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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un 06. 2018

묘목 한 그루

색과 빛과 언어

묘목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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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갠 봄날, 아빠와 등산을 갔다. 흙먼지가 씻겨 내려간 숲에선 신선한 풀냄새가 났다. 촉촉한 연둣빛 공기가 가슴을 가득 채우면 기분이 산뜻해졌다. 나는 종달새처럼 쉴새없이 종알거리면서 아빠를 따라 폴짝폴짝 산을 탔다. 걸을 때마다 발바닥 아래 폭신한 흙의 촉감이 느껴졌다. 아빠는 어린 내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이건 산수유, 이건 자귀, 이건 상수리…. 내 눈에는 비슷해 보이는 이파리도 아빠 눈에는 하나하나 다른 이름을 가진 잎이었다.

"딱 이정도 나무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빠의 발길이 멈춘 곳에 아담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나무는 볕이 내려앉은 자리에서 연두색 새순을 피워냈다. "이건 무슨 나무야?" 무심코 던진 질문에 아빠는 나무 이름 대신 죽음을 이야기한다. “거추장스러운 묘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렇게 작은 나무 한그루면 충분하겠다. 그저 가끔 아빠 생각이 날 때 들여다볼 게 하나 있으면 좋잖아. 기왕에 자라는 생명이면 더욱 좋고….”

아빠는 종종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당뇨를 앓게 되면서부터였다. 아빠는 건강을 잃었지만 삶과 죽음에 대해 일찍부터 묵상할 기회를 얻으셨다. 아빠가 들려주는 죽음은 무겁지도 않고 절망적이지도 않았다. 마치 계절이 지나면 두꺼운 옷과 이불을 꺼내는 것처럼, 그렇게 담담하고 자연스러웠다. 다행히도 당뇨는 관리가 가능한 질병이었다. 당뇨를 다스리면서 아빠의 삶은 단순하고 담백해졌다. 소박한 식단, 술 담배가 전혀 없는 일상, 규칙적인 운동, 매일 저녁의 기도가 전부다. 기름기를 쫙 빼내고 본질에만 초점을 맞춘 삶을 살면서 아빠의 얼굴빛은 날로 맑아졌다. 비록 살은 조금씩 빠졌지만 말이다.

아빠는 언제나 가을날의 노을빛처럼 은은한 태도로 삶을 대했다. 뜨겁게 타올랐던 젊은 날의 아빠도 분명 존재했을 텐데,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줄곧 따뜻한 노을빛이었다. 아빠는 40대 중반부터 자신에게 허락된 날이 그리 길지 않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매사에 무리하는 법도 없고 욕심내는 법도 없다. “아빠 아직 살 날 많이 남았어. 백세시대잖아.” 아빠가 죽음을 이야기하면 나는 눈을 흘기면서 투덜댔다. 계절은 쌀쌀하게 흐르지만 아직 나는 긴팔 옷을 꺼내고 싶지 않다. 아빠의 초가을 안에 반팔을 입은 채 오래 머무르고 싶다.

내가 아빠에게서 배운 것은 담백한 삶의 자세다. “얼마나 좋니, 산에 어린 나무 한그루 남겨놓고 가는 것….” 아빠는 삶을 부여잡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무언가를 남기기위해 아둥바둥 하지도 않는다. 그저 생명을 품은 한 그루의 묘목으로 돌아가길 꿈꾼다. 해마다 봄이면 아빠가 보여주었던 그 연둣빛 어린 나무가 생각난다. 매일 산을 오르면서 이 나무, 저 나무 눈여겨보았을 아빠의 눈길을 헤아려보게 된다. 아빠는 그 나무에게 뿌려질 자신의 뼛가루를 자주 떠올렸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담담하고 단단한 시간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부모님이 나란히 앉아 기도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그 매일의 기도 안에는 소탈한 삶과 평온한 죽음이 있다. 그리고 거기엔 언제나 동생과 내가 있음을 안다. 33년간 부모님이 흘려주는 기도를 받기만 했다. 아빠를 위해 작은 나무를 심어드릴 그날까지 이제는 내가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내년이면 환갑을 맞는 아빠는 다행히도 건강하시다. 그의 삶에 단풍이 만개하기를, 그 은은하고 따뜻한 가을빛을 오래도록 곁에서 바라볼 수 있기를, 아빠가 내게 가르쳐준대로 담담하게 기도할 것이다.


* 글을 쓴 이현아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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