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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May 31. 2018

언니가 간다, 용기와 행동으로 이어온 계보

[뉴욕서점에서 만나다(3)-Strands]

                                                                                         

[뉴욕서점에서 만나다(2)-Strands] 1. 언니가 간다, 용기와 행동으로 이어온 계보

움베르트 에코는 스트랜드를 예찬했다. 그곳에 가면 무언가 다른 책을 발견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스트랜드의 숲은 울창했다. 붐비는 사람들 속에서 방대한 중고서적을 분류하는 직원들은 몹시 분주했고 병풍처럼 서가를 둘러싼 가죽 양장의 고전 컬렉션은 그 자체로 고풍스러웠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손 글씨다. 매장 곳곳에는 책에 대한 추천 내용을 빼곡하게 적은 손 글씨 쪽지가 매니저의 사진과 함께 붙어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군데군데 “Women’s rights are human right” 라는 책갈피가 끼워진 책들이다. 유독 이 서점에는 여성에게 초점이 맞추어진 책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책 얼굴을 보이고 당당히 누워있었다. 스트랜드에서 내가 만난 책 속의 언니들을 소개한다. ‘계보에 오를 수 없었던 이들’이 모여서 만들어낸 계보를 이 서점에서 따라가 볼 수 있었다.
     






Faith Ringgold [Tar Beach]

내가 만난 언니들의 계보 첫 번째 주인공은 페이스 링골드다. 그녀는 고조할머니로부터 퀼트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플로리다에서 노예로 살았던 시절부터 가업으로 이어져왔던 것이 바로 퀼트였기 때문이다. 1930년 뉴욕 할렘에서 태어난 링골드는 퀼트 작품 안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았다.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믿었던 그녀는 흑인 여성으로서 살아왔던 자신의 시간을 작품으로 기록하였으며 인종과 젠더에 관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이러한 신념으로 자신보다 먼저 태어난 흑인 여성 운동가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펼쳐냈다. 오늘날 우리는 그녀가 기록한 예술을 통해 역사를 바라본다.

링골드의 퀼트 <타르 비치>는 뉴욕 할렘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을 담고 있다. ‘타르 비치’는 아파트 빌딩 옥상을 부르는 말이다. 주인공 캐시는 여름밤이면 가족들과 함께 타르비치에 갔다. 집에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사방이 확 트여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여있고 멀리는 조지워싱턴 대교가 보인다. 아빠는 조지워싱턴 대교에 케이블을 감아올리는 일을 했다. 그러나 인종차별 때문에 조합원증을 얻지 못했고, 노동조합에 포함되지 않았기에 이후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했다. 담요에 누운 캐시는 하늘을 보면서 무엇이든지 이루어지는 상상을 한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서 아빠에게 조합원증을 얻어주고, 내친 김에 조합 빌딩을 사준다. 엄마가 걱정 없이 잠을 푹 자게하고, 가족들이 매일 저녁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길 소망한다. 하나의 퀼트 작품에 담긴 이 서사는 한 권의 그림책이 되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네가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시도해 보는 것.’ 그녀가 쓰고 부른 노래의 가사다. 그녀가 시도한 예술을 통해 오늘날 나는 한 흑인 여성이 뉴욕 할렘에서 경험하고 꿈 꾼 것을 고스란히 전해 받았다. 이제 나는 나의 시간을 작품으로 기록해야할 것이다. 나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한 사람’이 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Harriet Tubman [Aunt Harriet’s Underground Railroad in the sky]
  Rosa Park [If a bus could talk’]

  페이스 링골드는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여성들의 계보를 찾아 그림책으로 펼쳐 보인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 페이스 링골드는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1820년생 해리엇 터브먼과 1913년생 로자 파크스는 여성으로서 또는 흑인으로서 자신을 지켜온 자들의 확실하고 든든한 계보다. 해리엇 터브먼은 태어난 해를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며 짐작할 뿐이라고 전해진다. 부모는 글을 읽고 쓸 줄 몰랐으며 하찮은 노예의 생일을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이 태어난 날을 존중받고 그것을 기록하고 기념할 수 있다. 그러나 노예출신 흑인이 자신의 생년월일을 존중받기 위해서는 기나긴 투쟁의 역사가 필요했다.

그녀는 1849년 남부 메릴랜드의 고향을 탈출 해 흑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북부 펜실베니아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회고한다. “경계선을 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아직도 전과 똑같은 나인가 확인하기 위해 내 손을 쳐다보았다. 그 모든 것이 그렇게 찬란해 보일수가 없었다.”

