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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로이현아 Dec 30. 2017

“먼저 발아래 유리조각을 주워드는 것부터 시작하라.”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 씨앗을 향한 고백

독자님들, 따뜻한 연말 보내고 계신가요? 2018년을 이틀 앞두고 인사드립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그림책은 어린이작가 김도현의 Lost Dream 인데요,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 감각적인 표지 이미지의 주인공이랍니다.

이 그림책은  2017 서울진로직업박람회에서 [글없는 그림책] 리플렛으로 제작하여 많은 글작가들과 만나기도 하였는데요, 
미적으로도 또 특유의 잔잔한 감성과 마음을 움직이는 내러티브로서도 많은 분들의 찬사를 받았던 작품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글은 제가 FGI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논문을 쓸 때 그림책 작가님들을 만나뵈면서 
때로 절규하고 때로 용기를 얻었던 시간들과
독서교육 직무연수로 선생님들과 만나뵈면서 가슴을 울렸던 시간들을
진정성을 담아 쓴 글입니다. 
 
그 진솔한 이야기를 독자님들의 가슴으로 보냅니다.


씨앗을 향한 고백,
“먼저 발아래 유리조각을 주워드는 것부터 시작하라.”



씨앗을 향한 고백
“나는 영혼에 대한 이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은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말처럼 나 또한 ‘영혼에 대한 이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모은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모았던 영혼의 이야기들이 내 마음을 온전한 감동으로 채우고 동료 선생님들에게로도 흘러갔다. 그 울림이 마음에 가닿자 각자가 또 하나의 이야기를 피워냈다. 그렇게 책장을 덮으면서 다시 피어난 이야기를 만나고 모으는 것이 내게 큰 기쁨이다. 한 선생님께서는 자신을 ‘거울’이라고 소개하셨다.


나는 거울이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보다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더 길다.
아이들은 나를 통해서 자신을 비추고 스스로를 발견한다.
환한 웃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하면 아이들도 내게
자신의 활짝 웃는 얼굴을 비춰 보이며 하루를 시작한다.
고단함을 이기지 못하고 고함치는 날이면 아이들은
그런 나를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보며 금세 소리를 지른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런 거울과 같은 존재이다.
그렇기에 아이들 앞에 더욱 겸손하고
아름다운 자세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은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는 시간, 화장대 앞에 앉아 손바닥으로 얼굴을 두드리는 시간이 전부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들 앞에 선 나를 하루 종일 바라본다. 아이들은 나를 통해서 자신을 비추고 스스로를 발견하지만, 나 또한 아이들을 통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한다. 아이를 통해 올챙이적 유년기의 나를 만나기도 하고, 아이가 무심코 툭 던진 말 한 마디와 표현 하나에 삶을 통찰하는 신비를 발견하며 무릎을 치기도 한다. 서로에게서 서로를 발견하는 것이다.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서 가르침은 자신의 영혼에 거울을 들이대는 행위라고 했다. 만약 내가 그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거기에 나타난 풍경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면, 나는 ‘자기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나 자신을 아는 것에서 훌륭한 가르침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이 진리를 “훤히 보이는 곳에 감추어둔 비밀”이라는 멋진 말로 표현했다.

어린이작가 김도현은 『Lost Dream』에서 홀씨가 하나의 꽃을 피우기 위해 떠나는 긴 시간에 대해 다루었다. 홀씨는 ‘의미를 가진 꽃’이 되고 싶다. 그래서 자신이 이곳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고자 한다. 살아야 할 나만의 의미를 발견할 때 그 삶은 고매하게 피어난다. 그러나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찾지 못할 때 그 삶은 부유한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평평한 화단에 도달했지만 홀씨는 자신이 이곳에 살아야 할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 아직은 꽃을 피울 때가 아닌 것이다.


“그럼 이 나무 밑은 어때?
이곳은 시원하고 너를 보호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나무는 너무 커서 내가 햇빛을 볼 수 없게 가려 버릴 거야.”
홀씨는 햇빛을 보고 싶다. 커다란 존재는 나를 보호할 수 있지만, 때로 그 그늘은 햇빛을 가려버린다. 한 선생님은 이 장면에서 아이와 통했다. 자신의 교육철학이 바로 이와 같다는 것이다.



큰 나무 아래는 그늘이 짙다.
아이를 내 그늘 아래 두면 볕을 받지 못해 크게 자랄 수 없다.

나는 멀찍이 서 있는 나무이고 싶다.
멀리 서 있는 나를 바라보며
볕을 충분히 받아 누리며 자라기를.
나 또한 쉬지 않고 자라는 당당한 나무가 되리.


