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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Feb 24. 2018

[좋아서하는 그림책 연구회] "안과 밖의 만남"

깨고 꺼내고 만났습니다

                     

[좋아서하는 그림책 연구회] "안과 밖의 만남" 
서른명 가량의 인원이 모여 깨고 꺼내고 만났습니다.
그림책, 그리고 사유와 창작을 사랑하는 분과 만나면 가슴 깊숙이 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저의 발제로 연구회 첫 시작 문을 열었습니다. 이번 달의 주제인 <틀과 자유>를 고민하면서 특히나 어린이작가들과 창작했던 그림책의 사례와 연결하면서 좀더 살아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첫 시작은 아주 작은 '틈'을 파고들어 '틀'을 무너뜨린 그림책 몇 권을 소개해드렸어요. 틀을 깨는 것은 거대한 판을 뒤엎는 것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때로 작은 틈을 노릴 때 그 틈을 타고 틀이 와장창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책의 틀과 문법에 대해서 나누었어요. 그림책에도 틀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유리 슐레비츠나 모리스 샌닥의 그림책은 기승전결의 시퀀스가 정연하지요. 
그러나 어린이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창작에 있어서는 문법을 수용하도록 가르치기 보다는 소통의 도구로서 자신의 내면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발산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어린이작가와 함께하는 그림책 창작의 핵심은 문법과 틀이 아닌 '소통'입니다. 

틀을 강조하면 그것에서 벗어난 것은 망친 것이 됩니다.
"망쳤어요." "난 원래 소질이 없어요."
아이들이 교실에서 많이 하는 이야기지요. 어디 아이들 뿐인가요. 여러분은 삶에서 이렇게 생각했던 적 없으신가요?

여기, 틀을 과감하게 벗어나 색과 질감만으로 그림책을 창작한 어린이작가가 있습니다. 그 내용 역시 틀을 벗어났지요. 인터넷 채팅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그림책이거든요. 그러나 놀라운 공감과 신선한 감동을 주는 작품입니다. 

이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늘 어두웠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림을 잘 못그려서 고민과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그림을 안그려도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그림을 잘 그려야만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거든요. 

그림을 안그리고도 나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고심한 끝에 아크릴 물감의 색과 질감으로 내면을 거칠게 표현했습니다. 어린이작가는 색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서 발산 할 때 쾌감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유리 슐레비츠나 모리스 샌닥이 이 어린이의 그림책을 보면 그림책의 문법에서 벗어났다고 나무랄까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색과 질감 안에 담긴 본질적인 것들을 바라보아 준다면요. 

이 그림책을 감상한 어린이 독자 중 한 아이는 이렇게 말했어요.
"아, 이렇게 창작해도 되는 거였어요?"
기존의 동화가 제시하는 틀을 따라 한 권의 이야기책을 창작한 경험이 있는 아이였지요.

'동화창작'이라는 견고한 틀을 벗어나면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림책창작을 통해 어린이작가들에게 '이렇게 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12년 간의 학창시절 중에서 나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고 발산하는 경험을 그림책 창작을 통해 선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틀이 없을 때 우리는 온전한 자유를 느낄까요?
막연히 주어진 자유 앞에 오히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놓지 못하고 백지의 공포를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때는 어느 정도의 틀이 막막함을 보완해주고, 틀은 그 안에서의 자유를 보장해주기도 하지요. 제한은 창의력을 극대화시킵니다. 
그림책도, 그리고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림책창작의 시작에 있어서 어떻게 틀을 제시하고 어떻게 자유를 누리게 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점선그림책과 글없는 그림책을 통해 도구에는 틀을 주고 발상에는 자유를 줄 것을 제안합니다.
점과 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굉장히 많습니다.
피에트 몬드리안의 그림에서부터 뉴욕의 서점에서 만난 Nigel Peake의 그림책에 이르기까지, 점과 선으로 표현한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장면들을 나누었어요. 


그리고 어린이작가들과 함께 한 점선그림책을 소개했습니다. 아이들의 점선그림책을 가지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아요. 이 부분에서 강의 도중에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이 났어요. 아이들이 내게 손을 내밀때 틀을 깨고 그것과 만나고 싶은 간절함과 절박함이 제 안에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이들의 이런 표현을 보면 저는 매번 그렇게 눈물이 납니다... 

