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투 원>, 피터 틸
이십 대의 끝. 서른 코 앞. 서른이면 잔치가 끝난대서 긴장하고 스물아홉이 됐는데, 나이를 먹는 건 힘든 일은 아니었다. 다만 곤란한 일이었다. 예를 들면, 오랜만에 만난 ‘오빠’들이 ‘사장’이 되어야겠다고, 당당히 창업 아이템을 밝힐 때.
명심하라. 그것이 술자리 안주감이든 막연한 꿈이든, 구체화된 계획이든 상관없다. 창업을 말하려는 사람은 하지 말 것이고, 들으려던 사람은 듣지 말 것이다.
왜냐, 그런 말 중에 분명한 반응을 보일만한 아이템이 있을 확률이란 인천의 어느 고졸 백수가 스티브 잡스가 될 확률만큼이나 작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 대박…”이라는 외마디 감탄 이후로 시작될 정적과 뻘쭘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애꿎은 잔만 꺾어 간을 해칠 요량이 아니라면, 하지말고, 듣지마라. 못하겠다면, 조용히 이 책을 읽거나 권하라. 열리려던 입은 다물릴 것이고, 그 후로 펼쳐질 장광설을 막을 대답이 생길 것이다.
- <제로투원> 중
내가 본 사장 꿈나무들은 대부분 불명확한 낙관주의자이다. 미래가 현재보다 더 좋아지리라 생각하지만,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기 때문에, 미래를 구체적으로 디자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 그들은 일단 대박 아이템을 손에 쥐면, (대박이라는 수식어의 참/거짓은 둘째 치고) 아이템이 있다는 기쁨에 잠겨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모든 행운과 모든 기적이 총동원된 최고의 미래만을 생각하면서. 뿐만 아니라 그 달콤한 미래가 하루 이틀 사이에 없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전전긍긍한다. 당장 오늘에라도 직장에 사표를 던질 기세다. 뻔한 답이지만 그렇게 해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 책의 저자이자 페이팔의 설립자, 스타트업을 꿈꾸는 오빠들의 워너비 - 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모든 순간은 단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앞으로 그 누구도 컴퓨터 운영체계를 만들어서 제2의 빌 게이츠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되는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일을 다시 해봤자
세상은 1에서 n이 될 뿐이다. 그러나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세상은 0에서 1이다.
창조라는 행위는 단 한 번뿐이며, 창조의 순간도 단 한 번뿐이다.
모든 것의 처음은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우주가 만들어진 138억 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우주가 처음으로 생긴 백만 분의 몇 초 사이에 우주는 10의 30 승배로 확장되었다. ~ 그 잠시 잠깐 최초의 순간 동안 우주가 창조되었고, 그때의 물리법칙들은 지금 우리가 아는 물리 법칙들과는 달랐다.
- <제로투원> 중
세상에는 다른 순간보다 더 중요한 어떤 순간이 있고,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 이것이 기초를 망친 기업은 되돌릴 수 없다는 틸의 법칙이다.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왜 이 사업을 시작하려는지 정직하게 답해야 한다. 이 젊음과 이 돈으로 더 재밌는 일을 하지 않고 왜 사업을 하려는가? 수많은 위험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시작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돈을 벌고 싶어서다. 그것도 큰돈을. 회사의 존재 목적은 이윤의 창출이지 손해의 방지가 아니다. 단지 돈을 잃지 않기 위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처음을 쉽게 흘려버려선 안된다.
자, 이제 우리는 처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 다음은 무엇일까? 내가 쥔 아이템에 대한 객관화가 필요하다. 그저 기술만 열심히 전공한 어느 공대 오빠가 기술력으로 승부하는 IT회사를 만들겠다고 하면 틸은 이런 대답을 할 것이다.
대학생들은 몇몇 전공 분야에서는 고도의 전문적 기술을 습득하기도 하지만,
정작 그 능력으로 더 넓은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 <제로투원> 중
만약 틸 앞에 앉아있는 것이 IT 마케팅 회사를 다니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에 없던 아이템이라는 그의 휘황찬란한 발언을 이렇게 일축했을 것이다.
예컨대 <해커스>와 <죠스>를 섞어놓은 영화에 제이지를 출연시킨다면 말이다.
~ 이런 영화는 한 번도 나온 적 없지만 안 만드는 게 더 나을지 모른다
- <제로투원> 중
틸은 철학을 전공했기에 보통의 창업자들이 하지 않는 생각들에 골몰했다. 모든 회사는 자신만의 명제를 지녀야 하고, 그 명제는 회사의 미래가치를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분명해야 한다. 그렇게 틸은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명제들을 찾아냈다.
