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이 도시를
나 혼자 걷고 싶다면

몬테네그로의 포드고리차

by 경험주의자


세계적인 메가시티 서울에서 나고 자라 도시의 편리함을 다 누리면서도, 복잡하고 정신없는 대도시를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가슴 한편에 품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 중 도시라는 타이틀이 어색할 만큼 ‘소박한 대도시’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발칸 반도에 위치한 몬테네그로의 수도 ‘포드고리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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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는 유고 및 신유고 연방에 속해있다가 2006년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한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신생국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자연이 아름답고 특히 아드리아해 연안의 아름다운 해안 마을인 ‘코토르’가 휴양지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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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버스를 타고 밤에 도착한 포드고리차는 직전 도시였던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보다 공기가 상쾌하고 녹음이 우거져 있어 첫인상이 좋았다. 그리고 다음 날 시내 중심부로 갔는데, 볼거리가 없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왔음에도 새삼 놀랐을 만큼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인포메이션 센터와 가게들까지 문을 닫았고 거리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아 ‘지금 내가 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것이 맞나, 시골 동네에 와 있는 건 아닌가’하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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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정교회의 교회인 ‘Saborni Hram’에 가는 길, 사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공원을 지난 뒤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 순간, 문득 포드고리차의 진짜 볼거리는 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한가로운 수도’라는 점. 도로 위에 걸려있는 몬테네그로 국기만이 이 곳이 수도라는 것을 말해주는 여유가 넘치는 도시라는 것. 길고 긴 보도 위에 사람이라고는 나밖에 없어, 마치 고요한 이 도시의 ‘주인’이라도 된 듯 근사한 기분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약 20분 정도 걸어 도착한 교회에서 우연히 반가운 ‘손님(?)’을 만났다. 바로 몬테네그로인 자매 유나와 유리(물론 그녀들이 지은 한국 이름이다). 마치 사춘기 소녀처럼 웃음이 많았던 이 자매는 당시 송혜교-송중기 커플 결혼 소식부터 한국은 몇 년 전만 해도 동성동본이 결혼할 수 없었다는 것까지 알고 있는 고수 한류 팬들이었다. 몬테네그로에는 한국어를 배울 곳이 없어 제본 뜬 교재로 독학하고 있다는데 나와 한국어로 기본적인 대화를 무리 없이 이어갈 정도라 그들의 한국어 사랑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나 혼자가 아닌 우리 셋이 전세 낸 듯 한적한 시내를 산책하다가, 같이 저녁을 먹으며 한 바탕 수다를 이어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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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이렇게 나와 한국어로 대화하며 한국어를 연습하고 싶다던 귀여운 유나와 유리. 저 멀리 생소한 나라 몬테네그로에서 만나 더욱 반가웠고 내가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마치 한류 스타를 만난 듯 호의를 보여주어 고마웠다. 내게는 그녀들 덕분에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몬테네그로이지만, 다음 ‘몬테네그로인의 10 계명’을 읽으면 일에 지친 사람들은 누구나 이 나라를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1. Man was born tired and he lives to rest - 사람은 피곤한 채 태어나 쉬기 위해 산다

2. Love your bed as you love yourself - 너 자신을 사랑하듯 침대를 사랑하라

3. Rest during the day so during the night you can sleep - 밤에 잘 수 있도록 낮에는 쉬어라

4. Do no work; work kills - 일 하지 마라, 일은 사람을 죽인다

5. If you see someone resting, help him - 쉬는 사람을 보면 도와라

6. Work less than you can, and give away to others what you can - 할 수 있는 것보다 적게 일하고 다른 사람에게 맡겨라

7. In shade is salvation; nobody has died of rest - 그늘에 있는 것이 구원이다. 누구도 쉰다고 죽지 않았다

8. Work brings illness; don't die young - 일은 병나게 한다. 젊어서 죽지 마라

9. If by chance you wish to work, sit down and wait; you will see, it will pass - 혹시 일하고 싶다면 앉아서 기다려라. 그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10. When you see people eat and drink, approach them; if you see them work, withdraw yourself not to disturb them -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있다면 다가가고, 그들이 일하고 있다면 방해하지 말고 가라



☆ 2017년 7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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