그 간절함과 절박함으로 교실의 유리벽을 뛰어넘었던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서울 to 뉴욕 펌프 프로젝트"를 통해 하늘을 가로질러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학교라는 유리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었어요. 존재와 존재를 잇는 연결통로가 되어 본질적이고 살아있는 무언가를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단 한명의 아이에게라도 다시 일어설 마음의 힘이 되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연구회 운영진들이 다섯개의 소그룹으로 나뉘어 가깝게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 가져온 나만의 그림책을 꺼내고, 내가 깨고 싶은 틀 혹은 깨본 틀을 꺼냈습니다. 모두들 어찌나 자신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풀어내시는지, 공간 가득히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틀과 자유>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나누어주신 분께서 <오래 슬퍼하지 마>라는 그림책을 소개해 주셨어요. 그 말씀을 받아서 제가 나누었던 그림책은 <간식을 먹으러 온 호랑이>였습니다. 두 그림책을 비교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더 깊게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개인적으로 저도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그림책인 <아저씨 우산>를 가져와 나누어 주신 분도 계셔서 반가웠어요. <뭐 어때>와 함께 두 권을 비교해서 풀어내주셨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가진 잠재력을 아낌없이 꺼내어 사용하지 못하고 안으로 숨어드는 경향에 대해서 나누었어요. 인색함과 두려움으로 자신을 마음껏 나누어주지 못하고 품은 에너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삶이란 얼마나 안타까운지요. "소중한 것을 잔뜩 껴안고 집 구석에서 잠들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내 안의 우산을 활짝 펼쳐들었던 제 경험을 보태어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백번째 양 두두>를 나누어 주셨던 분이 계셨어요. 양 한마리, 양 두마리...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기를 기다리고만 있지 않고 스스로 이름을 불러내는 '주체'가 된 두두에게서 제대로 틀을 벗어난 통쾌함을 느꼈지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창작의 주체가 되는 경험, 끊임없이 발산하고, 써내고, 만들어내고, 생산하고, 표현하는 능동적인 삶을 추구하는 우리 연구회의 방향과도 맞닿은 부분이 있어 더욱 반가웠던 그림책이었습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직접 꿰어봐야 내 것이 되겠지요. 듣기만 하고 끝나고, 느끼기만 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장면이라도 직접 표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간단한 표현도구를 준비하여 문장과 그림으로 한 장면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나무열매 연구회 운영진이 본인이 깨고싶은 틀에 대해서 나누었어요.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하지요. 그러나 인생의 목표를 행복으로 정했을 때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왜 지금 나는 행복하지 않은거지? 뭔가 잘못된것 아니야?" 조바심을 갖게하는 그런 틀에서 벗어날 때 오히려 자유와 행복을 만끽할 수 있지요.

벚꽃이 흐드러지듯 그림책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쏟아냈던 우리는 이제 자세를 고쳐앉고 작은 엽서종이 위에 내면을 담아내기 위해 집중합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무엇을 깨고 싶은가? 혹은 무엇을 깨고 싶지 않은가? 혹은 무엇을 깨뜨려 보았는가? 골똘히 생각하며 백지 위에 무언가를 펼쳐내기 시작했어요. 

제가 가장 인상깊었던 분은 바로 이 분이셨어요. 그림을 그리라고 드렸던 붓펜을 뚜껑도 열지 않고 '구멍을 뚫는 도구'로 활용하셨던 분이셨죠. 저는 이 엽서를 보면 통쾌함이 느껴집니다. 구멍을 '그리는' 것과 직접 구멍을 '뚫어놓는' 것은 완전히 차원이 달라지는 이야기지요. 붓펜을 그리지 않고 '끼우는' 행위는 엽서라는 2차원의 공간을 단번에 3차원으로 바꾸어버리니까요.

이 엽서를 보면 캔버스에 구멍을 내고 칼자국을 냈던 현대미술가 루초 폰타나의 작업이 생각났습니다. 캔버스를 물감을 바르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칼자국으로 구멍을 냈을 때 우리는 캔버스 너머의 것을 인식하게 하지요. 제 책상 앞에 붙여두고 종종 바라보면서 틀 너머의 것을 상기하고 싶은 엽서입니다.  

멀리 세종에서 와주셨던 분. 낯선 서울의 지하철역에서 남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 계단으로 뚜벅뚜벅 걸어올라왔던 아침의 경험을 나누어주셨어요. 그렇게 뚜벅뚜벅 걷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태도나 모습과도 같다고 말씀하셨지요. 미련스럽지만 한 발자국 씩, 멍청스러워도 한 계단 씩, 그렇게 살아왔다고... 현재 그림책 작업을 하고 계시다고 더미북도 품고오셔서 보여주셨는데, 그림에서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한걸음씩 걸어가고 계신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겐 그 걸음이 전혀 미련스럽지도, 멍청스럽지도 않게 보였어요. 그 꾸준하고 위대한 걸음을 마음 깊이 응원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마다의 이야기와 내러티브를 담고 있는 이 엽서를 이렇게 여러분과 나누고 공유합니다. 내가 써내고 그려내는 것들은 나의 일부이고 조각이지요. 그 하나 하나를 정성스럽게 모으고 만나고 파고 들어가다보면 내 안에 담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느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내어놓는 것,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창작하는 삶의 가장 첫걸음이자 궁극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책을 매개로 여러분과 함께 깨고 꺼내고 만날 수 있어서 진심으로 행복했습니다. 

좋아서하는 연구회 안과 밖의 만남 3월의 모임은 3/22(목) 저녁 7시입니다.
3월의 주제는 <경계와 선택>입니다.
많이 고민하고, 사유하고, 들여다보고, 흘려보내다가 따뜻한 봄날 우리 또 만나요. 
이날 함께해주셨던 모든 분들,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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