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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Nov 10. 2017

영조

아이고 영조야 내 새끼야 왜 하필 너를 갖던 날엔 새가 날아들어서는 어쩌면 그렇게 큰 새가 어쩌면 그렇게 하얀 새가 어쩌면 그렇게 탐스러운 날개를 펄럭거려서는 그 고운 머리를 어쩌자고 내 가슴팍에 톡 기대어서는 어쩌자고 나는 그게 그렇게 행복해서는 어쩌자고 그 꿈을 네 태몽이라고 말하고 다녀서는 어쩌면 그렇게 영험한 새가 다 있냐고 네 이름을 하필 영조라고 지어서는 영조야 내 새끼야 모든 게 이 어미의 탓이구나 너를 이렇게 보내는 것이 이 어미의 탓이구나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영조야 내 새끼야 얼마나 숨이 찼느냐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게 아팠느냐 아직 다 안 여문 네 심장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느냐 그 순간에 네가 나를 얼마나 찾았겠느냐  엄마 엄마 살려달라고 네가 나를 얼마나 원망했겠느냐 영조야 그 순간에 어미는 어찌 네 할딱이는 숨소리조차 듣지를 못했느냐 어찌 네가 그렇게 아픈 동안 손 한번 잡아줄 수 없었느냐 어미라는 것이 어찌 흉몽이라도 꾸지 못하였을까 어찌 꿈에서라도 이 어미는 몰랐느냐 니가 이렇게 가버릴 것을
 
니가 처음으로 동네 애들한테 맞고 돌아온 날 테레비에서는 황영조가 은퇴를 한다고 난리였지 달리기도 못하는 네가 이름이 황영조라 아이들이 놀린다고 했을 때 차라리 그래, 이름을 바꿔줄 것을 왜 그 어린 것을 그리 다그쳤을까 사내놈이 맞고 다니냐고 어쩌면 그렇게 화를 냈을까 사내놈이 달리기도 못하느냐고 그 넓은 운동장을 몇바퀴씩 돌게 했을까 그게 저를 위한 거라고 네 아빠와 나는 어쩌면 그렇게 까맣게 아무것도 몰랐을까 네가 끝끝내 달릴 줄을 몰랐으면 오늘의 이런 일이야 있었을까
 
어쩌면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어쩌면 그렇게 퍽퍽한 땅을 뛰었느냐 무릎이며 발이며 어린 것이 얼마나 아팠겠느냐 이 땡볕에 어찌 그랬느냐 가만히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에 오뉴월이면 벌써 반팔부터 꺼내입는 네가 어쩜 엄살이라도 부리지 못하였느냐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어찌 그 넓은 연병장을 몇바퀴씩 뛰었느냐 꾀라도 부려 넘어질 것을 도저히 못하겠다 드러눕기라도 할 것을 어쩌면 그리 미련스럽게 달리고 말았느냐 어미와 아비의 잘못이로구나 꾀부린다고 혼내던 어미의, 달리기를 못한다고 혼내던 어미의, 그저 성실하라고 다그치던 어미의 잘못이로구나
 
애비애미가 무식하고 힘이 없어 네가 이렇게 되었구나 억만금을 줘서라도 네 이름을 뺐어야 하는 것을 어쩌다 뛰다 죽을 운명으로 이름을 지어서 일생에 달리기라고는 인연도 없던 네가 연병장을 돌고 돌다 그렇게 픽 쓰러졌느냐 살려달라고 왜 소리 한번 지르지를 못하였느냐 기를 쓰고 일어났어야지 왜 그렇게 쉽게 가버렸느냐 5분이라도 1분이라도 숨을 붙잡아 병원에라도 가보고 죽을 것을 어쩌면 그렇게 허망하게 놓아버렸느냐 결승전 한번 끊어보지 못하고 너는 어쩌면 그렇게 성질도 급하게 가버렸느냐 이 애미는 어떻게 살라고 새파랗게 어린 것을 혼자 보내놓고 내가 어찌 살라고
 
영조야 내 새끼야 어쩌면 그렇게 편히 눈도 못감고 갔느냐 가려거든 눈이라도 편하게 감고 떠날 것이지 어쩜 그렇게 끝까지 입을 악다물고 눈을 부릅뜨다 가버렸느냐 어쩌면 그리 아프게 갔느냐 빈소를 찾은 네 친구들의 맑은 눈을 볼 때마다 어미는 못나게도 그게 참 밉구나 어찌 너 혼자 가버렸느냐 끝까지 살아남아 모질게도 살아남아 어미아비 빈소도 꾸리고 친구들 초상도 모두모두 치른 후에야 그제야 갈 일이지 무엇이 그리 급해 혼자 떠났느냐 어쩌면 그리 외롭게 가버렸느냐 어쩌면 그렇게 달려가버렸느냐
 
어미가 이름도 잘못 주고 씨도 잘못 물려주어 귀하게 태어난 아이를 이렇게 비천히 떠나보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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