해리엇 터브먼의 조부모는 아프리카에서 ‘사냥’을 당해 강제로 미국으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부모가 노예 2세대였으므로 그녀 역시 태어날 때부터 자유를 강탈당한 채 노예의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유 없는 불평등의 삶에 의문을 품고 스스로 자유를 찾았을 뿐 아니라, 동료 흑인들의 자유까지도 찾아주려 노력했다.

'지하 철도’라는 반노예 운동가 네트워크와 아지트를 통해 흑인들을 북부로 탈출시키는 등 노예 해방 운동을 실천했던 것이다. 실제 철도나 기차는 없었지만 이 탈출 작전은 지하철도라는 은어로 불렸다. 탈출 경로를 철로, 도망 흑인노예를 숨겨주는 조력자의 집을 역, 흑인노예들을 이끌어 북부로 안전하게 탈출시키는 인도자를 차장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그림책은 한 남매가 이 지하철로를 통해 캐나다로 탈출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섬뜩한 것은 풀숲 너머나 담장 너머에서 흑인 남매를 감시하는 흰 얼굴의 사람들이 페이지마다 쫓아다닌다는 것이다. 탈출한 노예에게 거액의 현상금이 걸리고 도망 노예 송환법이 생겼다. 이 그림책은 수백 명의 노예들이 지하철도를 탑승하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말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무성 영화를 보는 듯했다.” 실제로도 이 탈출 여정은 숨죽인 적막 가운데 행해졌을 것이다. ‘GO FREE NORTH OR DIE’ 입 안에 고여 있는 이 말을 속으로 강하게 되뇌면서 노예들은 살 떨리는 여정을 감행했을 것이다.
 

  해리엇 터보먼은 탈출한 노예들이 빛을 찾도록 도우면서 하나의 계보로 우뚝 섰다. 최근 미국 연방 재무부는 20달러 지폐에 들어갈 인물로 그녀를 선정했다. 2020년부터 사람들은 20달러 지폐를 꺼낼 때마다 그녀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그녀의 행보는 평등과 권리를 위해 싸우는 여러 세대의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

그녀의 뒤를 이어 로자 파크스는 식당과 화장실과 수영장에 붙은 ‘FOR WHITE ONLY/COLORED’ 표지판을 없앴다. 버스에 앉을 자신의 권리를 지켜낸 것이 그 시작이었다. 만약 자리를 옮기라는 버스 기사의 요구에 그녀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했고, 그것이 그녀의 일생과 사회를 바꾸었다. 작은 행동은 침묵하는 다수의 마음을 움직여 사회 변화를 위한 동력으로 모였다. 용기는 행동이 되고, 그 행동은 또 다른 용기로 흘러간다.





  and Malala.

  이들의 계보를 이은 21세기에는 말랄라가 있다. 스트랜드를 비롯한 뉴욕 전역의 서점은 이 어린 여성에 주목했다. 1997년에 태어난 말랄라는 파키스탄 북부 스와트 밸리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세운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교육을 받았고, 열 살 때부터 여성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교육운동을 펼쳤다. 그녀는 익명으로 영국 BBC 방송 블로그에 탈레반에 점령당한 일상을 공개하고 여성의 교육권을 옹호하는 글을 연재했다.

그녀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에서 탈레반 대원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았다. 함께 있던 친구 두 명도 상처를 입었다. 말랄라는 영국으로 옮겨져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계속해서 여성 교육운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노벨 평화상은 말라라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녀는 레바논에 있는 시리아 난민 캠프를 돕고 나이지리아에 있는 학교를 지원하기도 한다.

  말랄라는 “한 명의 아이가, 한 명의 교사가, 한 자루의 펜이,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교육권을 박탈당한 소녀들에게 책과 펜을 들 것을 종용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녀의 말처럼 총으로는 테러리스트를 죽일 수 있지만 교육은 테러리즘을 없앨 수 있다. 나는 교육 현장의 최전선, 교실의 한 가운데에 책과 펜을 들고 서있다.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다만 나는 같은 고민을 반복하며 제자리 머무르지 않기로 다짐한다. 고민한 것을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하기 위해 손으로 만지고 발로 뛰는 용기와 뚝심을 가지기로 한다. 행동하는 한 사람으로서 오늘날 내 삶 속에서 그 계보를 충실히 이어가리라 다짐한다.




* 글을 쓴 이현아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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