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통로이현아 Dec 10. 2017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책미리보기 연재(2)

프롤로그

독자님들, 오늘도 따뜻한 날 보내셨나요?

저도 오늘 소복 소복 눈이 조금씩 내리듯이 살포시 한 분 씩, 한 분 씩 독자가 되어주시는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를 보냈답니다.

아아. 오늘 특히나 감동했던 건요, 두 권을 주문해서 한 권은 학교 도서관에 기증해주시고
다른 한 권은 옆반 선생님들과 같이 읽겠다고 해주신 말씀 들었들 때였어요.
저는 이 책을 어른들과 함께 읽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여러 학교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나는 아이들이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면서 눈길과 손길이 오래 머무르기를...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창작을 시작할 수 있는 또 다른 신선한 계기가 되어주기를 바라요.
아. 생각만해도... ㅠㅠ 가슴이 콩닥거려요.

오늘은 여러분들께 책의 프롤로그를 살짝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그동안 <독립출판으로 어린이작가 그림책 만들어주기>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던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첫 시작의 계기와 고민들, 성찰의 시간과 작고 눈부신 열매들을 하나씩 정성껏 닦아서 차곡차곡 정리하는 기분으로 써보았답니다. 긴 호흡의 글이지만 독자님들의 가슴에 가닿는 글이길 바라봅니다.


자기표현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교사는 아이들의 영혼에 울림을 주는 존재란다.” 어릴 적 부모님은 내게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몸소 봉사하는 삶도 실천해 보여주셨다. 그것은 말처럼 고매한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흙 묻은 운동화 자국으로 늘 범벅이었던 승용차 뒷좌석, 아픈 허리로 기어코 번쩍 들어 옮기시던 커다란 국통….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위해 부모님이 허리를 낮추고 고생하시는 것이 속상했다. 교육학을 공부하며 만난 루돌프 슈타이너도 부모님과 같은 말을 했다. “교육은 예술이며 교사는 영혼의 예술가다.” 그는 인간 내면 속의 죽어 있는 부분, 굳어진 부분을 생생하게 다시 살리는 일을 교육의 과제라고 했다.

그러나 교단에 서니 아이들의 영혼은 너무 멀리 있었다.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매일 만나고 함께 호흡했지만 아이들의 살아 있는 지금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어른에 불과했다. 나는 묻고 싶어졌다. 내가 아는 ‘어린이의 세계’, 그것이 과연 유효한가? 나는 어쩌면 이토록, 이들을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일까? 학생들이 모두 하교한 오후, 햇살이 길게 내려앉은 빈 책상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오후 두시 반이 지나는 순간, 어쩌면 이 교실은 아이들과 가장 멀리 떨어진 유리 성 안에 불과하다는 것. 유리 벽의 안과 바깥 사이의 온도 차가 느껴졌다. 내가 보고 만질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오로지 따뜻한 유리성 안에서의 시간에 국한되어 있었다. 제각기 흩어진 자리에서 아이들은 스스로의 삶을 감내한다. 아이들이 내게 들려준 ‘살아 있는 말’은 대개 그곳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안과 밖의 온도 차는 언제나 유리 벽에 뿌연 성에를 남겼다.

성에 낀 유리 벽을 바라보며 나의 작음과 마주했다. 작은 유리 상자와 같은 나 자신을 바라보며 처절하게 엎드렸다. 유리 덮개 아래에서 어쩌면 아이들은 딱 그 천정 높이만큼만 뛰어 오를 수 있는 존재로 재단되는 것은 아닐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마구 뛰어오르는 기운찬 아이들이 유리 천장에 타다닥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점점 줄어드는 어느 날, 아이들은 부딪치지 않고 적당히 뛰어오르는 법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네모반듯한 유리 덮개의 폭과 높이에 맞추어져 딱 그만큼의 반경에만 머물게 되는 것이다.

머지않아 아이들은 유리 덮개 밖 벌판에 발을 내딛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사회는 아이들에게 다시금 높이뛰기를 요구할 것이다. 이제 더 높이 뛰어 보라고, 왜 더 높이 뛰질 못하느냐고 다그칠 것이다. 유리 온실에서 노래하는 희망은 때때로 호리병 속에 갇혀버린 기분을 느끼게 한다. 바닥에서 올려다보니 병뚜껑이 너무 높다란 곳에 있다. 유리 벽에 맺힌 성에는 눈물처럼 뚝뚝 흘러내린다.

