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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Dec 17. 2017

“다른 화분에 심으면 넌 거기서 제일 커.”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경쟁과 낙오, 솎아질까 두려운 아이들에게

똑똑.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연말이 되니 이리저리 마음이 후끈해지기도, 헛헛해지기도 하는데요
저는 책으로 마음이 통한 독자님들께서 전해주시는 말씀들을 매일 하나씩, 하나씩
가슴에 품고서 하루하루 힘을 내어보고 있답니다. (마음 전해주신 독자님들 정말 감사드려요^^)


오늘 독자님들께 소개하고 싶은 그림책은 '솎아내기'인데요,
책의 내용도 좋지만, 독자들이 써준 시의 내용이 더욱 울림이 있었어요.
그 울림의 파장이 잔잔한 물결처럼 퍼져나가 이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봅니다.



경쟁과 낙오, 솎아질까 두려운 아이들에게
“다른 화분에 심으면 넌 거기서 제일 커.”

뽑혀질까 두려운 아이들
우리는 이따금 쓸모없는 존재로 버려질까봐 두려움을 느낀다. 어쩌면 일상의 매 순간 간벌의 두려움을 느끼며 ‘솎아지지 않기 위해’ 저마다의 자리에서 악착같이 노력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육 심리학자인 하워드 가드너는 오늘날 청소년 세대를 ‘앱 세대’라고 표현하면서 인터넷의 발달로 자신의 존재와 쓸모를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확인받을 기회가 더욱 많아졌다고 말한다. 그는 『앱 제너레이션』에서 입학 사정관이나 미래 고용주의 마음에 들도록 자신을 포장하는 일에 집중하는 젊은이들의 실상을 토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수량화 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닌 대상으로 여기는 듯하다. 다시 말해 대학 수학능력 시험 성적이나 학교 성적 평점, 바서티 레터, 트로피, 지역 사회 봉사활동 증명서, 이런저런 수상 경력이 자기 자신을 말해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 종교계 지도자는 많은 젊은이들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내가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가?”와 같은 뜻으로 여긴다고 말하기도 했다.
_ 하워드 가드너, 『앱 제너레이션』 중에서

아이들은 성과를 낼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해 낮은 가치를 매겨버린다. 작고 약한 탓에 적자생존의 경쟁에서 밀려 누군가에게 뽑혀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 『솎아내기』의 독자는 이런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내가 싹이라면

내가 싹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내가 만약 싹이었으면
사람들이 날 뽑아낼 것 같다.
왜냐하면
키도 작아서
사람들이 약하다고 뽑아갈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걱정이다.
나는 싹이 싫다.
(11세 독자의 감상)
언젠가는
오늘도 나는
솎아내는 아이를
보았다.
언젠가는 나도
뽑힐 것 같다.
너무 두렵고 슬프다.
(13세 독자의 감상)
솎아내기

처음에는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다 자라지 않았는데도
뽑아버린다.

나도 저렇게 뽑힐까?
아직 다 자라지 않았는데도
뽑혀버리진 않을까?
두려워서
열심히 영양분을 먹고
자란다.
(13세 독자의 감상)


사람들이 자신을 분명 ‘약하다고 뽑아낼’ 것 같아 두렵다고 말하는 아이, 그리고 다 자라기도 전에 뽑혀져버릴까 조급한 마음에 쫓기듯 영양분을 먹고 자라려는 아이, 매일 교실에서 마주하는 우리 아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다. 그 새싹들이 뽑히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 이 가정과 교실, 사회 구석진 그늘에 마음이 어른거린다.

어린이작가 이혜빈은 실과 교과서를 보면서도 사회현상과 삶에 대해 통찰할 줄 안다. 교실과 텃밭에서 자신이 경험한 솎아내기를 사회적인 문제들과 연결한 것이다. 뉴스에서 보았던 입시경쟁 문제, 취업 문제, 구조조정 문제는 강한 새싹들이 잘 자라기 위해서 약한 새싹들을 뽑아내는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그녀는 자신이 성찰한 솎아내기의 갈등과 모순을 보다 거시적인 차원으로 확장하여 그림책의 서사로 발전시켰다.

