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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Aug 02. 2016

02. 역사가 개인에게
건네는 거대한 위로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생물로 존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



역사가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까요? 

엄마의 옛날 일을 듣다보면 나의 오늘이 위로받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연예인의 힘들었던 과거가 오늘의 내게 손 내밀 때도 있구요.
그런 걸 생각하면 역사는 분명 우리를 위로합니다.

하지만 엄마의 과거를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다정은 해도, 과학적이진 않아요.
제가 지금 말하는 역사는 아주 큰 규모의 것입니다.
박테리아, 식물, 인류, 지구, 태양....
그렇습니다
우주의 역사가 나를 위로한다면 어떨까요?

여기, 세상에서 가장 빡빡한 도시에 살며, 매달 월세와 보증금 이자를 계산하고,
매주 며칠은 야근에, 없는 시간을 쪼개 하는 연애는 마음 같지 않으며
만년 전의 일은 개뿔, 당장 어제도 가물가물한 우리를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위로한다면 말입니다.



먼 옛날에 약간의 화학물질이 생명이 되기 위해서 안달을 하고 있었다. 그 생명은 약간의 영양분을 흡수해서 부드러운 숨을 쉬면서 아주 잠깐 동안 삶을 유지했다. 그 정도는 과거에 여러 차례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원형 덩어리가 그 이상의 특별한 일을 했다. 스스로 갈라져서 후손을 만들어낸 것이다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



최소한 저는 약간의 화학물질은 아닙니다.
굉장히 복잡한 화학물질이고, 아주 정교한 단백질 덩어리죠.
약간의 화학물질이 생명이 되기 위해 안달을 한 결과가 오늘의 나라면
저 같은 고등 생물이 안달하면 그 결과는 대체 얼마나 더 특별할까요? 

기분 좋은 생각이죠.

이런 몇 가지 과학적인 사실들이 저를 위로했어요.
우리의 태생 자체가 무모했다는 걸 아는 순간,
바보 같은 선택을 일삼는 자신이 조금은 사랑스러워진 거예요.
시발, 역시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안달하고, 성급하고 위험했다!!



우리는 4억 년 전에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와서 산소를 호흡하면서 살기로 한 성급하고 위험스러운 결정을 내렸던 생물종들에 속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런 결정으로 지구 상에서 생물이 살 수 있는 공간의 99.5퍼센트로 추정되는 공간을 포기해야만 했다.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



최초의 파충류가 물을 벗어난다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한 덕분으로

이런 글을 끼적이며 저는 질문을 하나 더 해봤습니다.

그럼, 인간이 인간이란 존재가 된 건 언제부터일까? 
네발짐승이 두발로 일어선 순간?
사냥한 토끼를 불에 구워 먹어 본 순간?
몸짓 발짓하다 하다, 아오 등신아 저쪽에 맘모스, 시원하게 욕지거리를 날린 순간?

이런 답을 해봤죠.
나는 어디서 온 걸까?라고 물어본 순간, 인간은 인간이 되었다고.
<나> <어디서> <오다> 이 세 가지 단어는 <인간의 기원>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무언가의 기원은 시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해가 뜨는 육지에서 태어난 인간들은 느꼈어요.
세상이 어두워지고 밝아지고를 반복하면 
사과가 열리기도, 썩기도, 호랑이 새끼들이 생기기도, 죽기도 한다,
무언가 생기고 없어진다,
거기에 빛과 어둠이 있다,
지구는 해와 달이 하루에 한 번씩 번갈아 나타나는 동네였기에 

이걸 단위로 만들었습니다.
오늘의 시계와 태양력이 가장 성공한 결과죠.

그 이후로, 우리는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고 믿고 있어요.
시간이 직진한다는 개념, 이것을 선형성이라고도 하더군요.
거대사는 이런 선형성, 즉 역사의 진화를 믿는 학문입니다.
인류의 탄생과 진화가 그러했듯이, 역사도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나아간다고 말입니다.