나는 큰 나무이다. 그렇기에 아이를 내 그늘 아래 둘 수 없다. 나무가 클수록 그늘도 짙기 때문이다. 나는 멀찍이 서 있기를 택한다. 그렇게 서로가 ‘따로 또 같이’ 서 있을 때 아이는 멀리서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볕을 충분히 받아 누릴 수 있다. 그에게 나는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쉬지 않고 자라기를 택한다. 서로에게 자신을 비추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큰 나무 아래를 떠나 훨훨 날아가던 홀씨는 갈라진 담에 이르러 멈춰 선다. 갈라진 담벼락의 상처를 덮어주면서 자신을 피워내기로 결심한다. 상대방이 가진 틈을 자신의 뿌리로 메워주고 다독이고 싶은 것이다. 그는 화단과 나무 밑 흙이 충분한 토양을 마다하고 벽 틈에 낀 한 줌의 흙에 의지하여 힘겹게 뿌리를 내린다. ‘담장에 핀 꽃’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버림받고 깨어진 존재에 대한 연민, 함께 더불어 피어남이 선사하는 위로. 그렇게 홀씨는 아픈 뿌리를 내려 꽃을 피워냈다.




정년을 앞두신 한 선생님께서는 씨앗에게 자신의 아픔을 고백한다. 본디 꽃이 될 운명인 씨앗을 자신의 틀과 기준으로 너무 힘들게 했던 지난 시간들에 가슴 아파하셨다. ‘잘 가르치느라고, 열심히 하느라고’ 그 틀과 기준으로 아이들을 깎아냈던 그동안의 시간들. 가슴에 사무치는 진심 어린 고백이다.


돌아보니……
씨앗, 너무 미안해!

본디 꽃이 될 운명인
널……
내 기준으로
너무 힘들게 했구나.

잘 가르치느라고……
열심히 하느라고……
내 틀과 기준으로
아이들을 제한하고 깎아냈던
그동안의 시간들……
많이 돌아보았습니다.

정년 전까지 만나는 아이들에게만큼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이 신선한 에너지를
흘려보내주고 싶습니다.


자신을 돌이켜 보며 가슴 아파하고 사과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용기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년 전까지 만나는 아이들에게만큼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싶으시다는 선생님께서 아름드리 넓은 품으로 아이들을 품어주실 것을 믿는다.

이처럼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스스로를 표현해보는 일은 글을 쓸 때만이 아니라 삶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이라 오히려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특히나 ‘가르치는 이’라는 이름으로 늘 누군가의 앞에 서 있던 선생님들께는 더욱 그 기회가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라건대 선생님들께서 들려주신 이 모든 마음들이 교실로 이어져 또 다른 살아 있는 교실 속 이야기들로 아름답게 스며들어 흘러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거 학교 밖에서만 가능한 것 아닙니까?
나는 아이들과 함께 만든 조그마한 그림책을 가지고 학교 밖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여러 번 외로움에 사무치기도 했다. 교육에 대한 불신의 반응을 느낄 때였다. 나는 공교육의 교실에서 그림책의 본질을 제대로 살려낸 수업을 연구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여 그림책 창작 수업의 방향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아이들과 펼쳐낸 그림책에 담긴 것들을 직접 보시고 이 수업의 취지와 철학을 듣고 난 후에는, 한 분도 예외 없이 공감해주셨고 진심 어린 조언과 도움의 말씀을 주셨다. 그러나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으로 말문을 여는 분들이 많았다. 한 작가는 본인의 경우 학교라는 주어진 궤도에서 벗어나면서 창작을 시작한 입장이기에, 학교 교육에 대해 과연 어떤 것을 조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런 대답들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에 뿌연 성에가 맺혀 물줄기가 뚝뚝 흐르는 기분이었다.

“그림책 창작이요? 홍대 앞 상상마당과 같은 말랑말랑한 곳이 아닌 딱딱한 교실에서, 그런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창작이요? 저는 창작의 소양을 학교 안에서 전혀 배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창작을 위해서는 학교를 거슬러야 했는걸요.”

“말하자면 저는 학교 교육과 반대되는 방향의 길을 걸어서 작가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그런 제가 학교 수업에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교육은 오히려 아이가 가지고 있는 본성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해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학교를 졸업한 것이 오히려 창작에 걸림돌이 된다는 말을 들려준 작가도 있었다. 입시 미술을 통해 ‘잘 찍어내어진’ 기능 위주의 작업들이 사고의 틀을 깨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작가는 ‘지금의 내 글을 있게 한 모든 소양과 문화적 취향의 유산은 모두 방과 후에 얻었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소도시의 공교육을 통해 성실히 자라난 ‘전형적인 한국인’이라 표현한 그녀는 방과 후에 홀로 책과 영화를 뒤적이며 자신의 세계에 빠져들어 있던 시간을 지금의 글을 쓸 수 있게 한 밑천으로 여겼다. 나는 절규했다. 그 밑천, 학교 안에서는 쌓을 수 없는 겁니까?


