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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May 02. 2018

26. 우울증 다루기

<우울할 땐 뇌 과학>, 앨릭스 코브

아픔만이 있고 그 아픔이 오는 곳이 없는 나의 환부는 어디인가…….  

지금 나는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것인가.

- <병신과 머저리>, 이청준


때론 우울해서 우울하다. 큰 사건들만이 문제는 아니다. 사람들은 내 얘기에만 유달리 집중을 못하는 것 같다. 못 갈 확률이 90%는 되었던 휴가가 정말 반려되었다. 한 끗 차이로 퇴근 버스 빈자리를 놓쳤다. 사소한 사건들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곧 우울감 자체가 우울의 원인이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작은 일에도 금방 우울해질까. 긍정적으로, 계획적으로, 바로 지금 몸을 움직이면 될 텐데, 왜 나는 우울해할까. 우울한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아, 우울해.


우리는 우울증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 물론 증상도 알고, 어떤 뇌 영역과 신경화학물질이 관련되어 있는지도 알고, 여러 가지 원인도 안다. ~ 사실 그 어떤 뇌 스캔이나 MRI, 뇌전도로도 우울증을 진단할 수 없다. 우울증은 우리 모두가 똑같이 가진 뇌 회로의 부산물일 뿐이다.  

- <우울할 땐 뇌 과학> 중


사람은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 하도 인간은 동물과 다르다고 배워서, 동물이 아닌 것 같지만 인간은 동물의 한 종류다. 대다수의 동물보다 말이 좀 많고, 유난한 행동을 하는 것이 다를 뿐. 두뇌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뇌에선 온갖 멋진 정신활동이 일어나지만 근본적으로 두뇌는 몸의 한 부분이다. 뇌도 육체다. 그러므로 팔에 멍이 들었을 때 "멍들었네, 병신"이라고 하지 않듯이, 발목을 삐어 달리기를 못하게 됐을 때 "달리기도 못하는 머저리"라고 하지 않듯이, 우울증도 증상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 다친 발목은 무리해 쓰지 않는 것처럼 우울증도 이기려 한들 이길 수 없다. 정형외과에서 깁스를 대주거나 강도 높은 물리치료를 처방하듯 우울증에 빠진 두뇌는 그에 맞게 다뤄야 한다.


자, 나는 지금 우울하다. 상황을 좀 더 낫게 하려면 무엇을 하면 될까.

 

우울증은 아주 안정적인 상태다. 다시 말해 뇌는 계속해서 우울한 상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 <우울할 땐 뇌 과학> 중


우울감은 누구나 겪는다. 그러나 왜 어떤 경우에는, 작은 우울감이 끝도 없는 무기력의 수렁으로 끌어들이는 걸까. 우울증은 질환이지만 환부가 없다. 오히려 맥락에 가깝다. 아주 부정적인 맥락. 시작은 아주 작은 신호다. 폰을 들여다보느라 눈썹을 찡그렸다, 침대에서 나오기 너무 힘들어 운동을 한번 빼먹었다. 뇌는 이 순간 느낀 부정적 감정을 새로운 맥락으로 인식한다. 뇌는 특유의 안정성을 무기로 과거의 실패들을 찾아내고, 그로부터 미래의 실패들을 예측한다. 그러는 동안 는 더욱 심한 무기력과 우울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므로 첫 번째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큰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우울증 상태에서는 ~ 해마가 만드는 새 기억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이다.  ~ 해마는 ~ 맥락 의존적 기억의 중심 역할을 한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과 긴밀히 관련된 일을 더 쉽게 기억하는 것이 바로 맥락 의존적 기억이다. ~ 우울증이 '맥락'이므로 기분이 좋을 때라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행복한 기억들이 갑자기 싹 자취를 감춰버리는 것이다. 반면 삶에서 일어났던 모든 비극은 너무나 쉽게 떠오른다.  


