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틸킴 Sep 07. 2016

오늘은 찌질할 테다

<날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장기하와 얼굴들

난 요새 우울하다. 


내가 우울해서 우울하다. 회의 시간엔 다른 팀원의 아이디어가 팔렸다. 내 아이디어는 일단 keep. 나도 안다. 내가 선배만큼 기발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옆팀 대리보다 내가 잘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다고 회의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나를 구박한 것도 아니다. 그냥 이번 회의엔 다른 팀원의 아이디어가 팔렸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꼭 혼난 것 같다. 옆팀의 누구가 팀장의 사랑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딱히 없어선 안될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날 따돌리는 사람도 없다. 난 팀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사실 팀장의 사랑 같은 거, 줘도 안 받을 건데 아무도 사랑을 안 주네, 쩝.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보니, 누가 스타트업을 성공적으로 런칭했다.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나랑 나이가 비슷한 친구의 친구다. 나는 스타트업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회사를 잘 다니고 있고, 집에 돈도 갖다 주고 있고, 어디 가면 효녀소리도 듣는다. 나도 나름 괜찮은 사람이다.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울하다. 그리고 내가 우울해서 우울하다.


난 요새 웃기지 않다. 내가 웃기지 않으니까 웃기지 않다. 선배들이 농담 건네는 순간이 웃기지 않다. 웃지 않는 눈빛이 들킬까봐 웃음소리를 높인다. 흐휏휏휏휏. 아 이 친구 웃음소리 특이하네. 아싸, 넘어갔다. 나 사실 안 웃겼는데. 나는 유우머타임이 무섭다. 던진 농담만큼 재치 있고 순발력 있는 리액션이 돌아올 것을 기대하는 저 귓구멍들! 애써 그것들을 외면하며 대신 나는 말한다. 아 선배님, 왜 이렇게 웃겨요 흐휏휏휏휏. 선배님이 좋아한다. 야 네가 그렇게 웃으니까 나 자신감 상승. 목구멍으로 유리창 닦는 웃음소리를 만들며 어찌어찌 유우머를 버티는 동안, 같은 농담을 들은 내 친구는 오늘도 선배를 웃겼다. 나는 친구만큼 웃기지 않다.  그리고 아무도 나보고 웃기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도 내 말에 안 웃은 것뿐이다. 그런데 나는 슬프다. 나는 요새 인터넷이 웃기지 않다. 나는 그런 댓글 못쓰니까 그런 댓글은 웃기지 않다. 친구들의 방에서 오가는 링크들. 나는 그런 거 못 만드니까 그런 게 웃기지 않다. 아무도 나한테 웃기라고 하지 않았는데, 어머 나 왜 안 웃긴다고 혼자 쪼그라들었니. 


아아, 왜 이렇게 억울한 걸까. 왜 이렇게 기분이 상하는 걸까. 왜 이렇게 비참한 걸까.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에코)



장기하와 얼굴들 2집, <장기하와 얼굴들>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그때, 이 노래가 들렸다.


일단 장기하의 억울한 목소리부터. 뺨 맞고 입안이 부어서 웅얼거리는 것 같은 발음. 아 장모님 왜 이러세요, 하는 박영규의 표정이 떠오르는 볼멘소리. 아니,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그래, 내가 남의 칭찬 앞에 느끼는 감정은 이런 억울함이지. 장기하의 목소리 이후로 이어지는 기타 소리도 마음에 든다. 뭐냐 이 아랍 느낌의 멜로디. 코브라가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은 장단. 개다리춤 추는 것 같은, 뭔가 날 놀리는 것 같은 빙글빙글한 기분. 좋네, 이 노래. 아니 잠깐, 가사는 이게 또 뭐냐. 이 저릿저릿한 솔직함은 대체 뭐냐.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내 마음을 알고 일면식도 없이 이런 글을 써냈지? 입꼬리가 땡기도록 겨우겨우 웃어야 하는 내 심정을 장기하가 어떻게 알았지? 우리 통했나? 구구절절 옳다 옳아 끄덕거리며 노래를 듣다 보니, 앗차 결론이 없다. 어떡하나, 어떡해. 이 감정의 끝은 훌륭한 자조. 이럴 땐 이렇게 극복해나갑시다 하는 교훈따윈 없다. 과연 찌질의 대가답다. 노래를 따라 내 감정은 어느새 고조된다. 반주도 어긋난 음계로 치달아오른다. 그래 나도 몰라 몰라, 모르겠다! 어떡해야 하냐 이럴 땐!


