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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Oct 22. 2017

직장인 키우기


식물을 잘 죽였습니다. 내 잘못인 줄 알았습니다.


율마 두 그루, 수염 틸란 세 뿌리, 로즈마리 화분 두개, 스투키 삼형제 그 밖에 기억 못하는 여러 화분들. 키우기 쉽다는 식물들도 어쩌다 내 손에 들어오면 다 죽어버렸습니다. 인간에게도 일조량이 부족한 원룸. 150센티의 작은 인간 쥐똥한 방구석 하고 욕이 나오는 좁은 공간에 풀잎을 데려온 건 분명 잘못이겠죠. 그러나 팍팍한 삶에 파릇파릇한 녹기를 가까이 두고 싶어 한 게 큰 욕심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양재 꽃시장까지 가서, 잔뼈 굵은 사장님들께 얕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식물과 화분들을 신중하게 골라 양손 가득 싸들고,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낑낑거리며 돌아와 이 쥐똥한 방구석에 모셔다 놨던 거죠. 그리고 반년이 채 안돼 그 모두를 죽여버렸습니다. 저는 분명 식물 학살자였습니다.


최근 이사를 했습니다. 직장에서 한 시간 반 멀어지면서 집이 확 넓어졌습니다. 양재 꽃시장으로 다시 출동했습니다. 고르고 골라서 알로카시아, 드라코, 몬스테라, 고무나무를 데려오며 다짐했습니다. 절대 죽이지 않는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쥐똥한 굴에서도 살아남은 스킨답서스와, 1년 전 선물로 받았으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길 없는 호야까지. 다시 이사 나갈 땐, 모두 살아 나가자.


식물을 길러본 사람은 알겠지요. 오래도록 싹이 안 났던 화분에서, 어느 날 작은 싹이 문득 솟아난 걸 보는 기쁨을. 식물학살자인 저는 더 기뻤습니다. 벌써 반년 넘게 죽은 것처럼 크지 않던 호야가 싹을 한 번에 두 개나 틔웠거든요. 아주 아주 작은 싹이지만, 그만큼 더 반짝거렸습니다. 거기에, 스킨답서스를 물꽂이 하고 버리기가 뭐해 방치했던 남은 뿌리에서도 싹이 뾱 올라왔습니다. 맙소사. 저는 식물학살자가 아니라 식물부처였습니다. 엄지로 콕 찌르면 거기서 싹이 나는 건 아닐까요.


여러 주변인들의 걱정 내지는 비웃음을 뒤로하고, 이사 온 지 2개월이 지나도 새 집에서 식물들은 안녕합니다. 달력엔 물을 준 날이 꼬박꼬박 추가되고 있고, 비전문 식물인의 눈에는 제법 싱싱해 보입니다. 고무나무는 잎이 한 장 새로 올라왔고, 몬스테라는 벌써 새 잎이 네 장, 성장 속도가 무시무시한 알로카시아는 잎이 5배가 되었습니다. 드라코도 아직까진 무사합니다.



* 오른쪽 사진의 삐쭉 솟아나온 잎사귀 세개 보이시나요? 2주전엔 왼쪽의 조그만 새싹이었습니다

버려둔 화분에서도 새싹이!



환경이 바뀌니 방치된 화분에서도 싹이 납니다.

적지 않은 식물을 죽이다 보니 오히려 알게 된 사실. 식물은 그렇게 빨리 죽지 않는다. 마지막 물 한 모금을 마셔야 할 바로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다면. 식물은 끝끝내 꿋꿋이 살아남는다. 그마저 놓친다면 그땐 정말 안녕이지만.


사실, 우리에게 친숙한 식물들이란 모두 잘 죽지 않는 것들이죠. 좋은 말로 키우기 쉬운 식물. 아주 무식한 조건에서도, 이를 테면 집주인이 물주는 걸 한 열흘, 보름 까먹어도 살 수 있고, 햇빛도 바람도 죽지 않을 정도로만, 혹여 주인이 존재를 잊어도, ‘잘 죽지 않는’ 식물들. 그렇게 기묘하게 잘 안 죽으면서, 보기에 좋은 식물들만이 꽃집에 들어갑니다. 공기 정화에 좋다든지, 당장 뜯어 요리에 쓸 수 있다든지, 특출난 장기가 있다면 꽃집 사장님의 강력 추천까지 받게 되구요. 우리가 흔히 보는 식물들은 그렇게 팔렸을 겁니다. 양재 꽃시장도 비슷해요. 단지는 그렇게 큰데, 꽃 종류는 얼마 없다는 인상입니다. 사장님들도 안전하게, 잘 팔리는 식물들을 위주로 골라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식물은 대개 열 가지 이내로 정해져 있으니까. 그래서 웬만한 식물은 잘 죽지 않아요. (살아있다고도 보기 어렵지만)


