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물정의 물리학>, 김범준
글 하나가 브런치 메인에 걸렸다. 그러더니 카카오톡 채널에도 올라간 모양이다. 생전 처음 보는 조회수. 폭발적인 댓글 반응. 늘어나는 구독자. 아니, 내가 글을 이렇게 잘 썼던가! 아무리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자 해도, 관심은 받으면 신나는 법. 나는 다른 글도 많이 썼는데, 유독 그 글이 흥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나는 다음번에도 메인에 걸릴 수 있을까?
왜 어떤 영화는 다른 영화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보고, 어떤 과자는 사재기 열풍을 일으켜 심지어 중고 과자가 거래될 정도로 인기를 끌까?
-<세상물정의 물리학> 중
흥하는 글의 비밀은 우선 문턱값 threshold value에 있다. 새로운 글이 올라왔을 때, 추천이 없어도 일단 읽는 사람을 문턱값이 0인 사람이라고 하자. 첫 번째 사람이 읽고 좋아요를 누르면 문턱값이 1인 사람도 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이제 글의 추천인은 2명이 되었다. 그럼 문턱값 2인 사람도 글을 읽어보게 된다. 글이 흥하려면 처음 글을 읽고 좋아요를 눌러줄 사람과 1,2,3,4,5,6,7,8... 그 후의 문턱값을 가진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으면 된다. 엄청나게 글을 잘 써야 할 필요는 없다. 더 정확히는 쓰레기 수준만 면하면 된다. 10번째 문턱값을 지닌 사람이 “이 글 진짜 쓰레기네요” 하면 11번째 문턱값을 지닌 사람에게 넘어갈 수 없으니까.
두 번째 비밀은 마당발과 연결되는 것이다. 표준정규분포 그래프를 떠올려보자. 수능 성적이나, 사람들의 키, 몸무게 등은 대개 이 종모양을 따라간다. 너무 뚱뚱하거나 너무 마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고, 평균적인 몸무게를 지닌 사람들이 가장 많은. 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영향력은 표준정규분포를 따르지 않는다. 한 사람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 수는 천차만별이다. 대부분은 기껏해야 서너 명과 연결되지만, 어떤 사람은 천명 만명도 연결된다. 이런 경우를 잣대 없는 사회 연결망이라고 한다. 그중 영향력이 가장 센 사람을 마당발이라고 하자. 마당발인 친구와 연결되면 그 친구의 친구들을 통해 순식간에 나의 글이 퍼져나갈 수 있다.
내가 쓴 글은 우연히 문턱값이 낮은 마당발(이 경우라면 너그러운 브런치 편집자)의 눈에 뜨였고, 그 결과 메인에 오르게 되었다. 브런치 메인에 소개되자 다른 마당발들의 눈에도 띄기 쉬웠고, 이것은 곧 더 강력한 연결망 효과를 유발했다.
이렇게 쓰니 제법 과학자답지 않은가!
물리학자도 사람이다. 세상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 안에서 세상을 본다.
-<세상물정의 물리학> 중
과학이라고 하면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같은 것을 떠올리기 쉽다. 이것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시험 과목에 불과하다. 과학자라고 하면 더 고정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인슈타인. 말이 안 통하는 괴짜. 자기만의 세상에 사는 사람들. 하지만 물리학자도 사람이다. 그래서 허니버터칩이 인기를 끄는 이유나, 도로 정체의 원인, 혈액형에 따른 성격 분류의 타당성을 연구하기도 한다. 세상물정을 탐구하는 것이다. 바로 통계물리학자 김범준 씨의 세계다.
한 번은 강연 중에 한국 성씨 분포의 독특함에 대해 짧게 설명했는데 청중 한 명이 강연 후 나에게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응용할 수 있나요?"라고 질문했다. 나의 이런 이색 연구가 지금이나 앞으로나 일말의 기술적인 응용 가능성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이것도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은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의미한다고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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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지만, '내가 이 연구로 노벨상을 받아야지'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 아니다. ~ 그럼에도 왜 과학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많은 과학자를 대신해 할 수 있는 대답은 "그냥 아침에 연구실, 실험실에 갈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레기 때문"이다.
-<세상물정의 물리학> 중
저자는 과학이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럴까. <세상물정의 물리학>을 읽다 보면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건 내가 인생 처음 과학자를 만난 순간에 느낀 충격과도 비슷했다.
