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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색 May 02. 2021

나에게 보내는 응원:  용기와 자신감이 부족한 나에게

스스로의 두려움과 마주보지 못한다면 삶의 주권을 회복할 수 없다

내 삶을 바꾸는 결정을 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용기를 낸다는 건, 내 선택의 몫을 내가 감당할 준비가 됐다는 뜻이었다.


✤ 본 글은 <나에게 보내는 응원: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않은 나에게>로부터 이어집니다.

(이전 글 주소: https://brunch.co.kr/@museumofthought/10)


지난 글의 요약:

어렸을 때부터 예술에 대한 큰 관심이 있었으나 "예술은 취미로만 하는 것"이라는 가족의 지배적인 생각에 따라, 예술계열 진로를 탐색하는 대신 일반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인정받는 길을 걸어갔다. 내 마음이 바라는 것들을 오랜 시간 동안 외면하며 지내던 중, 내면의 소리에 세심히 귀를 기울이게 되면서 내가 바라는 길을 걸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더 이상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지도, '착한 아이'로서 살고 싶지도,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 마음을 외면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1

깨고 보니 후회가 됐다.

그래서 남 탓을 했다.


변해보자고, 그렇게 일단 마음은 먹었다.

그게 다였다. 그것뿐이었다.


내 현재 삶의 모습이 이상(理想)으로부터 너무 많이 동떨어져있다는 걸 인지한다고 해서 삶에 눈에 띄는 변화가 일순간 생겨나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나면 모종의 신비로운 힘과 아주 대단한 자신감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간헐천처럼 뜨겁게 터져 나오리라고, 그래서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내 주저하는 발걸음에 힘을 실어 나를 이끌어 주리라고. 하지만 역시 삶은 동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고 나니, 마치 술에서 깬 다음 날 찾아오는 지독한 숙취를 느낄 때처럼 마음이 어지러이 울렁거렸다.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릿속을 더욱 헤집어 놓는 생각들은 이런 류다.

"나는 왜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었지?"

"이렇게 마음을 먹기까지 왜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불편한 이 질문들이 더욱 불편하게 다가온 건, 아무리 봐도 답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기껏 해본 생각의 끝마다 돌아오는 건 '그러게, 왜 그랬을까'라는 공허한 생각의 메아리뿐이었다.


사람이란, 깔끔하게 정리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으로 삶의 복잡함을 걷어내고 단순화한다고 하던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삶이 원치 않는 모습으로 오랜 기간 굳어져 온 이유는 복잡해 보였고, 그래서 그 복잡함을 스스로 납득시키기 위해 단순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생각해낸 건 누군가를 탓하는 거였다.


탓할 대상을 찾는 건 아주 쉬웠다. 사실 가족 말고는 나올 답이 없기도 했고.

그래서, 내 삶의 복잡함을 해결해줄 단순하고 명쾌한 서사를 찾던 당시에 쓴 일기를 보면 가족에 대한 나의 불만이 진하게 묻어 나온다.

글과 그림에 둘러싸여 글과 그림으로 먹고사는 일을 해결하는 것 ― 누군가에겐 이룰 수 없는 꿈이고 누군가에겐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한 현실이며 누군가에겐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삶의 굴레일, 그리고 이 중 무엇으로 변할지 모르는 나의 작지만 간절한 소망. 화가가 되고 싶다던 대여섯 살의 내게 "화가는 취미로만 하는 거야"라던 그 말이 대변하는, 내게 일방적으로 부여된 이 삶의 방식은 어쩌면 내게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던 발판이고 울타리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발판도 울타리도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던 건 분명하다.


그런 불만에서 나온 내 삶의 서사는 이랬다 내 가족은 내가 예술을 하는 것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나를 양처럼 순순한 아이로 자라게끔 만들었고, 그래서 나는 내 목소리를 낼 기회 조차 갖지 못한 채 오랜 기간 원치 않는 진로를 따라 떠밀리듯 나아가다가 결국엔 원치 않는 고민을 하고 방황하게 됐다.

그러니 내가 이렇게 된 건 가족 때문이다.



2

하지만 결국엔

내 탓이었던 거다.


그렇게 나는 내 삶에 대한 주권을 상실한 수동적인 인물이 되는 걸 자처했다. 적어도 그렇게 하면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영위하지 못한 데 대한 탓을 나 아닌 누군가에게 전가할 수 있었으니까. 그랬기에, 내가 힘없는 약자가 된 이야기를 만들어 스스로에게 들려주니 마음이 편했다 아니, 그렇게 보이는 듯했다. 얼마 가지 않아 이 얕은 평정이 깨져버리고야 말았으니.(정말로 바람 잘 날 없는 마음이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크게 두 단계의 과정있었다.


1) 이제부터는 가족의 기대에 부응하는 대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뜻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그러는 나 자신을 보며 혼란스러워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자유를 제한하고 있던 힘 ― 가족의 문화 ― 을 알아차렸고,

그 힘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정까지 했는데, 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거지?'

이런 혼란함을 더 이상 겪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저 학습된 무력감의 일종이겠거니, 이것마저 내가 지금까지 처해온 상황 때문에 생긴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여전히 가족에게 책임을 돌렸다.