직장인은 어쩌면 키우기 쉬운 꽃 아닐까.


식물을 키우다 보니 꼭 저를 키우는 것 같습니다. 회사가 직장인을 보는 기준도 어쩌면 딱 한 가지. 죽지 않을 정도로 굴려도 정말 말라죽지 않는가? 능력은 어쩌면 부차적인 것, 식물들의 공기정화 능력처럼. 매일매일 정해진 업무만 해도 위로 치받지 않고, 성취나 보람 따위 없어도 적당히 눈치 보면서 배부른 소리 하지 않을 수 있는 식물. 감각의 물기를 쪽 뺀 하루를 보내고도 무사할 수 있는 인간들을 골라내는 건 아닐까. 부당한 일을 당하면 화가 나고, 상을 받으면 깔깔 웃고, 억울하면 눈물을 쏙 빼는 게 당연한데. 사람에겐 느껴야 할 감각이 너무나 많은데, 하루 종일 포커페이스만 해도 무사할 수 있는 인간들만 골라낸 건 아닐까. 그렇게 골라진 키우기 쉬운 꽃, 이상하게 잘 안 죽는 꽃, 그게 나 아닐까. 그래서 싸고 흔한 식물처럼 이렇게 매일 자신 없는 걸까. 백 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전설도 없고, 유난한 꽃말도 없는, 가정집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화분처럼.


바로 그래서 직장인은 직장인을 잘 키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쉽게 말라죽지 않으니까. 물 주는 걸 까먹지만 않으면. 내가 지금 싹이 잘 안 난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내 뿌리가 약한 탓이 아니라 너무 좋지 않은 환경 탓일 거예요. 직장인은 물을 얻어먹기가 참 쉽지 않아요. 자극 주는 선배, 만족스러운 인센티브, 좋은 퇴근 시간, 맛있는 물을 주는 직장은 카드 뉴스에나 있고, 직장인의 환경은 직장인의 섭생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게다가 아무리 힘이 없는 사람이라도 스스로를 말려 죽일 힘은 있구요. 그렇기 때문에, 나만은 꼭 내게 물을 줘야 합니다. 남들은 다 잊어도. 지금도 어느 실뿌리 하나는 새싹 틔울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까. 당장은 벌레가 좀 꼬여도, 조금만 햇볕을 더 받으면 꽃도 틔울 테니까.


꽃시장 사장님이 알려주셨는데요, 식물 초보자들이 식물을 죽이는 이유는 물을 너무 찔끔 주기 때문이래요. 물은 뿌리를 흠뻑 적시고도 남아 화분 밑으로 쪼르르 새어 나올 정도로 충분히 줘야 한다고, 애매하게 주다 말아서 물길을 못 튼 물이 화분 속에 고여있다가 뿌리를 썩힌다고. 그러니 우리, 물 듬뿍 줍시다. 눈치 보면서 애매하게 주지 말고, 내가 원하는 만큼, 폭포 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재밌는 거, 하고 싶은 것들로 잔뜩, 푹 젖을 만큼. 어느 날 정수리에서 톡, 새싹이 솟을 때까지.


우리 집 물 주는 날은 열흘에 한 번. 마른 화분에 물을 주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소나기 소리가 나요. 작은 돌 틈, 갈라진 흙 사이로 물이 솨-솨- 소리를 내며 물이 정신없이 빨려 들어요. 막 따른 사이다 탄산 같은 보글보글 소리. 그 소리를 듣는 게 참 맛이 좋습니다. 말라죽은 것 같은 나도, 분명 이런 소리를 내는 시간이 있으니까. 일요일 한갓진 오후, 이런 글을 적는 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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