“누가 전화를 오른손으로 받고 왼손으로 끊었나 봐요.”
야학에서 선생으로 일할 때였다. 퇴임 선생들에게 전화 돌릴 일이 있었다. 전화를 돌리고 한숨 돌리는데 과학 담당 동료가 사무실로 들어와선 전화기를 보고 말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꼬인 전화선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오른손으로 받고 왼손으로 놓으면 이렇게 꼬이거든요.
아니, 정말 전화줄이 잔뜩 꼬여있구나! 나는 그제야 전화줄을 보고, 그의 말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른손잡이다. 오른손으로 전화를 들고 통화하다 필기할 일이 생기면 왼손으로 전화기를 옮겨 받는다. 오른손으로 메모를 하고, 끊을 땐 그 순간 통화하던 왼손으로 내려놨던 것이다. 전화줄은 그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꼬였고.
8년 전 일인데 그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세상엔, 전화선 꼬이는 원인을 찾는 사람이 다 있구나! 나는 그 사람을 천재라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이 과학자가 되는 거구나 싶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는 지금 음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과학적 사고를 처음 접한 순간이다.
The book of nature is written in the language of mathematics.
자연법칙들은 수학의 언어로 쓰여있다, 뉴턴
-<세상물정의 물리학> 중
나는 꼬인 전화줄을 보면 아 전화줄이 꼬였네 한다. 어떤 사람은 오른손과 왼손의 움직임을 본다. 나는 길이 막히면, 졸라 막히네 시바, 한다. 근데 어떤 사람은 아 이것은 밀도의 문제군 한다. 나는 허니버터칩이 흥하면, 상술 쩌네, 한다. 근데 어떤 사람은 아 이것은 문턱값을 잘 넘은 경우로군 한다. 그렇다, 쓰는 언어가 다른 것이다. 꼭 노벨상을 받거나 누구의 마지막 명제를 풀어야만 과학이 아니다. 세상 일을 표현하는 새로운 언어를 하나 더 아는 게 과학인 것이다!
예를 들어 '영자'라는 이름이 1930년대 강원도에서 시작해 충청도를 거쳐 서울로 전파됐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무척 재밌을 것 같지 않은가.
-<세상물정의 물리학> 중
나는 물리학자 김범준의 생각을 읽는 것이 정말로 즐거웠다. 한국어로 쓰여 있는데, 전혀 다른 언어 같았다. 같은 현상을 두고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거구나. 이건 마치 세상에 영어란 게 있다는 것을, 다른 나라에선 다른 나라 말을 쓴다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과 같았다. 잘 쓴 영미 소설을 번역까지 잘한 작품으로 읽는 느낌! 게다가 김범준 씨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절대 폼을 잡지 않는다. 대부분의 연구주제는 김범준 씨 본인이 너무 궁금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에 시작된 것들이었다.
물리학이라는 자연의 언어를 한국어로 번역해주는 사람들. 과학자들을 흔히 세상과 떨어진 괴짜들로 보는 이유는 물리학이 일종의 언어라는 것을 잊기 때문 아닐까. 같은 한국어를 써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과학자들은 다른 말을 쓴다는 걸 잊어서. 오히려, 내가 본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글을 잘 썼다. 기생충학자 서민 교수가 그렇고, 세상물정의 물리학을 쓴 김범준 교수가 그렇고, 앞서 말한 전화줄 과학자도 글을 아주 잘 썼다.
다시, 메인에 걸릴 만한 글로 돌아와서. 이번 글은 과연 저번 글만큼 흥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문턱값과 잣대 없는 연결망이 열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메인에 걸리지 않는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브런치에 매일 글을 쓰는 이유는 어차피 “그냥 글을 써서 올리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레기 때문” 아닌가. 노벨상을 목표로 하지도 않고, 돈 벌 생각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지만 김범준 씨의 연구는 나를 초급 과학자로 만들어주었다. 과학의 언어를 흉내 내게 해주었다. 재밌어서 시작한 연구라 읽는 나도 재밌었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즐거웠던 부분을 함께 나눈다. 앞으로 나는 이런 정신을 김범준 정신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1. 아니, 이렇게 재밌는 과학책이!
2. 아는 게 없는데 아는 척하고 싶다면
3. 자녀들이 "왜??"를 시작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