아이들이 쓰고 그린 흔적에는 자신의 주변 일상과 삶의 맥락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하나의 텍스트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삶 속에서 만난 경험, 지각, 의미가 반드시 연결되어 담기기 때문이다.


뽑혀져 나가는 작은 새싹에는 소심한 아이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입시와 취업의 경쟁에서 도태될까봐 잔뜩 웅크린 아이들은 이 작은 새싹에 공감한다. 지금은 작게 웅크린 어깨라고 해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날갯죽지를 활짝 펼쳤을 때 얼마나 높이, 멀리 날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한 아이가 가진 잠재력은 함부로 속단할 수 없다. 지금 작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잠재력에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일찍부터 뽑혀져 나가는 새싹은 억울하고 슬프다.



누구에게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자신만의 화분이 있다

식물은 솎아내기를 하지만,
사람은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다 같이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린이작가 이혜빈의 책과 만나고 나서 나는 한편 마음이 무겁고 괴로웠다. 뽑혀져 버릴까봐 불안해하는 아이에게 아무런 대책 없이 “걱정 마, 잘 될 거야, 힘내”라며 말랑한 위로를 건네고 싶지는 않았다. 알맹이가 없는 위로는 아무런 힘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이 문제를 품고 고민했지만 나는 아이가 던진 화두에 어떻게 화답해주어야 할지 몰랐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마다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은 것처럼 답답했다. 어린이작가 이혜빈은 사람이란 식물과는 달리 약육강식을 떠나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과연 솎아내지 않고 경쟁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어울려서 함께 살아가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렇게 고민하던 내게 가르침을 준 한 독자의 시가 있었다. 그는 새싹을 뽑아서 버리지 말고 ‘다른 화분에 옮겨주자’고 제안한다. 나는 이 시를 읽고 정말이지 무릎을 탁 쳤다. 오래도록 품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교실에서 만난 아이의 시 한 구절에서 찾은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자신만의 화분이 있다. 뽑혀진 작은 새싹도 뿌리는 살아 있기에 다른 곳에 가서 다시 크면 된다. “다른 화분으로 들어가면, 네가 거기서 제일 크다”라고 격려하는 아이에게 나는 “너에게 한 수 배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현했다. 이제는 『솎아내기』를 아이들에게 읽어줄 때마다 이 시도 꼭 함께 소개한다. 아이의 시로 내 마음속 고민을 시원하게 해갈한 그날, 나는 가슴에 올려진 무거운 돌덩이에서 조금은 해방될 수 있었다.


솎아내기

약한 새싹은 비참하게
뽑힌다.
그럴 때마다
다른 화분에
옮겨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솎아내어졌다고 슬퍼하지 마
넌 뿌리가 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 가서
다시 크면 되는 거야.
다른 화분으로 들어가면
너는 거기서
제일 커.
(13세 독자의 감상)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자신만의 화분이 있다. 자신만이 가진 재능과 열정이 만나는 지점, 켄 로빈슨은 이 지점을 엘리먼트element라고 이른다. 우리는 자신만의 진정한 엘리먼트를 찾을 때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비로소 스스로의 진가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물 만난 고기’가 된다.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이 있다면 바로 그 물을 만날 기회를 갖게 해주는 것이다 아이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잠재력의 가치와 범위를 확장시켜주고 자신만의 개성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저마다 가진 여러 재능이 각자의 독특한 방식으로 합쳐져 고유의 한 사람을 형성한다. 그 고유함을 인정하고 잠재력을 이끌어내줄 때 ‘물 밖에 난 고기’의 심정을 느끼는 아이들도 자신만의 물을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을 제한하는 유리 덮개, 솎아내는 핀셋의 노릇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약육강식이 아닌 연대, 서로 돕는 삶의 태도
“다른 생물들은 약육강식, 그러니까 강한 것이 살아남지만 인간은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어낸걸요. 전, 인류가 생각해낸 가장 훌륭한 지혜가 바로 이거라고 생각해요.”
_ 오카 슈조, 『나는 입으로 걷는다』 중에서


오카 슈조는 『나는 입으로 걷는다』에서 독특한 연대의 방식을 보여준다. 주인공 다치바나는 스무 살이 넘었지만 몸이 아파서 등뼈가 마른 생선처럼 동그랗게 굽은 채 누워서 지낸다. 그는 종종 침대에 누운 채로 친구를 만나러 가곤 한다. 침대에 누운 채로 어떻게 친구를 만나러 갈까? 엄마는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주고는 누운 침대를 무턱대고 ‘길가에 내버려 둔 채’ 집 안으로 들어갈 뿐 더 이상의 도움은 주지 않는다.