안과 밖의 온도 차를 극복하는 교실을 꿈꾸며


나는 안과 밖의 온도 차를 극복하는 교실을 꿈꾼다. 교실에서 아이들의 영혼에 귀 기울이기 위해 찾았던 나의 언어, 아이들과 내가 소통할 수 있는 매개는 ‘시’와 ‘그림’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시와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그 시간만큼은 우리를 휘감는 이 공기가 온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은 삶의 진정성을 품은 자신들만의 내밀한 세계를 보여주었다. 자유롭게 시를 그리고 그림을 썼다. 그 표현 하나하나에 전율하고 벅차오르는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림책을 ‘눈으로 보는 시’라고 했던 모리스 센닥의 말처럼 아이들이 창조한 시와 그림이 만나자 한 권의 그림책이 피어났다.

어린이작가의 글과 그림을 한 권의 그림책으로 만들 때 지향한 원칙이 있다면 오직 아이들이 지닌 있는 그대로의 지금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른이 그린 그림책 속의 동심을 흉내 내거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이상을 만나고 싶었다. 아이가 가진 생기, 그 살아 있는 느낌을 한 권의 그림책에 담아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표현으로 숨을 쉬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만난 세계의 진짜 모습과 느낀 바들을 품고 있는 그대로 마음껏 표현할 자유를 주는 것, 내가 해야 하는 전부는 오직 그것임을 깨달았다.

깨달음이 있자 이번에는 내가 만난 아이들의 세계를 어떤 근사한 틀에 담아주고 싶었다. 여기저기 반짝이며 떠돌아다니던 생각 한 조각이 그냥 흩어져버리지 않고 어엿한 한 권의 책으로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소중한 여김을 받길 바랐다. 맨처음 아이의 작은 생각 조각이 흘러나왔을 때는 서투른 모습의 글과 그림이었다. 그러나 사려 깊은 귀를 기울이면 그것은 멈춰 있지 않고 커져갔다. 그냥 툭 흘러나왔을 때는 낙서였고 엉뚱한 생각의 한 조각이었는데, 그것을 키워내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버티면서 들어주고, 완성하도록 끌어주면 마침내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을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해주고 싶었다. 고유의 출판등록번호를 부여하고 책의 물성을 가진 완성된 형태로 끝맺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독립출판 형식으로 어린이작가의 그림책을 만들어주기로 다짐하고 나니 새로운 질문이 던져졌다. 무작정 출판등록을 하면서 출판사 이름을 쓰는 ‘빈칸’을 마주하게 된 순간, 나는 당황했다. 아무리 떠올려도 ‘5학년 5반 담임교사, 이현아’라는 것 말고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서출판Lee’라는 이름으로 출판등록을 하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교육활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이 아무런 철학도, 어떠한 의미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름이 ‘Lee’면 어떻고 ‘Park’이면 또 어떻겠냐고 하겠지만 나에게 그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내 삶에 있어 ‘의미의 부재’를 처음 인지하게 했던 이름이었으므로. 나 자신을 깨뜨리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므로. 그렇게 나는 스스로의 이름을 찾기 위해, 내가 교단에 서 있는 의미를 찾기 위해 발버둥치기 시작했다.

뚜껑을 열라, 통로가 되라


잠잠히 내 안을 비추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아무것도 없다 생각했던 그곳에도 울림의 순간들이 있었다. 교실이라는 유리 온실에서 스스로의 연약함과 무력함을 느낄 때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내가 꽉 붙잡은 것이 있었다. “뚜껑을 열라. 통로가 되라”는 마음의 울림이었다. 내 안에 담긴 제한된 것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했을 때는 종종 한계를 느꼈다. 그러나 뚜껑을 활짝 열어 젖히자 나는 배움의 연결 ‘통로’가 될 수 있었다. 내가 열어젖힌 연결 통로를 통해 하나의 세계가 흘러가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다음의 두 가지 소망을 담아 ‘통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1) 흘러가다
: 내가 담아낼 수 있는 것보다 더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흘려보내는 연결 통로가 되기를 소망한다. (헨리 나우웬, 『나우웬과 함께하는 아침』 중에서)

