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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Jan 23. 2017

[교육미술관통로]페르마타하티에서의 그림책수업이야기(4)

[교실속그림책] 통로이현아Voluntravelling프로젝트 서울to우붓

                                                                                 

Voluntravelling프로젝트 서울to우붓
[Picture books in the Classroom] 
페르마타 하티에서의 그림책 수업 이야기(4)-교육미술관 통로 (통로 이현아)

수업은 뜨겁게 무르익어갔다. 몰입한 아이들은 하나 둘씩 바닥에 내려와 앉기 시작했다. 바닥에 앉아서 그리거나 의자를 책상 삼아서 그렸는데, 책상이 너무 좁아서 오히려 그게 더 편안한 것 같았다. 

아이들이 무아지경에 빠져 그럴듯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동안, 수업 내내 시종일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유가 자리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수업과 그림책을  구상하면서 맨 첫장에 원장님 아유의 이야기가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교실에서 수업이 시작하고 나서는 아이들 보느라 정신이 없어 아유에 대해서는 아예 잊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어떻에 내 마음과 통해주었는지, 스스로 펜과 종이를 챙겨들고 앉아 이렇게 함께 참여해준 아유를 보면서 그 열려있는 마음이 너무 고맙고 감동이었다.  

아유는 다음과 같이 자신을 표현했다. 

나는 나무이다. 
나는 초록을 사랑한다. 
나는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돌보아주고 싶은데,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내게도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유가 쓴 그림책의 제목은 'Green Tree'였다. 

When you see all the earth Green,
How do you feel?
You feel relax and make green.
I love Green.
I can see green everywhere...
Can you see Green in this page?
I can see green leaves on your eyes.
Go Green, Save our planet.

내게도 온통 푸른 Green 으로 기억된 우붓, 아유는 자신의 그림책에 그 푸른 초록을 담아주었다. 

이제 하나씩, 아이들의 완성된 결과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쾌하고 대담하게 써내려간 남자아이들, 그리고 한국에서 와서 함께 참여한 아이들이 빨리 완성하였다. 

단과 린이 그린 해와 별 이야기

강이가 쓴 그림책의 주인곳 Ketut이 과연 이곳에도 있었다. 발리에서 우리는 수많은 Ketut들을 만났다. 페르마타 하티의 Ketut은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첫 장면을 써놓고 더이상은 영어로 쓰는 것을 어려워하던 Ketut에게 인도네시아어로 써도 된다고 하자 다음과 같이 한 장면을 쓰고 그렸다.

그리고 서로의 작품을 보며 낄낄대면서 온종일 유쾌하게 쓰고 그렸던 두 아이, Nova와 Adi의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노바는 잠자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잠을 잘 때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잠을 잔다. 왜냐하면 나는 졸리기 때문에! (이 장면을 그리면서 수업 내내 졸고 있던 개 미스티를 보면서 노바와 아디는 미친듯이 웃으며 장난쳤다. 유쾌하고 즐겁게 장난치는 아이들을 보니 한국의 교실에서도 늘 이렇게 웃는 몇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라 오버랩되었다. 노바와 아디를 보니 그 장난꾸러기들이 보고싶었다.)

노바는 아주, 아주 졸립다. 그리고 아침이되어 노바는 일어났다! 끝!!

감사합니다.^^

아디는 개 이야기를 쓰고 그렸다. 

안녕? 내 이름은 개야.

개는 음식이 필요해! 개는 사랑이 필요해!(그림은 아디와 미스티)

나는 개를 정말 사랑해! 끝!!
이렇게 읽으면서 낄낄낄 웃었던 아디의 유쾌한 웃음이 아직도 떠오른다.^^

이건 네덜란드에서 온 David가 쓴 이야기이다. 너무 귀여운 두 남매였는데, 특히 여동생은 자신이 스스로 할 수 있을것 같은 일들도 온통 오빠에게 도와달라, 같이해달라, 하며 요청했고 오빠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못이기는척 여동생에게 읽어도 주고, 설명도 해주고, 도와주었다. 나중에 아빠가 데리러 오셨고 그분과 신랑이 한참을 대화했는데, 나중에 듣고보니 이 곳 페르마타 하티에서 수업과 일을 돕는 분이라고 하셨다. 여동생은 지금 아내와 자신 사이에서 낳은 아이이고, 오빠 David는 아내와 전남편 사이의 아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아빠가 두 남매를 예뻐하고 그림책이 끝날때까지 바라봐주며 기다려주는 모습이 참 보기좋았다. David는 의기양양하게 자신이 완성한 책을 아빠에게 보여드리고 아빠가 다 읽을 때까지 무척 기대하는 눈망울로 스스로 박수를 치면서 기다렸다. 과연 마지막장을 넘긴 아빠는 David를 으스러지게 안아주시며 마구 칭찬을 부어주셨다.  

Davids는 비이다. 왜냐하면, 비가 올 때 그 속에서 함께 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슬플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바로 우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들로 꽉찬 수업이 어느덧 두 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아이들과 내일의 수업을 기약하고서 수업을 마무리했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책상을 정리하고 빗자루로 자리를 쓸고, 색연필과 종이들과 그림책을 착착 정리해서 앞으로 가져다 놓았다. 이 장면은 확실히 한국 학교의 아이들과 달라서 어안이 벙벙하였다. 어떻게하면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이렇게 뒷정리를 내 일처럼 솔선수범 하게 할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끝까지 남아 정리를 도와준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멋지다고, 칭찬하면서 첫 수업이 끝났다.  


아유와 아이들과 한참동안 인사를 하고 페르마타 하티를 나섰다. 전혀 피곤하지 않았는데 수업이 끝나고나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우리는 페르마타 하티 바로 맞은편에 있는 카게무샤라는 식당으로 갔다. 이 카게무샤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혜리언니가 추천해주기도 했고 신랑이 트립어드바이저를 보니 최고의 극찬이 자자한 곳이라 하여 갔었는데, 과연, 이 곳은... 천국이었다! 아담한 정원 뜰에서 맛보는 정갈한 일본 가정식, 내가 발리에 와서 이다지도 제대로된 일본 음식들을 먹어볼 줄이야... 신랑과 나는 터를 잡고 앉아 오랫동안 Bintang 을 마시며 그 맛있는 음식들을 마음껏 음미했다.  

Bintang은 왜이리 맛있고, 이곳 분위기는 왜이리 아늑하며 음식은 왜이리 맛있는지... 내게 이 장면이 이번 여행 Best scene으로 급부상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에서는 잘 마시지도 않는 맥주인데 이 Bintang은 왜이리도 맛있는지 발리에 있을 때 저녁마다 마셨다. Bintang 한 잔과 음식과 분위기에 나의 눈과 마음과 다리는 흐물흐물하게 풀려 오징어가 되어갔다. 그런 내게 신랑은 '너 오늘 수업 정말 잘했고, 아이들 표현 보고 감탄할 때 진짜 행복해보였어. 그래서 나도 오늘 정말 좋았어.'라고 말했다. 나도 씩 웃으며 화답했다. 늘 듣던 말 같고 별 것 아닌 말 같았는데 지금까지도 이 장면, 이 말이 마음 속에 깊게 남아있다. 문득 자꾸만 생각이 나서 힘이난다. 알지만, 말로 해주면 힘이된다. 다 알지만, 표현해주면 강력하게 남는다.  나도 그래야지, 나도 아이들에게, 그래야지. 하면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저녁이었다.



* 글을 쓴 이현아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담백한 시, 두툼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거친 나이프그림. 이 두가지를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삶의 여정에서 만난 행복 중 큰 것으로 여깁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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