다치바나는 바퀴 달린 침대 위에 누워서 근처에 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그러곤 사람이 나타나면 “좀 밀어주시겠습니까?”라고 청한다. 다리로 걷지 못하지만 부탁의 말을 통해 걷는, 그야말로 ‘입으로’ 걷는 셈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혼자서 살아갈 수 없어.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활할 수 없는 사람들이지.”
_ 오카 슈조, 『나는 입으로 걷는다』 중에서

책을 쓴 오카 슈조는 이 세상에 의미 없는 사람이나 가치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말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하며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존재이다. 누운 채 살아가는 다치바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리고, 솎아내라
마지막으로 교사 독자인 손경아 선생님은 시선의 전환을 제안한다. 우리는 같은 사물을 동일한 방식으로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 다른 정신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새싹을 보면서도 솎아내기를 통해 경쟁과 낙오에 주목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선택과 비움에 대해 고찰하는 교사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수백 장의 가족사진 중에서도, 편의점의 수많은 음료 중에서도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한다. 하나를 선택하면 또 다른 것은 가질 수 없음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고, 솎아내야 담아낼 수 있다.


솎아내라

도서관에 꽂힌 형형색색의 찬란한 책더미 속에서
손바닥만 한 핸드백 속 잡동사니 속에서
통통하게 살찐 지갑 속 이름도 낯선 명함들 속에서
시집올 때 사온 낡은 장롱 속 철 지난 옷더미 속에서
가족여행 중 생각 없이 찍은 수백 장의 사진 속에서
카페에서 망연자실 한없이 쳐다보게 되는 이름도 낯선 커피 메뉴 속에서
24시간 쉼 없이 방영되는 TV드라마의 홍수 속에서
지금 당장 사지 않으면 마감 임박 될 것 같은 홈쇼핑의 압박 속에서
발 디딜 틈 없이 장난감들로 가득 찬 미로 같은 거실에 서서
제주도 서방님이 보낸 귤 박스에서

그리고
파릇파릇 오밀조밀 싱그러운 새싹으로 꽉꽉 들어찬 내 조그만 텃밭 앞에서

나는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경청해야 한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무엇을 버려야 할지,
무엇을 참아내야 할지,

때로는 아쉬움으로……
때로는 눈물을 머금고……
때로는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솎아내야만 한다

솎아낸다고
잊히는 것은 아니다

솎아낸 그 자리엔
솔솔 부는 바람 친구
꿈틀꿈틀 지렁이 친구
따뜻한 햇살 친구가
찾아올 테니……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솎아내야
담아낼 수 있다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 의 구입을 문의하셨던 분들, 독자가 되어주시길 원하는 분들께 안내드릴게요.
이 책을 구입하기 원하시는 분들께 '만원의 행복'으로 책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제가 이 책 한 권을 만드는데 (소량인쇄했기에) 1만원 이상의 금액이 들어갔으므로 사실상 인쇄비용보다 적은 금액이에요.

제가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 독립출판사는 교사의 자비 부담으로 운영되며 수익을 추구하지 않아요.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의 창작그림책을 비매품으로 출판등록해오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고요.
이번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책으로 보다 의미있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다문화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만들어주는 일에 수익금을 전액 기부할 예정입니다.

총230권 한정판으로 출간한 책 중에서 현재까지 책을 구매해 주신분들께서 보내주신 금액이 벌써 70만원이 넘었어요.
독자들의 품으로 간 책들을 생각하면서 가슴을 콩닥거리고 있답니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 성함과 주소를 남겨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sMbxbXrEGb6YKsZ6B2q3dNz-MQq5XvTuizlM42Gv6qo7llg/viewform?usp=sf_link

         





그럼 독자님들, 다음 글은
[교실 속 그림책]엉킨실(이혜승 글 그림)과 함께
나를 엉키게 하는 것들, 그리고 스스로 푸는 매듭
"엄마, 나 왕따인 것 같아."
라는 화두를 가지고 만나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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