(2) 스며들다
: 통로를 통해 흘러가는 선한 영향력이 아이들의 마음에 시와 그림이 되어 스며들기를 소망한다.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되고 이름과 뜻이 세워지고 나니 내 안에 꽉 막힌 물꼬가 터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림책은 작은 미술관”이라고 했던 나카가와 모토코의 말처럼 어린이작가들의 그림책을 한데 모아 전시하는 공간으로서 온라인상에 하나의 미술관을 만들고 싶어졌다. 어린이작가들의 꿈이 흘러가는 교육미술관 통로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렇게 독립출판으로 어린이작가의 그림책을 만들어주는 것에 마음을 쏟기로 다짐한 후, 지금까지 ‘교육미술관 통로’를 통해 90여 권이 넘는 창작 그림책을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자신의 속을 내보이며 그 매듭을 스스로 풀어보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를 만났다. 쓸모없게만 느꼈던 내면의 어둠에서 자신만의 우주를 발견했다는 아이도 만났다. 어린이작가와 교감하면서 함께 쓰고 그려낸 시와 그림에는 어른들이 감히 흉내 내거나 짐작할 수 없는 놀라운 세계가 담겨 있었다. 독일의 예술심리학자 루돌프 아른하임은 『시각적 사고』에서 작가의 의도가 가장 사적일수록, 그가 변형시키고 구체화한 이미지가 생생한 작품일수록 우리의 정서에 강력히 호소한다고 말한다. 나의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부분을 드러낼 때 그것이 보는 이의 가장 내밀한 부분과 맞닿아 가장 보편적이고 강력한 메시지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이 보여준 내밀하고도 생생한 심상들은 강력한 감동과 울림을 선사하는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다.

교육미술관 통로의 창작 그림책은 어린이작가에게 주는 선물의 의미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지도교사인 나의 월급에서 매달 1/10을 떼어서 모은 돈으로 인쇄비를 부담하여 만들고 있다. 인쇄비와 재료비 등으로 지출하고 나면 때때로 모아둔 금액을 벗어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일정한 틀을 정해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이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바르게 지속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둘째는 어린이작가의 창작 그림책을 만나게 될 이들이 이것이 쉽게 그냥 뚝딱 어디선가 만들어져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작가와 지도교사가 공교육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진정성을 담아 만들었음을 느껴주기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렇게 홀로 더듬더듬 이어가고 있던 ‘독립출판으로 어린이작가 그림책 만들어주기’ 프로젝트는 2016학년도에는 서울시교육청 독서교육 진흥사업의 독서·책 쓰기 동아리 공모에 선정되었다. 덕분에 소정의 지원을 받아 프로젝트를 운영할 수 있었다. 아울러 교육부와 대구교육청에서 지원하는 ‘2016 학생저자 출판 사업’에 서울시 대표로 선정되어 출판비를 지원받아 지금까지 작업한 어린이작가들의 그림책 중 일부를 한데 엮어 출간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이 ‘어린이작가’라는 자리에 앉길 원한다. 아이들이 독자로서 어른이 부려놓은 것을 읽는 존재에 머무르지 않길 바란다. 자신만의 언어를 가진 존재, 제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존재로 성장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꾸며내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가진 온도와 속도 그대로 가슴 속 이야기를 꺼내어 보이게 하는 것은 아이를 제대로 숨 쉬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고 믿는다. 그림책 창작의 과정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궁극은 다음의 두 가지다.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것, 그리고 누구나 책 한 권의 가치만큼 눈부시게 빛을 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마음이 출렁이는 그림책


어린이작가들이 쓰고 그린 것에서 나는 생동하는 빛을 발견했다. 그것은 새벽공기와 같은 청아함을 느끼게 했다. 가르친 것을 배워서 알게 된 것이 아닌 저절로 샘솟아 물안개처럼 피어오른 것들. 아동문학 평론가 최윤정이 말한 바 ‘알아져서 제 몸을 떠나지 않는 감각과 같은 무엇’이었다. 아이들이 선사한 그것은 창작 그림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독자인 나에게 스며들었고 이내 가슴으로 옮아갔다. 그것은 한 명의 교사이자 인간인 나의 삶에 생각지 못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나는 좋은 그림책이란 마지막 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이 던진 화두로 인해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마음이 출렁이는 그림책. 읽는 이의 가슴을 깨워 책 밖에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그림책. 마르셀 프루스트가 “작가의 지혜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지혜가 시작된다”고 말했듯이 좋은 책은 언제나 독자들에게 생각할 화두를 남긴다. 독서는 책을 읽는 행위를 가리키지만, 다 읽고 난 뒤 내 삶에 작은 한 가지라도 변화의 흔적을 남길 때 비로소 완성되는 행위가 아니던가.