2) 하지만 이렇게 자위하고 있던 와중, 내 나이 또래이거나 심지어 나보다 어린 사람들 중에 나와 비슷하거나 더 심한 상황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 이미 긴 여정을 하고 있는 이이 보였다. 개중에는 이미 예술가로서 성공을 하거나 적어도 이름을 알린 사람들이 많았고.(예시가 정말 많지만, 지금 딱 떠오르는 사람들은 빈지노(Beenzino)와 Sasha Sloan이다.) 이 사람들의 작품에 감탄하면서도, 그들과 비슷한 삶의 단계에서 아직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스스로의 처지를 마주 보며 나는 개탄 섞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들은 나보다 더 심한 반대와 좌절을 겪었는데, 왜 나처럼 헤매고 있지 않은 거지?

왜 나는 여전히 내가 있는 자리에서 맴돌고만 있는 거지?'


나는 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답이었기에.


나는 두려웠던 거다.

내가 바라는 대로 삶을 살아가다가 어떠한 의미에서의 '실패'를 겪었을 때, 그 실패는 마치 다시 잡을 수 없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 자존감에 아주 아프게 부딪혀올 거란 사실이 너무 무서웠던 거다. 이 아픔을 스스로 감당할 용기도, 이러한 나 자신의 두려움과 솔직히 마주할 용기 없었기에 나는 확신을 가지고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던 거였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내 두려움을 마주 봐야만 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물리칠 용기를 내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만 내 삶을 이끌어나가는 주체가 될 수 있을 테니.



3

선택감당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는 것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해 제자리에서 종종걸음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더 당당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내린 결정에 수반되는 책임, 그러니까 내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몫성숙하게 감당하고 싶다.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이 좁고 험하다것을 알고 출발했다면,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어려움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며 내가 떠안게 될 위험부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내가 앞으로 (높은 확률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실패의 모습들은 어떠한가?


질문들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시나리오들이 생겨났고,

모든 이야기들의 끝은 좋지 않았다. 묵직한 질문들만큼이나 답변들도 무거웠다고나 할까.


다음으로 이어진 불가피한 질문은 더욱 어려웠다.

'이 무거운 답변들을 내가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혼자서 한참 고민을 하고 있던 중, 어느 날 엄마가 나한테 물어봤다.(나중에야 알았지만, 엄마는 내가 내 진로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계셨다고 한다. 내가 너무 이상적이라서, 혹은 너무 어려서 별생각 없이 객기를 부리는 거라고 느끼셨는지도 모르겠다.)

"너, 한 10년 지나서 네 친구들이 다 변호사, 의사, 교수 돼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살 때 너 혼자 아무것도 이뤄놓지 못한 경우에도 후회 안 할 수 있어?"


물론 엄마는 이 질문 끝에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이라는 말을 멋쩍은 듯 붙였지만, 실제로 주변 친구들이 대부분 로스쿨, 의대나 대학원을 진학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엄마의 걱정 섞인 상정이 아주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바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솔직히 말해 어느 정도의 후회는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의 결심이 오히려 더욱 확고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서,

경제적인 풍요를 누릴 수 없다고 해서,

주변 사람들에 비해 내가 상대적으로 좋지 못한 위치에 있다고 해서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포기하고 싶진 않는 생각이 더 뚜렷해졌다.


왜냐하면, 가정된 상황 속의 나를 바라보며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삶을 쟁취하기 위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다만 거부할 수 없는 내면의 소리에 이끌리는 것일 뿐이란 걸.

마치 반례를 통해 명제의 참이 증명되듯, 나의 마음을 울리지 않는 것들과의 불협화음을 통해 내 마음이 공명하는 주파수가 찾아졌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엄마한테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잠깐의 후회는 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불행하진 않을 거라고.



Epilogue

그렇다고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지만


지금의 나는 결정이 옳았는지 (굳이 옳고 그름을 따져야 한다면) 없다.

내 마음이 과연 현명했는지를 알기 위해선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이 멀다. 높이 올라가야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듯, 아직 어떤 판단을 내리기엔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이 너무 적으니까.


어쩌면 나는, 무거운 질문들에 대해 충분히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생각을 해봤다 하더라도, 직접 겪어본 적 없는 일들에 대해 내린 나의 판단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다양한 이유들로 아주 많은 순간들 속 뼈저리게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런 수많은 후회의 순간들이 모여 결과적으로 불행하게 느껴지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일단은, 이 '어쩌면'들이 내는 잡음의 볼륨을 조금만 낮춰두려고 한다. 완전히 꺼두면 이상주의적 공상가인 내가 현실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나의 주의를 분산하지 않을 백색 소음 정도로만 조절해 내 비판적인 자아가 품는 의심과 건강하게 공존하려고 한다.


여전히 나는, 어린 나의 선택과 생각의 자유를 알게 모르게 제한하고 억압한 가족을 원망하는 마음을 조금은 갖고 있다. 차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원망을 가족에게만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안다 ― 내가 지금까지 창작의 길을 걷지 않은 건, 예술에 대한 가족의 떨떠름한 시선보다도 그 시선을 견딜 만큼의 나 자신에 대한 믿음 없었기 때문임을 인정하기에.


이 인정을 하는 데에서 비로소 내 삶에 대한 주권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 주권을 책임감 있게 행사하여,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한 몫은 오롯이 내가 감당해 갈 것이다. 빈지노가 재지팩트 앨범 Lifes Like≫의 노래 <? !>에서 말하듯, 내가 "가기로 한 길은 똑바로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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