나는 항상 노력에 비해 결과가 잘 나오는 애였다. 사실은 이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 결과였다. 예를 들면 시험기간에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공부를 안 했다. 왜냐면 공부 안 하고도 점수 잘 받는 애이고 싶으니까. 공부 안 해도 85-95점은 너끈히 맞을 수 있었는데, 쟤 야자시간에 맨날 자는데 점수는 잘 나온다? 이런 말이 아주 듣기 좋았다. 100점은 공부를 해도 실수 하나 하면 못 받는 거지만 만점이 아닌 고득점은 쉽잖아. 너는 공부만 좀 더 하면 100점 받을 텐데, 이런 가능성을 남기는 편이 더 좋았다. 좋아하는 일도 마찬가지. 나는 회의 준비도, 글쓰기도 맘차도록 열심히 안 한다. 내가 백 프로 열성을 다하면 그때의 결과는 빼도 박도 못하게 백 프로 내 실력일 것인데, 그게 보잘것 없을까봐 무섭다. 지금처럼 "아, 나 벼락치기했어"라고 말하는 동안은 변명의 여지가 있으니까. 언젠가 100프로 다 들이면 나 이것보다 잘할 수 있음. 누가 잘 나가도, 오늘의 나는 진짜 내가 아니라고 위안하며 살았다. 쟤는 노력을 엄청 했겠지, 난 아직 그만큼 안 했으니까. 이렇게 믿을 수 있는 동안은 남이 받는 칭찬들, 명예들, 영광들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내 견적을 왜 모르겠는가. 나는 공부할 끈기도, 회의 준비할 끈기도 솔직히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 쳐도 미생의 장그래 같은 인사이트도 없을 것이다. 나도 내가 못할 걸 아니까 그냥 미리 변명해본 것뿐이다, 실은. 내 상상 속에서 나는 어쩜 이리 못났는지, 나는 진짜 내가 못 튀어나오도록 꼭꼭 가뒀다.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다치지 말고 잘 숨어있어, 진짜 나야. 그러니까 나는 나한테 하는 칭찬도 잘 못 듣고, 남이 남에게 하는 칭찬도 잘 못 듣는 사람이 되었다. 내게 하는 칭찬은 억지로 하는 거짓말 같고, 남에게 하는 칭찬은 꼭 날보고 "넌 뭐냐?" 이러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자주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기분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난 이런 기분에 매우 약하다. 소주로 환산하면 내 주량은 한 티스푼 정도? 아주 쉽게 그 감정에 취해버린다. 아무것도 못하겠어. 뭘 하든 난 다 재미없을 거야. 난 웃기지도 않고 생각이 깊지도 않아. 당연히 번뜩이지도 않지. 난 찌질해. 해지면 달 뜨는 것처럼 이런 기분은 정기적으로 밀려온다. 누군가 칭찬이라도 새로 받으면, 3, 2, 1, 자 지금부터 시작. 아 나는 왜 이렇게 잘하는 게 없지. 왜 세상 사람들은 다들 저렇듯 잘났나.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하다. 이런 감정, 친구들한텐 술을 사줘야만 들려줄 수 있는데, 노래로 만드니까 몇 번이고 다시 찾아 듣게 된다. 아무튼 난 요새 우울하고, 또 웃기는 재주가 없는 내가 한심하고 서글프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365일 밝을 수만 있을까. 맨날 행복하면 그건 조이코패스 아닌가!


왜 이미지 설명란이 안 뜨는 걸까? 나는 이런 것도 못 찾는 찌질이다. 디즈니가 낳은 희대의 사이코패스 조이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조이는 슬픔을 용납하지 않는 무적 용사. 이 친구 때문에 얼마나 스토리가 길어졌던가. 잠깐 그런데 출처는 어떻게 적어야 하는 걸까. 각각의 주소를 남긴다. (http://www.dogdrip.net/77475034,  http://koreanews.pe.kr/264435/?z=/%EC%A1%B0%EC%9D%B4%EC%BD%94%ED%8C%A8%EC%8A%A4/)



슬픔과 찌질을 모르는 인생은 행복을 모르는 인생만큼 볼 게 없을 거다. 난 그렇게 생각해야겠다. 그래서 오늘 찌질할 거다. 며칠 더 갈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다시 웃겨질지도 모르잖아. 노래나 한번 더 듣자. 어떡하나, 어떡, 해, 애, 애.






EBS SPACE 공감, 748회, 장기하와 얼굴들의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공연분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칭찬했을 뿐인데
내가 그리 재미없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굉장히 웃길 뿐인데
내가 그리 못 나가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잘 나가는 것뿐인데
날 그리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아주 좋아할 뿐인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웃고 있는 내 입꼬리가 땡기네

나는 어떡하나 어떡해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칭찬했을 뿐인데
내가 그리 못난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참 잘났을 뿐인데
내가 울고 싶은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웃고 있을 뿐인데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웃고 있는 내 입꼬리가 땡기네

나는 어떡하나 어떡해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칭찬했을 뿐인데
내가 그리 재미없는 것도 아닌데
그 새끼가 좆나게 웃길 뿐인데
내가 그리 못하는 것도 아닌데
그 새끼가 너무 너무 잘 할 뿐인데
내가 그리 못난 것도 아닌데
그 새끼가 얼마나 잘났든지 나랑은 상관없는데 왜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매거진의 이전글 버스,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