그림책 창작의 과정을 통해 어린이작가들은 자신만의 색과 빛과 언어를 창조하며 스스로 삶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존재로 성장했다. 이 책은 어린이작가가 펼쳐낸 세계와 이를 읽고 난 뒤 독자의 삶 속에서 새롭게 재탄생한 이야기가 서로 대화하듯 호흡을 주고받은 것을 담아냈다. 통로의 어린이작가가 창작한 여덟 권의 그림책과 인도네시아 우붓의 아이들이 쓰고 그린 흔적들을 한데 모아 소중히 엮었다. 그리고 어린이작가들이 던진 화두에 독자가 화답해준 시와 읽는 이의 가슴을 깨웠던 성찰의 흔적들을 정성스럽게 모아 다시 어린이작가들에게 헌정하고자 한다.

내가 만난 어린이작가들은 모두들 빗방울에 깨어나는 초록 잎사귀와 같았다. 피천득 시인이 「오월」에서 노래했던 것처럼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듯 청신했던 얼굴들. 시인이 노래했던 것처럼 그 신록이 물을 머금고 푸르게 깨어나는 것을 바라보면 내가 이들 곁에 살아 있다는 사실이 벅차다. 한 사람이 자기 표현을 통해 삶 속에서 의미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를 알아보아주는 사람, 자기를 믿어주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어린이작가들을 알아봐주고 그 잠재력에 불을 붙여주는 한 사람, 그의 첫 독자가 되어주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 그 첫 이슬들을 찬미해주는 역할을 자처하고 싶다. 바라건대 그 첫 이슬을 담아 모은 이 책이 독자들의 내면에 또 하나의 빗방울로 보태어져 저마다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들이 비로소 와락 넘치게 하길 소망한다. 그래서 책을 덮으면서 모두들 온전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길 바란다.

2017년 11월
이 현 아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 의 구입을 문의하셨던 분들, 독자가 되어주시길 원하는 분들께 안내드릴게요.
이 책을 구입하기 원하시는 분들께 '만원의 행복'으로 책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제가 이 책 한 권을 만드는데 (소량인쇄했기에) 1만원 이상의 금액이 들어갔으므로 사실상 인쇄비용보다 적은 금액이에요.

제가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 독립출판사는 교사의 자비 부담으로 운영되며 수익을 추구하지 않아요.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의 창작그림책을 비매품으로 출판등록해오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고요.
이번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책으로 보다 의미있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다문화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만들어주는 일에 수익금을 전액 기부할 예정입니다.

총230권 한정판으로 출간한 책 중에서 현재까지 책을 구매해 주신분들께서 보내주신 금액이 벌써 70만원이 넘었어요.
독자들의 품으로 간 책들을 생각하면서 가슴을 콩닥거리고 있답니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 성함과 주소를 남겨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sMbxbXrEGb6YKsZ6B2q3dNz-MQq5XvTuizlM42Gv6qo7llg/viewform?usp=sf_link









그럼 독자님들, 다음 글은
[교실 속 그림책]학사모의 질문(이혜승 글 그림)과 함께
아이들의 현재가 아닌 동화를 보고 싶은 어른
"내가 아는 어린이의 세계, 과연 유효한가?"
라는 화두를 가지고 만나뵐게요^^
    




* 글을 쓴 이현아

그림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담백한 시, 두툼한 마티에르가 살아있는 거친 나이프그림. 이 두가지를 사랑하며 살게 된 것을 삶의 여정에서 만난 행복 중 큰 것으로 여깁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고 발견하는 삶을 가치롭게 여기며 교육과 예술이 지향하는 궁극의 본질도 ‘삶 속에서의 의미만들기 과정’ 과 다름없다고 믿습니다. 교실에서 의미를 발견한 날부터 아이들에게 스며흘러가는 통로의 삶을 살기로 다짐하고 배워서 남 주는 삶의 기쁨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현재 교육미술관 통로를 운영하면서 어린이작가들과 창작그림책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으며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명의 그림책 시리즈를 독립출판하고 있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교육자이자 연구자(A/R/Tography)의 한 사람으로서 독서교육과 미술교육의 두 맥락에서 그림책에 대한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내며, 가치로운 교육적 역할을 실천해내기를 소망합니다.     



*홈페이지 교육미술관 통로 http://www.museum-tongro.com




*블로그 http://blog.naver.com/okastor




                                              

작가의 이전글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책미리보기 연재(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