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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Jun 19. 2017

영화를 고를 때 우리가 믿는 것들

똥송한 한마디 - <겟아웃>

나는 독일어를 조금 안다. 그래서 로튼 토마토라는 단어를 봤을 때, 그게 빨간 토마토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로튼 토마토 신선도 99%는 대체 뭐라는 걸까. <겟아웃>의 첫 인상은 그게 다였다. 이제 나는 ‘로튼 토마토’가 미국의 영화 비평 커뮤니티라는 걸 안다. 그리고 <겟아웃>이 로튼 토마토 신선도 99%의 수작이라고 광고한 덕분에, 우리에겐 새로운 영화 선택의 준거가 생겼다. 이동진이나 박평식의 평점 말고, 듀나 게시판의 반응 말고, 아카데미, 선댄스의 선택 말고, ‘로튼 토마토’라는.


<겟아웃>은 ‘인종차별’ 공포 영화라고 했다. 공포는 보통 두 종류다. 내 안에서 생기는 공포, 내 바깥에서 오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공포. 그럼 인종 차별 공포물은 어디서 시작할까?


영화 초반. 주택가에서 흑인이 급습당할 때, 여주와 남주가 몰고 가던 차가 사슴을 들이받았을 때, 남주가 사슴의 눈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볼 때, 여주 집의 흑인 도우미들이 멍한 눈빛으로 주인공을 주시할 때 나는 이것이 혹시 고어물나 엑소시즘, 오멘 같은 영매물은 아닐까 초조해졌다. 그간 배워온 공포영화의 초식에 따라 영화 장면들을 해석하며 나는 쪼그라들었다. 이건 순전히 ‘내 안에서 생긴’ 공포였다.


 다음 장면에서 분명 무슨 일이 생길 거야, 라는 긴장을 하지 않았다면 영화에 그다지 무서운 부분은 없었다. 영리한 연출이었다. 이제 곧 누군가의 머리가 날아가거나, 갑자기 목이 졸릴 것 같은 - 공포영화적 상황을 잘 활용해,  돌이켜보면 별로 무서울 것 없는 장면조차 두려운 것으로 만든다. 내 공포는 나의 틀린 예측 때문에 만들어졌다. <겟아웃>이 관객을 집중시키는 흡인력은 대단하다. 그러나 모든 사건을 다 알고 두 번째로 볼 때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극한의 경험은커녕 충격까지 가지도 못했다. 그러면 대체 왜 로튼 토마토의 유명한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공포를 넘어선 놀라움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한 걸까.


<겟아웃>의 핵심 사건은 미국 시골에서 일어나는 흑인 경매 파티다. 여주는 백인 가정에서 자라난 미모의 백인. 여주의 아버지는 신경외과 의사, 어머니는 심리학자로 여주가 타깃 흑인들을 꾀여 집으로 데려오면, 어머니가 최면을 걸어 무의식 상태로 만들고, 아버지는 흑인의 몸에 그 몸을 구매한 백인들의 뇌를 이식한다. 물론 이 경매에 참가하는 백인들은 모두 ‘하자’가 있는 사람들이다. 성기능이 떨어지거나, 눈이 멀었거나, 흑인에게 패배했거나.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두뇌’를 육체적으로 우월한 흑인에게 이식하여 새로운 삶을 꿈꾼다. 새로운 육체가 닳을 때마다 뇌를 갈아 끼운다면 아마 영생도 가능할 것이다.


주류로서 파워를 잃은 주류가, 비주류를 희생물로 삼아 영생을 꿈꾼다. 내게 없는 것을 동경하며, 새로운 내가 되고자 한다. 등장인물들의 동기는 고전적이며, 최면술 같은 컬트적 소재는 매력적이지만 신선하지 않고, 주인공의 자아를 표현하는 장면은 <존 말코비치 되기>보다 새롭지 않았다. 스릴러의 관점에서는 <폰부스>의 제약보다 충격적이지 않았다. 결국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지점을 굳이 찾아내자면, 흑인에 대한 혐오/동경/공포를 노골적으로 보여주었다는 것일 테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고, 재선을 거쳐 훌륭하게 임기를 마친 이 시점에서 백인들은 무의식 중에 이런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백인들은 아무것도 아닌 거 아닐까. 오바마, 마이클 잭슨, 조단, 타이거 우즈를 봐. 다 흑인이잖아. 영화 속 여주의 아버지가 흑인을 차별하지 않는 증거는 ‘오바마의 3선에 한 표를 지지했을 것’이란 견해며, 파티에 참석한 백인 늙은이들은 남주에게 ‘타이거 우즈를 좋아한다’며 친근함을 표현한다. (물론 영화 속에서 여주와 여주의 백인 손님들이 ‘흑인 우호적’으로 굴었던 모든 장면은 나중에 가서는, 상품인 흑인을 판매하고 구매하는 과정일 뿐으로 밝혀진다.)

