사원이었다. 더 강렬해진 햇빛에 푸나카 종은 눈부시게 반짝였고, 비수기라 관광객이 없어 이 황홀한 광경을 홀로 보고 있으니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푸나카 종 근처의 사원 ‘치미라캉’으로 가는 길, 싱싱한 초록의 계단식 논이 펼쳐진 시골 마을을 천천히 걸으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고 심호흡을 하니 가슴 깊은 곳에서 편안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가이드 ‘이쉬’와 운전기사 ‘아르케’와 함께 부탄의 ‘GNH(국민행복지수)’에 관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이쉬는 ‘GNH’는 하나의 컨셉일 뿐 그것이 모든 부탄인들이 행복하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했고, 아르케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사회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사실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행복’을 핵심 가치로 정했다는 것은 국가가 국민을 소중히 대하는 자세를 보여주기에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내가 만난 부탄인들은 모두 국왕 부부를 좋아하고 있었다. 팀푸 거리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포스터에는 왕과 왕비의 사진과 함께 'Long live, our king'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국민들이 진심으로 통치자를 존경하는 나라, 어쩌면 세상에 그런 나라가 드물기에 부탄이 비현실적인 동화 속 왕국처럼 느껴졌다.


부탄의 맑은 공기는 말 그대로 숨만 쉬고 있어도 날 행복하게 해 주었다. 더불어 아름다운 미소로써 강인한 내면을 보여주는 국민들과 그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통치자가 살고 있었기에, 비행기가 이륙할 때쯤 동화 속에서 현실 세계로 빠져나온 것처럼 그곳에 마음을 놓고 올 수밖에 없었다.


 ☆ 2016년 7월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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