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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Dec 08. 2020

퇴근길, 나의 진짜 웃음을
찾고 싶다면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면 ② 스페인의 세비야


스페인은 내게 특별한 나라다. 퇴사 후 장기 여행의 스타트를 끊은 국가이며,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3주 간의 체류 동안 홀딱 반해서 ‘가장 좋았던 국가’라는 물음에 첫 번째로 생각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첫 국가로 스페인을 선택한 이유는 오랜 기간 만나기 위해 그간의 짧은 휴가 속에서 아껴두었던 나라였으며, 가고 싶은 장소 1위에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마어마한 기대 그 이상의 감동을 안겨주었던 가우디의 걸작을 만나러 ‘5월 5일’,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바르셀로나행 비행기에 올랐다. 



5월의 스페인은 피카소의 작품처럼 선명하고 강렬했다. 지중해의 강렬한 햇살이 사물의 가장 찬란한 빛을 끌어내어 눈을 황홀하게 만들었고, 아직은 덥지 않아 따뜻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 마음을 살랑살랑 흔들어 놓았다. 방금 말갛게 샤워를 마친 듯한 공기를 마시며 신록의 기운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참으로 오랜만에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 온화한 날씨는 다른 이들의 마음도 무장해제시켰는지 모두들 나처럼 즐거워 보였다. 



이렇게 사랑에 빠진 나라에서 추천하고픈 딱 한 도시를 고르는 건 쉽지 않았지만, 결국 우리가 스페인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세비야’로 정했다. 세비야가 속해있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8세기부터 15세기까지 8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슬람의 지배 아래 있었기에, 이슬람과 가톨릭 두 개의 종교가 어우러진 무하데르 양식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오후 6시가 되어서도 남다른 스페인 남부의 뜨거운 태양을 마주하며 골목길을 걸었다. 대성당과 히랄다 탑, 알카사르, 작은 골목 구석구석까지 눈길이 가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고풍스러웠고, 한 가지 색으로 정의할 수 없는 분홍과 보랏빛의 자카란다 꽃이 여기저기 만개해 있어 그림 속에 들어온 듯했다. 밤 10시쯤 서서히 어둠이 질 무렵, 빛과 어둠의 경계에 있는 몽환적인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이 도시에 사랑 고백을 하고 싶어 졌다. 완전히 해가 진 뒤에는 영롱한 붉은빛의 ‘띤또 데 베라노’를 한 잔 마시며 과달끼비르 강의 야경을 바라보았고, 혼을 쏙 빼놓는 플라멩코 공연을 즐긴 뒤 떠들썩한 거리를 지나올 때면 나의 두 발이 춤을 추고 있었다. 



“스페인 인들은 바에서 아침을 먹어” 아름다운 날씨를 찾아 세비야로 왔다는 영국인 재키는 내가 묵고 있는 에어비엔비 주인의 플랫메이트였다. 그녀가 같이 아침을 먹자며 데려간 곳은 숙소 근처의 ‘Bar Alfafa’, 내가 하몬과 토마토와 어우러져 입에서 살살 녹는 하몬 샌드위치에 감탄하고 있을 때, 재키가 말했다. 어제 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주변을 바라보는데 문득, ‘아, 내가 세비야에 있다니!’ 감탄사가 나오더라” 세비야는 이제 이 곳에 온 지 5년이 넘었다는 재키도 새삼 감동하는 도시였다.


스페인에서는 매일 소리 내어 웃는 시간이 많았다. 몇 달 전만 해도 항상 긴장된 상태로 경직되었던 회사에서의 내 모습은 이미 털어버린 후였다. ‘살면서 이렇게 매일 행복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신기하고 감사했다. 아직도 스페인에서 보낸 그 해 5월을 떠올리면 가만히 미소가 떠오르니, 나에게 황홀한 시간들을 선물해 준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그곳이 있어 행복하다.


☆ 2017년 5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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