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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an 23. 2018

[사직동 그가게 작은 책방] 두번째 만남

작당명은 <내 책을 부탁해>

어린이작가들의 그림책이 흘러 흘러 닿은 곳, 사직동 그가게 작은 책방.


두 번째 만남, 우리는 기증할 책을 가지고 만났다. 책의 주인이 되어 줄 독자에게 메세지를 써서 책갈피를 만드는 작업. 
빼마는 귀한 종이라며 물감이 칠해진 종이를 내온다. 우유곽을 불려 껍질을 벗겨내고 그린 계열의 수채 물감으로 곱게 칠한 종이. 이 공간에 존재하는 것들은 손길을 탄 것들이 많다. 손바느질 한 수공예품, 손글씨, 손으로 접은 종이, 손으로 칠한 흔적... 이런 것들엔 시간과 정성이 담겨져 있다. 

그가게엔 그렇게 시간과 정성을 들인 따뜻한 종이 조각들이 벽마다 구석마다 자리해있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손을 타 각기의 다른 글씨체와 모양새를 지닌 것들이지만 일정한 정서의 결을 지닌 것들. 우유곽부터 휴지곽, 과월호 잡지, 천 조각까지 여기선 어느것도 허투루 버려지는 것이 없다. 사방을 뒤덮고 있는 그것들을 둘러보며 손으로 종이를 찢고 펜을 눌러 글을 썼다. 이제 내 손길을 탄 책갈피도 이 공간 안에 찬찬히 녹아들어 갈 것이다. 

나는 다섯 권의 책을 가져가 기증했다. 
모두 교육미술관 통로에서 독립출판한 책.

먼저 요즘 내가 가슴에 품고 있는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 
그리고 [교실 속 그림책]중에서 고른 네 권의 그림책이다. 
고심하여 고른 네 권의 그림책은 [가까이 가지마세요], [엉킨 실], [어둠 그리고 우주], 그리고 [솎아내기]. 

어린이작가의 그림책을 감탄하며 한 장 한 장 유심히 넘겨보던 빼마는 이 책은 기증서로 내어 팔기엔 너무 아깝다 한다. 이 그림책은 사직동 그가게에 귀하게 두고 두고 손님들과 카페지기들과 함께 읽는 것이 어떻겠냐 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빼마는 특히나 [솎아내기]를 가슴으로 읽어주었다. 약한 것에 마음을 둘 줄 아는 어린이작가 이혜빈의 마음에 책방 지기들도 함께 감동해주었다. 이어 교사 독자가 쓴 화답시 [솎아내라]를 읽으면서는 더욱 감탄했다. 그러다 어린이 독자들이 그림책을 감상하며 쓴 화답시에는 더더욱 탄복을 했다. 

빼마는 특히나 남편에게 이 시를 읽어주고 싶노라 했다. 남편은 지기들이 마음을 담아 벽에 붙여놓은 것들을 그 어떤 것도 잘 버리지 못한다 했다. 그런 그에게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해주고 싶다고. 

회의 후 밥을 먹는 와중에도 빼마님은 그림책의 감격을 열변하며 솎아내기 본문과 화답시를 읽어주었다. 밥 먹다 말고 시를 읊는 것도 매양 익숙한 일(?)인 것처럼 카페지기들은 고개를 끄덕여가며 콩나물 밥을 꼭 꼭 씹었고 귀 기울여 주었다. 
그림책이 밥상 위로 불쑥 올라간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생경하고도 정겨웠다. 달콤한 라씨를 마시다 말고 빙그레 웃음이 났다.

본인 이름과 같은 작가의 책을 가져온 민규님. 
(지기님들 말맞다나)'이상문학상 작품집'과 참 잘 어울리는 청년.^^ 

그렇게 우리는 각자가 가져온 책에 직접 만든 책갈피를 끼워서 내놓았다. 




회의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고 마감으로 분주해질 때까지 빼마와 함께 록빠와 통로를 통해 품고 있는 서로의 것들을 나누었다. 티벳 어린이들의 이야기, 찾아가는 도서관 이야기, 통로의 그림책 창작이야기, 책을 덮으면서 우리의 가슴 속에 다시 시작되어온 이야기들... 

빼마는 통로의 그림책 영어 번역본이 있다는 것을 반가워했다. 우리에겐 지난 인도네시아 우붓의 고아원 페르마타 하티에 기증했던 열 세권의 영어 번역본 그림책이 있다. 그리고 이후에 작업했던 그림책들도 영어 번역본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왔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림책을 더 멀리 흘려보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통로의 그림책과 그림책 창작 수업으로 티벳의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사직동 그가게에 발길이 닿는 이들, 그들 중 어떤 이는 이 작은 책방의 취지를 알아보아 주고 중고책을 구매한다. 그 후원금으로 티벳의 어린이들을 위한 '찾아가는 도서관'의 새 책을 구비하는 일을 이어가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입구 한 구석에 놓아진 이 중고책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집어드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달에 한 번씩, 작은 책방 자선 경매를 진행하기로 작당한다.
작당명은 <내 책을 부탁해>.
준비물은 사연이 담긴 책 한권이면 된다. 
옹기 종기 모여 앉아서 각자의 책에 담긴 사연을 나누고, 그 책을 원하는 이들이 경매 가격을 부르는 것.
낙찰된 가격에 책 주인이 정해지고, 책 값을 전액 '찾아가는 도서관'에 기부한다.
내 책 한 권을 새로운 주인에게로 보내고, 기분좋은 기부로 또 다른 이의 책 한 권을 가지는 것이다.
첫 작당일은 글을 쓰는 오늘로부터 일주일 뒤인 1월 28일 저녁 5시.

빼마는 자선 경매의 오프닝을 [솎아내기]와 [솎아내라]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한다. 그림책을 함께 읽고, 또 이 그림책에 화답해준 독자들의 시를 함께 읽으며 모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자는 것이다. 
"식물은 솎아내기로 약한 새싹을 뽑아내지만 사람은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솎아내기의 주제와 이 곳 록빠의 철학이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 말한다.


그리하여 나는 화답시를 써준 K언니에게 직접 시를 낭송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부끄러워하던 언니는 결국 승낙을 해주었다. 3월이면 언니는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 언니의 가정이 꿈꾸는 삶을 향해... 그 꿈이 이끄는 대로... 그렇게 흘러간다. 언니가 떠나기 전 이렇게 록빠에서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으니 빼마의 제안을 부담보다는 기쁨으로 여기자 했다. 특히나 우리가 마음을 주고 받았던 그림책과 시로서 함께 할 수 있으니 더욱 감사한 일이라고. 그렇게 마음을 모았다.

우리의 그림책과 시에 담긴 것이 그날 함께한 또 다른 누군가에게 홀씨처럼 흘러가기를... 웅크린 마음을 건드려 다시 시작할 용기와 계기가 되어주기를...바라면서 그날 저녁, 한 공간에 모이게 될 이름모를 이들을 마음 속에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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