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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Aug 09. 2016

07. 글, 잘 쓰지 말자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애보다 개가 많은 마을에서 나는 글을 잘 쓰는 어린애였다. 무슨 꼬마 신동처럼 잘 쓴 건 아니다. 또래 아이들은 도무지 문자라는 것엔 흥미가 없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대개 세일러문, 순풍산부인과, 가요톱텐 같은 것에 환장을 했다. TV 채널이라곤 3개밖에 없는(EBS, KBS-1,2TV) 우리 집은 그나마도 마을 가장 구석진 곳에 있어 친구라도 만나려면 30분은 걸어가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한 살 어린 동생과 목장의 소들을 벗 삼아 놀든가, 책을 읽든가 둘 중 하나였다.

 

나는 체념하듯 책을 읽었다. 어린이 위인전, 어린이 명작동화, 어린이 창작동화, 우리 집에 있던 온갖 어린이 도서들. 그러는 사이 받아쓰기 천재가 되어버렸다.(받아쓰기에도 천재가 있다면 말이지만.) 고학년이 되어 레벨이 좀 오르자 완결된 독후감을 곧잘 쓰게 되었고, 16명이 전부인 6학년들 중에서 글을 가장 잘 쓰는 애가 되었다. 별 볼 일 없는 얼굴, 작달막한 키, 춤이라든가 노래라든가 끼도 없던 나는 잘하는 게 글 쓰는 거 하나인 줄 믿고 살았다. 내게서 첫눈에 칭찬거리를 찾아내기 힘든 주변 어른들에게도 편안한 일이었다. 받아쓰기만 했다 하면 백점이라드라, 독후감을 써서 상을 받았다드라, 하는 사실은.


뭐,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글 쓸 때마다 자기 검열에 시달리게 된 것도.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오, 이거 글이 되겠는데? 흥분하며 공책을 꺼낸다.(페이스북을 열든, 키보드를 잡든 마찬가지다.) 그 후로 글을 마칠 때까진 "자자, 봐, 나 글 쓴다? 글 쓴다?" 이런 기합뿐이다. 그렇게 써놓은 글은 온몸으로 "저 잘 썼죠? 칭찬 좀" 구걸하는 어딘가 애처로운 것이 되어버렸다. 내가 아무리 티 내려 하지 않아도.


좋은 글을 쓰려면 근심과 허위의식을 벗어던져야 한다. 

허위의식이란 어떤 글은 '좋다', 어떤 글은 '나쁘다'라고 규정하는 데서 비롯되는데,
이런 태도도 역시 근심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유혹하는 글쓰기> 중


고등학생이 되자 좋은 글과 나쁜 글에 대한 취향이 뚜렷해졌다. 그리고 그 엄격한 잣대는 내 글에도 똑같이 적용되어 일기를 써도 늘 근심이었다. 특히 내가 별로라고 생각한 글을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칭찬이라도 하면, 철벽처럼 쌓은 내 기준이 무너져 화가 났다. 뭐가 올바른 건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국어책도 읽기 싫어졌다. 국어책엔 온통 글뿐이니까. 이번엔 또 뭐가 잘 쓴 글일까? 뭐가 됐든 나는 못 쓸 텐데. 거기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쟁쟁한 문학가들은 근심을 보태는 격이었다. 아니 이상은 이 나이에 이걸 썼고, 김유정은 그 나이에 그걸 썼다고? 나는 아무래도 스물이 되고 서른이 되어도 그런 글은 못 쓸 것 같은데요?


어쨌거나 나는 자랐고, 역시나 그런 글은 쓰지 못한다.




이제 내 질투의 대상은 저 유명한 소설가들에서 일반인 친구들로 바뀌었다. 잘 썼을 것 같은 글을 보면 나는 아주 꼴불견이 되어버린다. 제목부터 잘 뽑은 기운이 느껴질 땐 더 그렇다. 일단, 눈을 질끈 감고 클릭을 한다.(내용이 궁금하기 때문에 아예 안 볼 순 없다.) 그리곤 실눈을 뜨고 스크롤을 아껴가며 조금씩 읽는다.(다 읽고 나서 느낄 박탈감을 방지하기 위해 언제든 끌 준비를 하는 거다.) 아아 안돼, 이 문장보단 더 잘 쓰지 마, 이 단락보단 더 잘 쓰지 마, 이 문장 뒤엔 분명히 엄청난 인사이트가 나오겠지? 그래, 졸라, 잘 썼다. 하.


아이고, 이 속마음을 적고 있으려니 웃음이 다 나온다.



글을 써서 돈벌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잘 써야 한다.
자기도취에 빠진 글을 읽으려고 책을 사는 독자는 없다.

