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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Jul 28. 2018

독고의 육개장

"육개장 하나요.”
 
독고는 가게에 들어서는 동시에 주문을 마쳤다. 아침이라기엔 늦고 점심이라기엔 이른 시간, 가게엔 혼자 온 노인들뿐이었다. 노인들은 소주를 시켜놓고 24시간 내내 나오는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노인들 틈으로 자리를 잡으며 무심코 TV를 따라 보다, 독고는 아차 싶어 황급히 턱을 만져보았다. 맨질맨질한 피부가 느껴졌다. 안심이다. 수염 밀었지. 머리도 잘랐고. 성인이 된 이후로 단 한번도 밀어본 적 없던 수염. 한 올의 턱수염을 지켜내기 위해 견뎌냈던 숱한 구타와 쪼인트. 그는 온 기상과 온 마음으로 턱수염에 충성을 다했고, 그리하여 그것은 그의 아이덴티티이자 창조력이 되었다. 고매한 에고이자 프라이드였다. 턱수염이 곧 독고요, 독고가 곧 턱수염이었다. 실로 몇십년만에 외부공기에 직접 닿은 그의 턱이 아기 엉덩이처럼 보드라웠다. 그 보드라움에 쓴웃음이 났다. 내가, 이걸 밀어버릴 줄이야. 그는 냉수를 한컵 따라 들이켰다.
 
“맛있게 드세요.”
 
뚝배기가 식탁에 내려앉으며 묵직한 소리를 냈다. 영업시간 내내 육개장 국물을 끓이는 집이었다. 어느 때라도 육개장이 늦게 나오는 법은 없었다. 오래오래 고아낸 돼지고기 육수에 뭉근히 풀어진 고사리. 질깃질깃한 쇠고기 따위가 아닌 부드럽고 푸짐한 돼지고기살. 벌겋지 않고 진득한 국물. 이게 바로 육개장이다. 독고는 날계란을 국물에 툭 풀고 고추가루를 쳤다. 훌렁 밥덩이를 말았다. 밥을 살살 풀어 한 숟가락 가득 입에 넣자, 독고는 자신의 몸이 고사리처럼 흐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때 좋은 말이, 그래, 이 맛이야! 그는 이름 모를 카피라이터에게 고마워하며 신음을 연발했다. 후우후우, 하, 어흐, 어허, 좋구나.

열흘간의 수감 생활. 귓바퀴로, 겨드랑이로 바퀴벌레가 기어들던 밤들. 더러운 수감장도 수감장이지만 독고를 가장 괴롭게 한 건 끼니였다. 그놈의 끼니는 거르지도 않고 삼시 세끼 꼬박꼬박 나와 정확히 하루 세번 같은 시간 그의 짜증을 치밀게 했다. 최악은 육개장이 나온 날이었다. 계란이 멀뚱히 떠오른 빨간 국물을 보았을 땐, 매운 계란국인가 했다.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보니 고사리가 몇줄기 있었다. 백일동안 닭가슴살만 먹고 다이어트한 닭을 잡은 듯한, 야윈 닭가슴살도 몇가닥 보였다. 아아, 설마, 이것은 육개장인가. 


독고는 한글도 빨리 떼고, 일찍이 연애도 시작했고, 돈도 잘 벌고 세상 대부분의 일을 어렵지 않게 잘해냈는데 어려서부터 밥 굶는 일만큼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 고로 육개장이란 이름이 곤란한 그것을 입에 쳐넣고야 말았다. 이 국물을 입에 넣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눈물이 닭똥 같이 한방울 떨어졌다. 이, 이건 물론 슬퍼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다. 뜨거워서, 뜨거우면 서리는 김 같은 거지. 그저 따뜻한 것만이 미덕인 육개장을 입에 꾸역꾸역 밀어넣으며 독고는 제주식 육개장 한사발을 간절히 떠올렸다. 그를 키운 건 8할이 제주식 육개장이었으니까.

독고는 북제주군에서 글을 가장 잘 쓰는 3학년이었다. 그의 빛나는 첫 작품은, 제목 육개장이었다. 육계장과 김치찌게, 부침게를 파는 할머니가 한글을 배우는 이야기였다. 탁아, 할망도 촘말 육개장 쓸 줄 알언, 이? 독고는 이 글로 상금 오십만원을 받았다. 그 상금이 독고를 길러낸 나머지 2할이었다. 독고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글을 가장 잘 쓰는 65살이었다.

일년에 책 한권 읽을까 말까 하는 대한민국 사람 전부가 그의 얼굴을 알았다. 턱수염과 단발머리가 특히 작가 정신의 상징같은. 독고의 책들에는 턱수염에 흐트러진 단발을 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은 그의 캐리커쳐가 함께 실렸다. 그는 그것이 맘에 들었다. 무릇 작가란 이래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요몇달간 독고의 정신은 얼마나 훼손되었던가.

문단의 색마, 문학계의 수치, 고명을 이용해 제자들을 추행한 파렴치한, 물건들의 비밀 작가 독고영탁, 그의 물건에도 비밀은 없었다, 밤의 황제 작가 독고영탁, 그는 정말 밤의 황제를 꿈꿨는가. 독고는 숱한 모욕을 넘길 수 있었으나, 개그 코너에서 자신의 턱수염과 안경, 단발을 흉내낸 '턱작가'가 나와 다른 남자 연예인의 엉덩이를 앞섶으로 팡팡 쳐댈 때는 참을 수 없이 가슴이 아팠다. 무너지는 억장에 정점을 찍은 것은 경찰에 출두하던 날이었다. 고발을 당하고 출두하던 날, 경찰청에 몰려있던 기자들은 그에게 "작가님? 작가님?" 이라 물었고, 그는 자신을 세번 부인했다. "아니, 아니에요, 아닙니다." 어디서도 닭은 울지 않았다. 기사가 몇줄 쓰였을 뿐이다.
 
 「독고씨는 평소 알려진 모습대로 단발 머리에 안경을 끼고 이날 오전 서울경찰청에 나타났다. 그는 "독고영탁씨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닙니다.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본인임을 부인했다.」

그 후의 일을 떠올리니 가슴에서 뜨끈한 것이 울컥 치밀었다. 이런, 나이 먹어 주책이지. 눈으로도 뭔가 왈칵 치밀어올랐다. 어허, 사장님, 고추 매운 거 쓰시네, 맵다, 매워. 나이 드니 약해져서. 흐릿해지는 눈 앞으로 거울 속에 수염 없는 자신의 얼굴이 떠올랐다. 맨숭한 턱이 벌거벗은 듯 부끄러웠다. 으...으흑흑. 꾹다문 이빨 틈으로도 무엇이 터져나왔다. 독고는 씹을 것도 없는 육개장을, 그 죽같은 한 사발을 꾹꾹 씹었다. 가까스로 목구멍으로 넘겼다. 눈가를 훔치고 한숨을 크게 뱉었다.

하, 거참, 맵다, 매워, 그 놈의 고추 참 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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