- <제로투원> 중
신생기업들은 작게 시작할 수밖에 없고, 독점기업들은 시장을 크게 지배한다. 그렇다면 내가 쥔 아이템은 작은 시장을 확실하게 지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경쟁은 없고, 수요는 있는 곳.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는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공급(일반 가정집의 남는 방)을, 확실한 수요(지역 주민처럼 여행하고 싶은 사람들)에 붙여 자신들의 사업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물론 경쟁이 없는 곳에서 시작하라는 말이 독점할 가치가 없는 시장에 뛰어들라는 뜻은 아니다.
자, 이제 두 번째 명제다.
- <제로투원> 중
이미 시장이 형성되어있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기존의 참가자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시장의 핵심을 긁어, 훌륭한 발전을 이룰 수도 있고, 그 여세를 몰아 몇십 몇 년간 독점을 누릴 수도 있다.(이것이야말로 아이폰에 대항하는 갤럭시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 아닌가? 갤럭시는 지금 패스트 팔로워가 아닌 라스트 무버가 되는 것을 고민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명제는 마지막 명제와 이어진다.
- <제로투원> 중
이렇게 한 기업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벗어나면 위대한 기업으로 가는 ‘비전’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구글처럼 여유를 부리며 ‘사악해지지 말자’는 브랜드 전략을 세울 수도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성공적으로 독점을 이뤄낸 기업들의 특권이다.
틸은 친절한 사람이었으므로 위의 세 가지 명제를 합쳐 도출한 그만의 성공 체크리스트를 공개했다.
1. 기술 - 점진적 개선이 아닌 획기적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2. 시기 - 이 사업을 시작하기에 지금이 적기인가?
3. 독점 - 작은 시장에서 큰 점유율을 가지고 시작하는가?
4. 사람 - 제대로 된 팀을 갖고 있는가?
5. 유통 - 제품을 단지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할 방법을 갖고 잇는가?
6. 존속성 - 시장에서의 현재 위치를 향후 10년, 20년간 방어할 수 있는가?
7. 숨겨진 비밀 -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독특한 기회를 포착했는가?
- <제로투원> 중
사실 이것은 비단 회사 창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뭔가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고 싶을 때에도 이 질문들들은 유효하다. 세상이 움직이는 모습은 누구나 본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것을 발견해내진 않는다. 아직 세상에 드러나진 않았으나 그 작동원리를 정확히 담은 단순한 비밀들을 찾아낸다면 그것이 바로 위대한 생각이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아이템이든 프로젝트든 사업이든 시작될 수 있다. 그러므로 내 앞에 앉은 상대가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이라면 우정을 담아, 기꺼이, 위와 같은 질문들을 해줄 필요가 있다. 저기에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처음을 실패하는 것이니까.
한편, 묻는 질문엔 답하지도 못하면서 자꾸 말만 늘어놓으려는 사람에겐 이런 말을 해주자.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아무에게나 얘기하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과 '아무에게나 말하는 것' 사이의 가장 적절한 중도의 길,
그게 바로 회사다.
모든 위대한 기업들은 남들에게는 감추고 있는 숨겨진 비밀을 토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 <제로투원> 중
틸 본인은 수많은 창업으로 큰 성공을 이뤄냈지만 끝까지 냉정하다.
요즘은 오히려 너무 많은 사람이 회사를 차리는 게 문제다. ~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최고의 회사에 합류하면 얼마나 크게 성공할 수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순전히 자기 돈으로 자신의 벤처를 차린다면 지분의 100퍼센트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실패할 경우는 100퍼센트의 실패가 된다. 반면에 구글을 0.01퍼센트만 소유하고 있어도 그 가치는 어마어마하다(글 작성 시점, 3,500만 달러 이상)
- <제로투원> 중
그는 창업에 관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잔뜩 써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할 마음이 없던 나는 이 책을 읽고 오히려 사업을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정도로 틸은 회사의 아름다움에 대해 잘 서술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회사. 그런 위대한 회사의 아름다움에 대해. 경영인으로서도, 개발자로서도, 또 철학자로서도 손색없는 서술을 이뤄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300쪽짜리 프로파간다가 되었다. 그리고 오빠들과의 술자리에서 창업 아이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없는 불알이 오그라드는 내겐 시원한 숨구멍을 터줬다. 그렇지, 이거지, 이렇게 대답하자, 이렇게 묻자, 아니 이 책을 보여주자.
틸과 오빠들에 대한 글은 이렇게 맺어야 할 것다.
밥 딜런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태어나기에 바쁘지 않은 사람은 죽기에 바쁘다." 그의 말이 맞다면 태어나는 것은 한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계속 태어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 그러나 회사의 설립 순간만큼은 정말로 딱 한 번만 일어난다.
미래에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어줄 규칙들을 세울 수 있는 기회는 그 최초의 순간밖에 없다.
- <제로투원> 중
최초의 순간을 영원히 새기고픈 청년들에게, 건투를 빈다.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1. 스타트업을 고민하는 당신
2. 스타트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친구로 둔 운 없는 당신
3. 뭘 먹으면 페이팔 같은 걸 만드는지 알고 싶은 사람
4. 트럼프 이후 미국 경제의 방향을 알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