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틸킴 Aug 02. 2016

01. 취준에 지친 우리 모두에게

<누구>, 아사이 료



어느날 눈을 떴더니 대리가 되어 있었다. 아니, 이 말은 뻥이다. 타고난 성실성과 모범성 덕분, 이라기보단 타고난 굴종의 능력으로 4년을 헌납한 대가다. 지각은 해도 결근은 한 적 없고, 아부는 하지 않아도 들이받은 적은 없었다. 돈을 번다면 이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달 말이면 입사 1년차에 넣었던 3년짜리 장기적금을 돌려받는다. 처음 은행에 장기적금을 들러가던 날, 달마다 꽤 큰 액수의 금액을 통장에 묶기로 약속하면서 은행직원에게 귀찮을 정도로 물었었다.

여기 저희 회사 사람들 많이 오죠?
3년 만에 짤리는 사람은 별로 없죠?
언니는 몇년차예요? (와, 오래 다니셨네요! 저도 그렇게 오래 다닐 수 있겠죠?)
10년 뒤에도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그렇게 쉽겐 안잘라요~ 라고 대답하며 그분은 내가 싸인해야할 곳들을 안내해줬다. 장기적금 신청서 곳곳에 싸인을 하면서, 회사가 과연 날 3년씩이나 다니게 해줄까 나는 자신이 없었다.

업계에선 꽤 유명한 회사.
정말로 들어오고 싶었고, 하고 싶어 죽겠던 일을 할 수 있는 곳.
이곳은 내겐 너무나 과분했던 것이다.

올해 나는 그곳에서 대리가 되었다.
하는 거라곤 불을 끄고 켜는 것밖에 없던 사원이 누군가의 대리가 되는데 4년,
하고 싶어 죽겠던 그 일이 하기 싫어 죽겠는데 걸린 시간도 4년.

취업만 하면, 그 회사에 들어가면 다른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대단한 회사에 들어왔지만 나는 아직 별로 대단해지지 않았다.


“취업활동은 끝났지만, 아무것도 해냈다는 기분이 들지 않아”

-<누구> 중




사실 재능이란 건 취업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 재능 넘치고 똑똑한 친구들이 취업에 실패하는 것을 많이도 보았다. 나보다 훨씬 사회성도 좋고, 학점도 좋고, 반짝반짝 빛나는 친구들이 몇번씩 탈락 문자를 받는 동안 나는 황당하게도 취준생 시절 없이 졸업 전에 취업을 해버렸다.

나는 붙고 친구들이 떨어진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스스로 죄인이 되었다. 쉽게 얻은 행운 같아 부끄러웠다. 오만한 생각이었지만, 떳떳하지 못했다. 꼭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아 앉은 것 같았다. 어쩌다 타이밍이 좋아서, 어쩌다 합이 잘맞는 면접관을 만나서 합격한 것뿐인데 내가 먼저 취업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은 날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했으니까. 


어째서 나는 한번에 붙었을까, 사실은 내가 엄청 잘난 거 아닐까? <취업성공> 이란 네 글자는 내게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자기 비하는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었기에, 나는 회사의 안좋은 점을 자꾸만 찾아냈다. 이렇게 별로니까 나를 뽑았구나. 회사를 내 급으로 낮추고 나서야 직성이 풀렸다.

이게 바로 나의 병신같은 점이었다. 그냥 과분한 회사에 붙어서 기쁘다, 솔직해지면 될 것을, 내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자격이 없다면 그런 나를 걸러내지 못한 회사는 얼마나 찌질한지 바꿀 수도 없는 어제의 일만 죽어라고 후벼팠다. 그러면서 회사에 과한 충성을 보이는 지인들의 SNS를 볼 때면 마약이라도 한 듯 뿌듯했다. 난 저러지는 않지. SNS가 보이는 족족 포스팅에 담긴 인생과 가치관을 하나하나 평가했다. 그리고 그런 관찰과 평가를 하는 것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를테면 이런 식.


 '직접 연출을 맡고 각본을 쓰는 신작을 계속 만들 겁니다. 저는 그러기 위해 극단 플래닛을 그만두고, 새 극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 자신밖에 할 수 없는 표현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무대는 무한히 이어집니다. 저는 그것을 끝까지 쫓아가고 싶습니다.'