-<유혹하는 글쓰기> 중


자기비하의 출구는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스티븐 킹 영감님이 써놓은 책이었다. 나는 글을 써서 돈 버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냥 회사원이다. 당연히 잘 써야 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에세이를 써놓고 '난 왜 이렇게밖에 못쓰지?'라고 고민하면, 어울리는 대답은 '아니 도대체 그런 고민을 왜 네가 하니?'라는 핀잔이다! 사실은 퇴근해서 뭐라도 쓸 생각을 했다는 게 칭찬받을 일인 거다.


글을 써서 돈벌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잘 쓰는 게 당연하지만, 글로 돈 벌게 아니라면 못 쓰는 게 당연하다. 그저 경계해야 할 건 자기도취에 빠진 글이라니, 이 얼마나 소중한가!

(물론 나 좋을 대로 해석한 거지만)


냉정히 말하면 나는 소설가나 시인들, 전문 에세이스트들보다 나은 입장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일화가 떠올랐다. 워낙에 말이 많은 아저씨기도 했지만, 그 좋아하는 도박을 하려면 계속해서 뭔갈 써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한평생 뭔갈 써댔다. 좋아하는 도박을 하기 위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술을 마시는 게 도박만큼 좋다. 그러나 맥주 한잔 마시기 위해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새삼 그 사실이 고마웠다. 치킨이 먹고 싶으면 월급에서 까면 된다. 내 본업은 내가 꽤 맘에 들어하는 직장에 따로 있고, 글을 쓰지 않는다고 날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 글쓰기는 전문 문학인들보다 훨씬, 나만의 것이었다.

비록 내가 전문인만큼의 재능은 없더라도 말이다.




글을 쓰면 신이 났다. 내 별 볼일 없는 글이 난 참 재밌었다. 사실은 다른 사람이 잘 쓴 글을 읽는 것도 좋았다. 글만큼 어떤 사람의 머릿속을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없으니까.


('토끼의 등에 8이라는 숫자가 찍혀있다'는 문장을 보면 여러분이 보게 될 것에 대해 설명하며)
다만 그 토끼의 등에 찍힌 숫자이다. 6도 아니고, 4도 아니고, 19.5도 아니다. 숫자는 8이다.
우리는 모두 그 숫자를 보고 있다. 나는 여러분에게 그것을 보라고 말하지 않았다.
여러분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나도 입을 연 적이 없고 여러분도 입을 연 적이 없다.
더욱이 우리는 같은 방 안에 있기는커녕, 같은 연도에 있는 것조차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함께 있다.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다. 지금 우리는 정신의 만남을 갖는 중이다. 

-<유혹하는 글쓰기> 중


사진이나 그림 없이도, 단 하나의 문장으 우리는 같은 것을 본다. 쓴 사람과 읽은 사람들만 나눌 수 있는 약속이다. 글을 쓴다는 건 한 세상의 창조다. 날실을 시간 삼고 씨실을 공간 삼아 하나의 천을 짜는 일이다. 해리포터가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우리는 이마에 번개무늬 흉터가 난 검정머리 소년을 보았고, 반지의 제왕에 일라이저 우드가 캐스팅되기 전부터 절대반지를 파괴하라는 가공할 미션에 시달리는 소심한 호빗을 우리는 보았다. 이 짜릿함이 날 계속 읽게 했다. 그리고 욕심내게 했다. 나도 어떤 사건을 만들고 싶다. 내가 보는 걸 공유하고 싶다.


문학적 우수성에 이끌려 소설책을 구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비행기에 가지고 탈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끝까지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그런 소설 말이다. 그렇게 되려면 책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나 그들의 행동이나 주변 환경이나 대화 내용 들이 어쩐지 낯익은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야기의 내용이 독자 자신의 삶과 신념 체계를 반영하고 있을 때 독자는 이야기에 더욱더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무슨 도박꾼처럼 시장성을 계산하여 이 같은 인과 관계를 계획적으로 만들어내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유혹하는 글쓰기> 중


스티븐 킹 영감님은 솔직했다. 글 쓰는 사람 특유의 거만함도 없었다. 그냥 정말 좋아서 글을 쓴 것 같았다. 글쓴이의 문학적 우수성을 강조하지 않는 글쓰기 개론서라니! 도서관에 가면 책장 한 줄은 다 본인 책일 만큼 써낸 것도 많고, 쓰는 족족 히트한 베스트셀러 작가면 콧대를 세울 법도 한데, 딱히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왜 그렇게 어렵게 해, 이렇게 하면 더 재밌잖아? 하는 식이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배경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 '언제나' 스토리니까. 그러므로 단순히 그러기 쉽다는 이유로 기나긴 묘사에 매달려 하염없이 방황하는 것은 나에게도 여러분에게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할 일이 따로 있으니까.


플롯은 어디에도 없다. ~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플롯이라는 거을 믿지 않는다. 첫째, 우리의 '삶'속에도 플롯 따위는 별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둘째, 플롯은 진정한 창조의 자연스러움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므로.

