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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Oct 12. 2017

[그림책서평] 수박이 먹고 싶으면(이야기꽃)

월간그림책 10월- 교육미술관 통로(통로 이현아)

월간그림책 10월호에 쓴 그림책 서평입니다. 

둥근달처럼 잘 영근 그림책, 이야기꽃에서 나온 '수박이 먹고싶으면'이에요.

“아이들의 영혼을 살리는 일, 교사는 영혼에 울림을 주는 존재야.” 
어릴 적 부모님은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몸소 봉사하는 삶을 보여주셨다. 
늘 아이들 운동화 흙먼지로 범벅이었던 승용차 뒷좌석의 시트, 
아픈 허리로 기어코 번쩍 들어 옮기던 커다란 국통…. 
나는 부모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허리를 낮추고 고생하는 게 속상했다. 
교육학을 공부하며 만난 루돌프 슈타이너도 같은 말을 했다. 
“교사는 영혼의 예술가다.”

그러나 교단에 서니 아이들의 영혼은 너무 멀리 있었다. 
그저 손에 쥐어지는 씨앗이 아니었다. 
심고 가꾸어야만 겨우 맺힐까 말까 한 열매와 같았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은 그런 성장의 과정을 이야기한다. 
흙 이불을 살살 덮어주는 시간, 
‘수발 싹 제가 절로 난 줄 알도록’ 무심한 듯 모른 척해주는 시간,... 
북 돋워 물을 뿌려주면서 짠 땀을 뚝뚝 떨어뜨리는 시간.

그렇게 한 시절을 고스란히 보내면 둥글게 영근 순간을 만나기도 했다. 
아이들이 슬며시 자신을 내보여주는 순간들이다. 
엉킨 실타래 같은 속을 내보이며 그 매듭을 스스로 풀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를, 
내면의 어둠에서 자신만의 우주를 발견했다는 아이를 만났다. 
그렇게 미끄러져 나가듯 서로에게 붉은 속을 내보이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수박이 먹고 싶으면』은 씨앗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흙을 밟고 갈아엎는 쭈글쭈글한 맨발의 뒤꿈치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이 첫 장면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발바닥에서 뒤꿈치를 타고 이어지는 그 잔주름 하나하나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 발에 밟히고 쟁기에 갈리는 붉은 흙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다. 
땅을 부드럽게 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먼저 하얀 캔버스에 꼼꼼하게 젯소칠을 해야 하듯이, 
그 어떠한 씨앗을 위해서라도 흙을 갈아엎어 바탕을 마련하는 일이 먼저 필요한 것이다.

주름진 발바닥으로 내 안을 밟아 다시 부드럽게 하는 심정으로 매년을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땅에 또 스무 개 남짓의 씨앗이 심길 것이다. 
고단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열매를 사모하며 나의 연약함과 다시 치열하게 마주해야 한다. 
아이들의 내면에 귀 기울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올해도 자연스럽게 서로 붉은 속을 내보일 때까지 다시 또 기다려야 한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말이다.




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17/10/01/201710011048001519.html


 




* 글을 쓴 이현아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담백한 시, 두툼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거친 나이프그림. 이 두가지를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삶의 여정에서 만난 행복 중 큰 것으로 여깁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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