 ~

 긴지는 지금 아무한테도 전하지 않아도 될 단계의 일을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말을 모아 온 세상에 전하려 하고 있다. 자신밖에 할 수 없는 표현. 무대는 무한. 달콤한 꿀로 코팅한 듯한 말을 구사하여 타인에게 이상적인 자신을 상상하게 하려고 한다.

-<누구> 중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페이스북 포스팅이나 인스타그램 해쉬태그에 선택되지 않는 단어들에 대해서. 자소서 바깥의 인생을 봐주지 않는 인사팀 사람들을 탓하면서도, 남의 인생에는 면접관처럼 굴었다. 취업을 하고도 별다른 성취감을 얻지 못하니까, 난 아직 대단해지지 못했으니까. 난 아직 진짜 나를 보여주지 않은 것뿐이지만, 너희는 전력을 다하고서도 이렇단 말이야?


하지만 그건 얼마나 상상력 없는 생각이었을까. 나는 이런 문장들을 읽으면서 무참하게 찔렸다.


"짧고 간결하게 자신을 표현해야 하니까 거기 선택되지 못한 말이 압도적으로 많은 거잖아."

사와 선배는 이 현실 속에만 있다.

 "그러니까 선택되지 못한 말 쪽이 더 그 사람을 잘 표현할 거라고 생각해."

 나는 사와 선배의 등을 바라보았다.

 "겨우 140자 겹쳐진 것으로 긴지와 그 녀석을 한데 묶어 버리지 마라."

 어느새 눈 앞에 목적한 도서관이 있다.

 "그 짧은 말 너머에 있는 인간 그 자체를 상상해 주라고, 좀 더."

-<누구> 중


o라고만 쳐도 ok라고 읽어버리는 멍청한 자동완성 기능처럼, 사람들의 가능성을 자동 완성해서 읽고 있었던 나에 대해서. 그것이 얼마나 한 명의 인간을 빈곤하고, 무력하게 만드는지 친구들을 통해, 그리고 나를 통해 봐왔으면서도.



사실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취업을 하고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헛된 칭찬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것이었다.


“달리기를 잘한다, 축구를 잘한다, 요리를 잘한다, 글씨를 잘 쓴다 하는 것과 같은 레벨에서 취업활동을 잘하는 것뿐이었어."

 ~

"그런데 취업활동을 잘하면 마치 그 사람이 통째로 아주 대단한 것처럼 말해.

취업동 이외의 일도 뭐든 해낼 수 있는 것처럼. 그거, 뭐랄까."

 ~

"그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피망을 못 먹는 것처럼, 윗몸 일으키기를 못하는 것처럼 그냥 취업활동을 못하는 사람도 있잖아. 그런데 취업활동을 잘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통째로 무능한 게 되어버려."

-<누구> 중


취업 시장에선 성공을 해도, 실패를 해도 상처뿐이다. 우리 모두가 거대한 눈금이 되어, 합격과 탈락 만으로 인생이 결정 나는 불쾌한 경험. 취업을 했다는 사실 하나로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듯, 취업을 못했다고 해서 내 친구들이 못나게 되는 게 아닌데.


슈퍼에 들어가 볶음밥 재료와 삼겹살과 낫토와 우유를 샀다. 어느 물건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별과 별을 잇듯이 슈퍼 안을 바삐 움직였다. 내가 걸어간 곳을 선으로 이으면 '자취 생활'이라는 별자리가 완성될 것 같다.

-<누구> 중


별과 별을 잇듯이 자취방에서 토익학원을, 스터디와 봉사활동을 전전하는 우리들을 이으면 '취준'이라는 별자리가 될까? 이윽고 회사라는 장소가 한번 더 연결될 때, 이내 회사 안에도 밖에도 머무르지 못하고 파르르 떨 때쯤 대리라는 별자리가 완성될까? 별과 별 사이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꿈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나는 어떤 별자리가 되고 있는 걸까?

입사 1년 차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이 찔렸다.
순전히 사적인 찔림으로 벗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1. 취준생

2. 신입사원

3. SNS 중독자 / 혹은 그들이 못마땅한 사람

4. 빨리 읽을 수 있고, 재미있는 책을 찾는다면



매거진의 이전글 00. 책읽기는 무시무시하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