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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Jun 20. 2017

꿈을 말하다 울게 되는 순간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잘하고 싶다. 서둘러 마음을 고쳐먹는다. 잘 하려고 하지 마. 어차피 못할 테니까. 내 주제에 뭘 잘하고 싶다니. 잘하고 싶다고 잘하게 될 것도 아닌데. 잘하고 싶은 나는 남사스럽다. 지금 이 글을 잘 쓰고 싶다. 그 생각을 애써 삼간다. 잘 쓰고 싶다고 잘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잘 쓰려고 하지 마, 열심히 다독인다. 하지만 왜?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이면, 잘하고 싶은 것도 당연하잖아.


캡틴은 일본 아이다. 고등학교 3학년, 야구부 주장. 일본 아이들은 시골 고등학교 농구부도 ‘전국 재패’를 꿈꾸니까 캡틴의 마음도 분명 뜨거울 거다. 캡틴은 매일 배팅 연습을 하고 그러고 나면 바로 러닝이다. 머리는 언제나 밤톨 같은 까까머리. 옆으로 지나가면 땀냄새가 날 것 같다. 재능이 있는데도 야구를 관둔 후배를 독려하기도 하고, 훈련할 때면 누구보다 무서운 선배이기도 하다. 시합 전엔 아마 프로 선수처럼 진지할 것이다. 그런데, 캡틴은 야구를 잘 못한다. 이제 곧 졸업이지만 스카웃 제의를 받지 못했다. 캡틴은 언제 야구를 그만두어야 할까.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 둔대.”


키리시마는 야구부 캡틴과는 달리 배구부의 잘 나가는 리베로. 그가 있는 한 도대회 우승도 꿈은 아니다. 그런데 키리시마는 왜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었을까. 캡틴도 야구를 계속하는 마당에. 학생의 본분은 역시 입시라서? 아니면 단순한 변덕? 그것도 아니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게 지긋지긋해졌을까.


키리시마는 전교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애다. 그를 중심으로 학교 안의 잘 나가는 애들이 모여있다. 키리시마의 여자 친구, 단짝, 동아리원들은 모두 키리시마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들이다. 키리시마의 주변 사람들은 누구도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자신만의 생각도, 자신만의 고민도 하지 않는다. 키리시마를 기다리기 위해 농구를 하고, 키리시마의 여자 친구로만 존재하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므로 키리시마의 부재는 이들에겐 세계가 무너지는 대사건이 된다. 키리시마가 사라지고 나서야, 아이들은 자신의 삶에 직면한다. 영화는 키리시마의 등장 없이 키리시마 이후의 삶을 담담하게 담아낸다.


“A가 B했대”


광고회사에서 6월은 깐느 시즌이다. 깐느 영화제 말고, 깐느 광고제. 잘하는 사람들은 모두 거기서 상을 받고 있다. A가 B하는 소식이 자꾸 들린다. A는 이번에도 상을 받았대, B는 그래서 책을 낸대, C 회사 나간대. 온갖 ‘했대’ 사이에서 나는 이리저리 흔들린다. 회사를 계속 다니다 보면 내 진로는 결국 두 가지가 될 것이다. 팀장이 되든가, 그만두고 나가든가. 그런데 나는 나가서 일할 재능이 없고, 팀장은 내 목표가 아니다. 나도 A처럼, B처럼, C처럼 뭔가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삶은 나 자신을 들여다볼 때보다, A가 B했다고 할 때 더 자주 흔들린다.  


히로키: 장래희망은 역시 영화감독이야?

마에다: 에- 음-

히로키: 여배우랑 결혼한다거나

마에다: 하핫-

히로키: 아카데미상이 목표지?

마에다: …아냐

히로키: …에?

마에다: 아카데미상은, 못 타, 내겐 절대로 무리.

히로키: 그, 그럼 왜… 지금… 영화 찍고 있는 거야?

마에다: 음, 뭔가 가끔, 가끔이지만 말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랑, 내가 좋아하는 게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게, 그냥 좋아서 말야…


야구를 잘하지만 프로 선수가 될 만큼은 아니라서 야구를 그만둔 히로키는 영화부의 마에다에게 묻는다.

“장래 희망은 역시 영화감독?”

마에다는 아무것도 되지 못해도, 영화 좋다는 말을 한 후에 히로키에게 질문을 돌려준다.

“그럼, 너의 꿈은?”

나,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러니까 결국 난 놈은 뭐든 되고 모자란 놈은 뭘 해도 안 된다는 말이잖아'라고 쉽게 단정 짓던 남자아이는, 아카데미를 못 타도, 대 배우와 결혼하지 못해도, 오늘 내가 찍고 싶은 영화 한 컷을, 바보 같은 분장을 하고, 쓰레기 같은 소품들을 갖고 찍는 다른 남자아이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그 아이가 세상을 마주하는 낡은 카메라 앞에서 도망치고 만다. 꿈을 말하는 순간은 가끔 눈물이 난다. 숨겨온 꿈을 마주 볼 때면 울고 싶어 진다. 히로키는 꿈을 피해 달려, 밤늦도록 연습하는 야구부 앞에서 멈춰 선다.


야구선수가 되지 못할 야구선수들. 소설이 되지 못할 소설. 유행어가 되지 못할 카피. 기억되지 못할 광고. 꿈이 되지 못할 수많은 꿈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영화부의 영화는 솔직히 말해, 형편없다. 키리시마의 대타인 배구부 리베로 코이즈미도 실력은 형편없다. 그 사실을 자기들도 안다. 근데 어떡하라고. 부족한 나라도, 매일매일 싸우면서 사는 수밖에 없잖아. 그래, 어차피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자기 자신만의 인생이다. 누구도 남의 인생을 내 인생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러므로 키리시마가 없는 지금 히로키는 멈춰 설 수밖에 없다. 이제야 비로소, 내 인생의 무게를 실감하며.


히로키: 저기, 주장은 3학년이시죠? 왜 은퇴 안 하세요? 주장한테 스카웃 제의가 온건…?

캡틴: 한 번도 없어. 신인 선발 끝날 때까진 하려고. 없겠지만, 신인 선발 끝날 때까진.


아주 아주 가끔, 나는 내가 쓴 글에서 비로소 내 마음을 명확하게 표현한 한 줄을 발견한다. 그게 다른 누군가에게 이해될 때가 있다. 그 순간이 있어 계속 쓰게 된다. 아주 가끔 나의 삶이, 내가 바라던 바로 그 인생과 연결되는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러니까 신인 선발이 끝날 때까진 공을 던지는 수밖에 없다. 보나마나 내 공은 힘이 없을 것이다. 시속 150키로의 직구도, 끝이 날카로운 슬라이더도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어떤 만화의 주인공도 되지 못할 것이다. 위기의 순간 기적처럼 나도 몰랐던 잠재력이 폭발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빛나는 한 문장을 꼭 써보고 싶다. 그게 좋으니까. 그것으로 됐다. 좋아하는 것이 내 현실과 어떻게든 연결되는 순간이 분명 있다.


등 떠밀리듯, 휩쓸리듯, ‘A가 B했대’와 같은 말풍선들에 몸을 싣고 사는 건 쉽다. 재능 없음과 무의미싸워가며 사는 건 어렵고 지겹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 내 삶은 키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두어도 계속될 테니까. 다른 사람의 야구 연습을 바라만 보다 우뚝 멈춰 서지 않도록.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하고 싶어도 괜찮다. 나는 잘하고 싶다. 오늘 이 글은 잘하지 못했지만, 잘 할 때까진 잘 해보고 싶다.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를 보고서 나는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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