그러니까, 그 흑인들은, 전인류, 전지구 최강으로 압도적인 사람들인데 그런 그들을 좋아하는 게 백인들에게는 흑인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된다.


<겟아웃>이 개봉하기 불과 몇 개월 전 <히든 피겨스>가 개봉했다. 나사에서 일했던 ‘흑인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역시 영화적으로 크게 성공했다. 비범한 흑인들의 성공 스토리, 또 그런 흑인들을 소화한 미국 사회, 그렇게 발전을 거듭해 더 이상 인종차별 따위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영원히 행복했지요. '흑인'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무릇 <히든 피겨스>처럼 다뤄져야 한다. 우리에겐 분명 '인종 차별'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시련을 딛고 발전했으며, 조금 더 좋은 사람들이 되었다. '인종 차별'은 옛날의 이야기일 뿐이고 이제 '인종 차별'이 나쁘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흑인'을 소재로 할 때에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 이것이 누구에게도 불편함을 남기지 않는 방식이다. 2017년 오늘을 사는 흑인이, ‘백인들 속에 둘러싸여 있으면 사실 불편한’ 마음이 든다고 감히 말하는 것은 얼마나 ‘충격적’인 요소일까.


남주의 흑인 친구는 아주 거리낌 없이 백인들을 욕한다. 그 백인 여자네 부모 집에 가지 말랬잖아 등신아, 걔들은 널 잡아서 성노예로 쓸지도 모른다구. 한편 백인들은 거리낌 없이 흑인을 잡아다 상품으로 만들어 머리 뚜껑을 열고 자신들의 뇌를 이식한다. <겟아웃>에선 모든 게 적나라하다. 백인의 열등감도, 흑인의 초조함도. 모두들 거침없이 의심하고 발언하며 행동한다. 백인은 백인의 입장에서, 흑인은 흑인의 입장에서. 오바마가 퇴임하고, 트럼프가 집권한 지금 그들에겐 그게 그토록 충격일까? 이 공포는 밑바닥의 마음을 찔린 것 같은 데서 나오는 걸까?


그래서인지 내게 이 영화는 그렇게 '신선하지' 않았다. 전혀 '충격적이지' 않았다. 똥양인으로 태어 비슷한 얼굴들 속에서만 자라온 내게 이 영화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똥같은' 동양인이라 죄송하다는 열패감에 시달리는 사회에서 자란 내게 백인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배당한다는 공포는 전혀 충격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것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무기력함이다.


내가 백인이 아닌 나에게 공포를 느낀 건 오히려 <히든 피겨스>를 봤을 때였다. <히든 피겨스>에서 흑인 전용 화장실이 Black이 아니라 Colored로 쓰여있는 걸 봤을 때는 정말로 무서웠다. Colored는 멍키페이스의 황색 인간인 나를 포함하는 말이니까. 하지만 <겟아웃>의 세계는 영화 포스터처럼 완벽하게 흑과 백으로 나뉜다. 백인을 두뇌로, 흑인을 육체로 구분할 때 동양인은 그 어느 쪽에라도 낄 수가 없기 때문일까? 여기서 동양인은 철저히 엑스트라다. 남주 경매 파티에 참석한 일본인은 남주에게 묻는다. 흑인으로 산다는 건 이득입니까, 손해입니까? 결국 그 일본인은 남주의 몸을 구매하지 않았고, 어느 순간 스토리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이 영화는 동양인인 내게 완전 남의 이야기가 됐다.


사실, 흑인과 백인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백인이 흑인을 세뇌시켜 판매한다는 자극적인 소재로 이토록 흥행할 수 있었던 건 역시 감독이 흑인이었기 때문이겠지. 흑인에 대한 농담과 흑인의 공포는 흑인만 할 수 있는 거니까. 만약 백인이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양상이 어땠을지도 궁금하다. 나로 말하자면 이 글을 쓰면서, 평생 동안 쓸 '백인', '흑인'이란 단어를 거의 다 쓴 것 같다. '흑인', '백인'이란 말을 쓸 일이 별로 없는 내겐 이 단어들이 그 자체로 아주 위험하고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누군가를 그저 백인, 흑인이라고만 규정하면 내가 질 나쁜 우생학 광신도가 된 것 같아 불쾌할 뿐이다.


어쨌거나 나는 똥양인이다. 똥양인들의 나라에 살며 똥송함을 기본 정서로 삼는다. 영화 배급사조차, 영화 하나를 고르더라도 로튼 토마토 신선도 따위를 기준으로 삼아야만 안심하고 자신의 안목을 믿는다. 이런 세상에서 <겟아웃>은 전혀 공포물이 아니다. 똥양인으로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보탠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99%는 개나 주라고 해라. 겟아웃, 별 거 없었다.







 


<겟아웃>을 보고서 뒤늦게 쓰는 영화 홍보에 대한 불평
*여주= 여주인공 / 남주= 남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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