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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Dec 13. 2020

퇴근길, 이 도시를
나 혼자 걷고 싶다면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면 ④ 몬테네그로의 포드고리차


세계적인 메가시티 서울에서 나고 자라 도시의 편리함을 다 누리면서도, 복잡하고 정신없는 대도시를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가슴 한편에 품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 중 도시라는 타이틀이 어색할 만큼 ‘소박한 대도시’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발칸 반도에 위치한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였다. 



몬테네그로는 유고 및 신유고 연방에 속해있다가 2006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한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신생국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연이 아름답고 특히 아드리아해 연안의 아름다운 해안 마을인 ‘코토르’가 휴양지로 유명하다.  



미니 버스를 타고 밤에 도착한 포드고리차는 직전 도시였던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보다 공기가 상쾌하고 녹음이 우거져 있어 첫인상이 좋았다. 그리고 다음 날 시내 중심부로 갔는데, 볼거리가 없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왔음에도 새삼 놀랐을 만큼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인포메이션 센터와 가게들까지 문을 닫았고 거리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아 ‘지금 내가 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것이 맞나, 시골 동네에 와 있는 건 아닌가’하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세르비아 정교회의 교회인 ‘Saborni Hram’에 가는 길,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공원을 지난 뒤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 순간, 문득 포드고리차의 진짜 볼거리는 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한가로운 수도’라는 점. 도로 위에 걸려있는 몬테네그로 국기만이 이 곳이 수도라는 것을 말해주는 여유가 넘치는 도시라는 것. 길고 긴 보도 위에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어, 마치 고요한 이 도시의 ‘주인’이라도 된 듯 근사한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약 20분 정도 걸어 도착한 교회에서 우연히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바로 몬테네그로인 자매 유나와 유리(물론 그녀들이 지은 한국 이름이다).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웃음이 많았던 이 자매는 당시 송혜교-송중기 커플 결혼 소식부터 한국은 몇 년 전만 해도 동성동본이 결혼할 수 없었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고수 한류 팬들이었다. 몬테네그로에는 한국어를 배울 곳이 없어 제본 뜬 교재로 독학하고 있다는데 나와 한국어로 기본적인 대화를 무리 없이 이어갈 정도라 그들의 한국어 사랑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나 혼자가 아닌 우리 셋이 전세 낸 듯 한적한 시내를 산책하다가, 같이 저녁을 먹으며 한 바탕 수다를 이어가기도 했다.



매일 이렇게 나와 한국어로 대화하며 한국어를 연습하고 싶다던 귀여운 유나와 유리. 저 멀리 생소한 나라 몬테네그로에서 만나 더욱 반가웠고 내가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마치 한류 스타를 만난 듯 호의를 보여주어 고마웠다. 내게는 그녀들 덕분에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몬테네그로이지만, 다음 ‘몬테네그로인의 10 계명’을 읽으면 일에 지친 사람들은 누구나 이 나라를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1. Man was born tired and he lives to rest - 사람은 피곤한 채 태어나 쉬기 위해 산다 

2. Love your bed as you love yourself - 너 자신을 사랑하듯 침대를 사랑하라 

3. Rest during the day so during the night you can sleep - 밤에 잘 수 있도록 낮에는 쉬어라

4. Do no work; work kills - 일 하지 마라, 일은 사람을 죽인다 

5. If you see someone resting, help him 쉬는 사람을 보면 도와라 

6. Work less than you can, and give away to others what you can 할 수 있는 것보다 적게 일하고 다른 사람에게 맡겨라 

7. In shade is salvation; nobody has died of rest 그늘에 있는 것이 구원이다. 누구도 쉰다고 죽지 않았다 

8. Work brings illness; don't die young - 일은 병나게 한다. 젊어서 죽지 마라 

9. If by chance you wish to work, sit down and wait; you will see, it will pass 혹시 일하고 싶다면 앉아서 기다려라. 그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10. When you see people eat and drink, approach them; if you see them work, withdraw yourself not to disturb them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있다면 다가가고, 그들이 일하고 있다면 방해하지 말고 가라



☆ 2017년 7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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