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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Sep 14. 2016

애들이 무슨 이런 이야기를 '어린이다운' 그림책에 대해

교육미술관 통로 [교실 속 그림책]

"애들이 무슨 이런 이야기를"

'어린이다운' 그림책에 관한 단상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린이 다운' 책을 기대한다. 동화와 그림책 역시 어른들이 생각하기에 '아이들이 읽어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혹은 '아이들이 읽기에 적합할 것이라 사료되는' 것들을 쓰고 그려서 아이들에게 읽도록 권한다.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 우울한 색감, 현실적이고 불편한 이야기와 같은 류는 '어린이 답지 못하다'고 여겨 어린이책의 소재로 반기지 않는다. 일례로 '내용이 너무 무겁다'라는 이유로 국내에서 10번이나 출판 거절을 당했던 강경수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해외에서 먼저 출판되어  볼로냐 라가치 상(논픽션 부문 우수상)을 수상한 후에야 국내에서 출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런' 아이들이 아니다. 어른들의 생각처럼 마냥 동화 속에 살고 있지 않다. 미디어시대를 살고있는 우리 아이들은 연일 TV와 인터넷에서 보고 듣는 것들을 알게 또 모르게 흡수하며 자라나고 있다. 네이버 포털 사이트를 켜고 SNS의 피드를 손가락 끝으로 슥슥 올리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을 보고 듣는다. 보고 들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을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과 책쓰기와 그림책창작작업을 하면서 그들이 꺼내어 놓는 '내면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되었다. 13살의 아이들은 학사모를 써도 취업이 되지 않는 사포세대의 청년실업 문제에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서열화하고 무한 경쟁하는 사회 분위기에 새싹처럼 '솎아내어 질 까봐' 불안해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교사의 마음이 열려있지 않으면 얼마든지 '어른들이 보기에 무난할 만한 학교 모드'의 이야기를 꺼내어 천연덕스럽게 써내려 갈 수가 있다. 그러나 '내 얘기를 귀기울여 듣는구나' 하는 래포가 쌓이면 다른 이야기,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슬며시 내어놓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아이들이 써내려간 결과물들이 '에이, 애들이 무슨...'하는 하찮은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들려준 아이들의 이 이야기들에 주목하여 그것을 소중히 하고, 진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그림책으로 끌어내는 것이 내가 진행하고 있는 이 프로젝트에서 도달할 수 있는 굉장히 의미있는 지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언제고 아이들에게 '진짜 네 이야기를 해봐! 네 '진짜' 고민이 뭔데?' 하고 진심의 흰 종이를 활짝 펼쳐내어 본 적이 있었던가? 어른들이 '어린이 답지 못하다'라고 여기든 그렇지 않든, 아이들은 이미 '일자리는 없는데 집값는 자꾸만 오른다'는 현실의 뉴스를 미디어로 접하고 있고,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잔소리 앞에 '학사모를 써봤자 취업도 안된다는데... 대체 대학은 왜 가야하는건데?'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4포세대라는데 나도 조금 지나면 포기하게 될까봐 불안하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취업 못하는거 아니야?'라는 두려움도 느낀다. 고민의 끝에 '꿈을 위해서 공부하고 학사모를 써야 한다면, 대체 그 '꿈'이라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에 이른다. 나는 이러한 고민의 흐름을 함께 공감해주고 구비구비 제대로 흘러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꿈을 크게 가져라, 장래희망을 써보라' 하는 것보다 훨씬 필요하고 가치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며내지 않고, 눈치보지 않고, 아이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펼쳐 낼 수 있는 그림책. 그것을 '애들이 무슨 이런 이야기를'이라 여기지 않고 인정해주고, 받아들여주고,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그림책. 나는 교실 속에서 그런 '살아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그림책으로 담아내는 일을 이어가고 싶다.                                                   

                                                                                                                                                         

이 글을 쓴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은 학사모입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 쓰는 것이 바로 학사모 이지요. 그런데 신문이나 뉴스에서 어렵게 대학 졸업을 해서 학사모를 써도 청년실업률이 높아서 취업도 잘 안되고, 집값은 자꾸 높아지는데 돈을 벌지 못하는 청년들이 결혼도 포기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학사모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요즘 같은 4포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꿈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나를 쓰고 졸업하는데... 대체 꿈이란 무엇일까?”
   
제 장래희망이 법의학자여서 공부를 잘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성적이 중간정도여서 ‘포기해야하나? 포기하지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다가 제 이야기를 학사모에게 담아서 여러분께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죠.
     
제 책의 주인공인 학사모처럼 독자 여러분들도 고민이 많을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안 된다는데 왜 대학을 가야할까?”
“꿈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어떤 꿈을 가져야 할까?”
저도 여러분처럼 이런 고민이 많았습니다. 제 이야기를 담은 이 그림책을 함께 읽으면서 독자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꿈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이혜승 작가의 스토리보드를 보고 마음 깊이 감탄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신문과 뉴스에 연일 보도되는 4포 세대의 청년 실업 문제. 어쩌면 회색빛이 가득한 소식들 앞에 ‘대학 입시’라는 무거운 관문까지 눈앞에 두고 허덕이는 우리 학생들, 그들이 바라보는 이시대 사회의 모습.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결코 암담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꿈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이작가의 깊은 생각과 통찰력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학사모는 묻는다.
“꿈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해야 할까?
꿈을 찾아가는 여정은 결코 열두 살 학생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래전 학사모를 쓰고 졸업을 한 우리들 역시, 이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묻고 고민하며 살아하지 않을까?

이작가가 이 그림책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를 통해 어른 독자들 역시 오래전 썼던 학사모와 함께 멈추어 두었던 스스로의 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독립출판으로 어린이작가 그림책 만들어주기 #4]
*신문, 잡지, 포털사이트 검색과 캡쳐 등을 활용하여 콜라주로 작업하였습니다.                                                  



* 글을 쓴 이현아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담백한 시, 두툼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거친 나이프그림. 이 두가지를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삶의 여정에서 만난 행복 중 큰 것으로 여깁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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