-<유혹하는 글쓰기> 중


킹 영감님은 어느 날 어떤 사건이 떠오르면 스토리에 몸을 맡겨 캐릭터들이 자유롭게 놀게 놔둔다고 했다. 당장은 논리적 완결성을 갖지 않아도 된다. 스토리에 힘이 있고, 캐릭터들에 힘이 있으면 곧 풀릴 문제니까. 내가 쓰는 글에 꼭 세태비판이나 현실에 대한 상징성이 있을 필요도 없다. 쓰다가 발견하면 반짝반짝 빛날 때까지 닦을 수 있지만, 그걸 찾느라고 시작조차 못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니까. 어떤 이야기가 내게 떠오른 건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계속 진행해나가다 보면 그 이야기만이 지닌 가치가 드러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내가 글쓰기를 다른 일보다 좋아하는 이유를 딱하나 만 꼽는다면 이렇게 모든 것이 일시에 연결되는 통찰력의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런 현상을 가리켜 '핵심을 찌르는 사고력'이라고 불렀다. 또 누군가는 '초월적 논리(over logic)'라고 했다. 

-<유혹하는 글쓰기> 중




영감님이 말하는 잘 쓴 글은 어려운 단어로 기교를 부린 글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굶어도 사랑 맛, 씹 맛에 산다", "오줌 누고 좆 볼 틈도 없다", "방귀가 잦으면 똥 싸기 십상이다." 이런 문장들이 좋은 문장이라고도 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인 데다가, 사람들이 흔히 쓰는 입말로 구성되어 있으니까. 무엇보다 한 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다.


* 부사를 쓰는 것은 인간적인 일이지만 '그가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라고 쓰는 것은 그야말로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는 비범한 능력이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 묘사를 잘하는 비결은 명료한 관찰력과 명료한 글쓰기인데, 여기서 명료한 글쓰기란 신선한 이미지와 쉬운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나는 챈들러와 대시엘 해멧, 과 로스 맥고널드를 읽으면서 이 문제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엘리엇과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를 읽으면서 간결하고 비유적인 표현이 지니는 힘을 더욱더 존중하게 되었다.

-<유혹하는 글쓰기> 중


영감님은 비범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다. 대신에 글 쓰는 사람만 특별하다고 믿는 허상을 버렸다. 세상엔 수많은 책만큼 수많은 글쓰기 테크닉이 있고, 이미 알려진 테크닉들은 모두의 것이라는 것. 그러니 내가 그런 책들을 읽고 자극받은 만큼 수많은 시도를 해보는 건 황홀한 일이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평범해도, 터무니없어도 상관없다. 내게 잘 어울리는 글을 찾아 나서는 거다. 그리고 그 과정을 멈추지 않고 계속 시도하고, 마음에 든다고 집착하지 않을 것. 지독히 큰 자아는 버리고 내 글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할 것. 글을 잘 쓰기 위해 필요한 재능은 이것 뿐이다.


이미 알려진 모든 테크닉은 누구든지 써먹을 수 있다. 이거야말로 황홀한 일이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시도해보라. 따분할 만큼 평범해도 상관없고 터무니없을 만큼 특이해도 상관없다. 잘 어울리면 그만이다. 그렇지 않다면 과감하게 버려라. 그때는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버려야 한다. 언젠가 헤밍웨이가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것들을 죽여야 한다.' 옳은 말이다.

-<유혹하는 글쓰기> 중


이름마저 '킹'인 영감님의 글은 과연 글쓰기의 '킹'다웠다. 대범하고 화끈했다. 영감님이 무심한 듯 쓴 말들은 왕의 하사처럼 내 글쓰기를 응원했다. 보잘 것 없어도 돼. 나조차도 처음엔 실패했어. 조곤조곤.


이 시간에 나는 왜 기타를 치거나 모터사이클을 타지 않고 글을 쓰는가? 애당초 이 고달픈 일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이며 또 어째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는가? 그때마다 답이 금방 나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개는 답이 나오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답을 찾기가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유혹하는 글쓰기> 중


그래, 나는 쓰고 싶은 거다. 그림을 그리거나, 공작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것보다 쓰는 게 좋으니까 쓰는 거다.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그걸 털어놓고 싶으니까. 그래서 신이 났던 거다. 잘 썼든 못썼든.


책을 다 읽고나니 뭔가가 막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뭔가 썼다. 읽어보니 재밌었다.

킹의 응원을 받아 나는 계속 쓰기로 했다. 세상의 속시끄러운 소리엔 문을 닫고, 내 목소리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쓰고 싶은 게 있어도 주저하는 친구들에게도 이 응원을 전해보기로 했다.


잘 쓴 글은 글로 돈 벌 사람들의 몫이다. 나는 나만의 글을 쓰자.

그 편이 더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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