결국 진핵생물은 더욱 독특한 마술을 배우게 되었다. 10억 년 정도의 오랜 세월이 걸리기는 했지만, 일단 배우고 난 후에는 아주 좋은 마술이었다. 함께 모여서 복잡한 다세포 생물을 만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 혁신 덕분에 크고, 복잡하고, 눈으로 볼 수도 있는 우리와 같은 생물이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



인간은 스스로 어디서부터 온 건지를 궁금해하면서 인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만들었고, 시간의 시작과 끝을 믿게 되었다고요.
그러면 이런 질문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우주에도 시작과 끝이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우주의 끝을 아주 쉽게 말합니다. 
지구가 죽어가요! 
화성은 죽음의 땅!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죠.
위의 말을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지구가 죽는 게 아니라 인간이 죽는 것이고
화성이 죽음의 땅이 아니라 인간에게 죽음의 땅일 뿐이죠.

세상엔 혐기성 박테리아도 있고, 어떤 미생물은 철을 주 원료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인간은 인간 외의 것을 경험해보기 어렵고, 

인간의 생각은 인간의 언어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덩치가 크고, 항생제와 소독약을 만들어서 쓸 만큼 똑똑하기 때문에 우리가 박테리아를 멸종위기에 몰아넣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다. 박테리아는 도시를 건설하고, 흥미로운 사회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태양이 폭발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곳에 있었다. 지구는 그들의 행성이고, 우리가 이곳에 살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허용을 해주었던 덕택일 뿐이다. 
 박테리아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도 수십억 년을 스스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박테리아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다.

~

인간으로서 우리는 생명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계획과 소망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존재라는 스스로의 믿음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싶어 한다. 그렇지만 지의류에게 생명이란 무엇일까? 지의류가 존재하고 싶어 하는 충동은 우리만큼 강하거나 어쩌면 더 강할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숲 속의 바위에 붙어서 수십 년을 지내야만 한다면 절망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의류는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끼류는 자신의 존재를 이어가기 위해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어떠한 모욕도 참아낸다. 간단히 말해서 생명은 그저 존재하고 싶어 할 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물은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주 흥미롭다.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



구절구절, 인간의 철저한 한계를 보면서
저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나만 특별히 이기적이거나 생각이 짧은 게 아니었다, 이건 종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 종류의 단백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각각이 독특하고 또 각각이 목소리를 유지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세상은 거기에서부터 비롯된다.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의 중심과 나는 멀어집니다.
그 존재만으로도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았던, 숨만 잘 쉬어도 칭찬받던 꼬마는
이제 다달이 돈을 벌고, 매일 아침 일어나 일터를 가도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
특별한 주목을 받을 일 없는 어른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로서 존재한다는 건 정말로 기적 같은 일입니다.
오늘의 내가 만들어지기 위해 10000000000000000000명의 사람이 관여했다는 걸 떠올려보세요.


당신의 부모님이 초와 심지어 나노초까지 정확한 바로 그 순간에 결합하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지금 이곳에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  로마인들이 살던 64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신의 존재를 결정하는 데에 참여했던 사람의 수는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수를 합친 것보다 몇 천배가 넘는 10^18명이나 된다.


그리고 내 몸속의 단백질들 하나하나에 목소리가 있고, 
그 세포들이 다들 존재하기 위해 애쓴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위해 애쓰면서도, 
우리에겐 다른 이의 존재까지도 신경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요.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에 대해)
그녀의 뼈들은 변형되어 있었고, 육식동물의 간을 먹어서 생기는 

비타민 과다증 A라는 고통스러운 질병의 결과로 나타나는 종양의 흔적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 놀라웠던 사실은 종양의 양으로 보아서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앓았던 것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녀를 돌보아주었던 셈이다. 인류의 진화에서 처음 발견된 애정의 징후였다.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


모든 것의 역사를 다룬다는 건 엄청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전공생도 아니고 잡지사 기자가 하기엔 더더욱 말이죠.
그런데 쉽게 보려고 하자, 어려운 말은 별로 쓸 필요도 없이 쉽게 해냈습니다.
그리고 그 쉬운 말들이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저에게도 위로를 줬지요, 역사라는 이름으로.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은 인류의 탄생을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회오리바람이 폐차장을 휩쓸고 간 후에 
완전히 조립된 점보제트기가 남아 있는 것과도 같은 일이다

-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중


우리는 모두 이렇게 별나게 만들어진 존재예요.
내가 너무 보잘것없어 보일 땐 생각합니다.
비유가 아닌 과학으로, 평범한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위로를.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1. 교양서적이 읽고 싶은 분

2. 곧 거대사를 수강하실 분

3. 45년어치의 거대한 위로가 필요하신 분

4. 과학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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