나는 작가님들께 말씀드렸다. 어렵고 부족한 것 안다, 그러나 공교육에 희망이 없다면, 그 희망은 사교육에 있는가? 아니면 대안학교나 사립학교에 있는가? 세상은 어디에도 ‘희망’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조하지만, 부족한 가운데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하고 계신 선생님들도 많다, 그러니 도와 달라. 그렇게 그림책의 본질에 다가선 수업을 위한 조언과 도움을 구했다.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고 있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매일 아침 학교로 등교한다. 그곳에서 자그마치 12년을 보낸다. 나는 엄숙한 부담감과 사무친 외로움에 몸서리쳤다. 그때마다 가슴은 무겁게도 내려앉았지만 우치다 타츠루의 “먼저 발아래 유리조각을 주워드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말에서 나는 다시 일어날 용기를 얻었다.

절망적인 상태에 놓였을 때는, 분에 넘치는 일을 하기보다는 먼저 내 발아래 유리조각을 주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은 고베 대지진이 일어나고 무너진 대학 건물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쭈그리고 앉아 첫 유리조각을 주우면서 제 스스로 정한 규칙입니다.
그 후로부터 19년이 흘러, 저는 그 당시 제가 정한 규칙을 다시 한 번 떠올립니다. 먼저 내 발아래 유리조각을 줍자.
아마 어디 다른 곳에서도 저와 마찬가지로 발아래 유리조각을 주워드는 일부터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시작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터입니다. 그 사람과 언젠가 어디에선가 만나,
“아! 안녕하세요. 여기까지는 제가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아휴, 그렇습니까. 저기서 여기까지는 제가 치웠습니다!”
하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서로 겨운 한숨을 돌리겠지요. 그런 풍경을 상상하며 그때까지는 그 바람에 의지해서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_우치다 타츠루, 『어른 없는 사회』 중에서

그렇다. 무너져버린 믿음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쭈그리고 앉아 내 발아래 유리조각을 주워드는 것부터’ 다. 그것이 시작이다. 나는 유타 바우어의 그림책 『고함쟁이 엄마』에서처럼 터진 조각을 다시 주워 하나씩 꿰매는 심정으로 쭈그리고 앉아 파편을 모아보기로 다짐했다. “대지는 꽃으로 웃는다”는 레이첼 카슨의 말을 책상 앞에 써놓고 나는 무엇을 피워낼 수 있을까 절실히 고민했던 순간들. 내게 있어 그것은 아이들로부터 이야기의 파편이 흘러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그 조각을 다시 주워 한 권의 그림책으로 꿰매어 그들의 품에 소중히 안겨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고민하며 묵묵히 자신의 발아래 흩어진 것들을 주워들고 있는 분들을 만날 때 나는 희열을 느낀다. 줍다가 만나 서로가 걸어온 어설프고 삐뚤삐뚤한 길을 확인하고 마음을 나누며 “아! 안녕하세요. 여기까지는 제가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아휴, 그렇습니까. 저기서 여기까지는 제가 치웠습니다!”라고 서로를 북돋워주는 시간이 가슴 벅차다.

그렇게 나는 교실에서 비롯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한 권, 그리고 또 한 권, 그림책에 담아내는 중이다. 공교육의 교실에서도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이 피어난다고, 그렇게 씨앗을 뿌리는 선생님들과 자라나는 아이들이 교실 안에 존재한다고, 그거 학교 안에서도 가능하다고, 아이들이 피워낸 이 작은 그림책을 통해 나는 보여주고 싶다.




[덮으면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 의 구입을 문의하셨던 분들, 독자가 되어주시길 원하는 분들께 안내드릴게요.
이 책을 구입하기 원하시는 분들께 '만원의 행복'으로 책을 보내드리려 합니다.
제가 이 책 한 권을 만드는데 (소량인쇄했기에) 1만원 이상의 금액이 들어갔으므로 사실상 인쇄비용보다 적은 금액이에요. 

제가 운영하고 있는 비영리 독립출판사는 교사의 자비 부담으로 운영되며 수익을 추구하지 않아요. [교실 속 그림책]이라는 총서의 창작그림책을 비매품으로 출판등록해오고 있는 것이 그 이유이고요.
이번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책으로 보다 의미있는 일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 다문화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만들어주는 일에 수익금을 전액 기부할 예정입니다.

총230권 한정판으로 출간한 책 중에서 현재까지 책을 구매해 주신분들께서 보내주신 금액이 벌써 70만원이 넘었어요.
독자들의 품으로 간 책들을 생각하면서 가슴을 콩닥거리고 있답니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 성함과 주소를 남겨주세요.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sMbxbXrEGb6YKsZ6B2q3dNz-MQq5XvTuizlM42Gv6qo7llg/viewform?usp=sf_link

      

             
그럼 이웃님들, 다음 글은 
[교실 속 그림책]Alice in the library(김시윤 글 그림)과 함께
유년의 정원, 마음의 힘을 키우는 시간
“내가 달게 읽은 글들은 내 삶에 맛을 더했다.”

라는 화두를 가지고 만나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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