~ 우울증에 걸린 뇌는 불확실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최악을 가정하는 것이다. ~ 과거가 부정적이었으니 미래도 분명히 부정적일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

- <우울할 땐 뇌 과학> 중


뭔가 잘못을 감지하면 뇌는 Alart 경보를 울린다. 그리고 나름대로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믿어 버린다. 바로  Belief 믿음 단계다. 이런 믿음은 대개 무의식 수준에 있어서 본인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이어 그에 맞는 대처 방안을 찾는다. 애인과 연락이 안 될 때 일단 심호흡을 하며 생각하는가? 흥분해서 육두문자를 남기는가? 이런 모든 방식이 마지막 단계  Coping 대처이다. 이것이 바로 불안이 생길 때의 ABC다. 각 단계에서 내가 어떤 생각과 판단을 하는지가, 하강일지 상승일지 두뇌 작용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러니 불안함이 생기기 시작하면 일단 무엇이든 결정을 내려 편도체를 조절하자. 빨래를 시작하는 움직임으로 세로토닌을 활성화시키거나, 고마웠던 일들을 떠올려 도파민 회로를 자극하는 것도 좋다. 겉보기엔 최선도 아니고, 직접적이지도 않은 이 행동들이 우리 뇌가 다시 긍정적인 맥락에 돌입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뇌는 나쁜 습관과 좋은 습관을 구분하지 못한다.

- <우울할 땐 뇌 과학> 중


우리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내 경우엔 최초의 과자 한 개가, 광란의 편의점 파티로 이어지는 습관이 있다. 안 먹으면 안 먹었지, 한번 먹으면 끝을 본다. 소주도 그렇다. 0이든가 1이든가. 둘 중 하나다. 그런 일이 있으면 나는 나의 절제력을 탓하며, 새로운 우울 사이클을 돌렸다. 그러나 뇌는 나쁜 습관과 좋은 습관을 구분하지 못한다. 반복행동은 선조체가 만들고, 충동은 측좌핵이 촉발한다. 문제는 선조체가 전전두피질과 달리 이성적이지 않고, 두 영역 모두 도파민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피하고 싶은 그 습관이 우리의 뇌에서 도파민을 분비하게 하면, 선조체와 측좌핵은 그것을 기억했다가 계속 반복하게 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장난감 가게에서 떼 부리는 아이가 아니다. 사주지도 않을 거면서 장난감 가게에 아이를 데려간 부모가 잘못이다. 나의 잘못은 나를 유혹의 상황에 두었던 것이다. 나를 건강한 맥락 속에 두면 자책할 일이 사라진다. 자책할 일이 없으면 자존감이 유지된다. 이제 우리 뇌가 얼마나 비이성적인지를 알았으니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뇌가 또다시 그 습관에 불을 켜지 않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뇌의 충동성을 억제하기 위해 잠깐 심호흡을 한다든지(길고 느린 호흡으로 스트레스 정도를 낮춰 전전두피질이 활동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과자가 먹고 싶을 때 딱 5번만 참기처럼 너무 쉬워서 안 지킬 수 없는 목표를 세워본다든지(목표를 정하고 결심하는 것만으로도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돼, 뇌의 나머지 부분들이 세계를 인지하는 방식을 바꾼다. 또한 목표를 수립하고 이뤄나가는 동안엔 도파민이 분비된다). 중요한 건, 내 뇌가 어떤 때 흥분하고 어떤 때 충동이 멈추는지 아는 것이다.


뇌가 어떤 종류의 감정 정보에 주파수를 맞추고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 어떤 사람은 부정적인 정보를 훨씬 간단히 처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 나의 뇌는 어떤 유형일까?


다양한 뇌 회로가 서로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사람마다 빠져들기 쉬운 하강 나선이 다르고, 그러므로 기분을 향상시킬 상승 나선도 다름을 의미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자기에게 맞는 상승 나선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일을 돕고자 한다.

- <우울할 땐 뇌 과학> 중


천둥이 치는 이유를 몰랐을 때 사람들은 신에게 빌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을, 원인까지 모르면 두려워진다. 물론 공기 중 전기 방전이 일으키는 굉음인 걸 알아도 혼자 있는 밤 천둥이 치면 무섭다. 그러나 최소한 지구과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천둥번개가 칠 때 내가 어제 어떤 죄를 지었는지 돌아보진 않을 것이다. 우리의 뇌 역시 마찬가지다. 평생에 걸쳐 뇌를 10%도 못 쓴다고 할 때 두뇌는 미스테리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천재의 영역 같다. 하지만 작동원리를 들여다보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R=VD나 시크릿 같은 신비한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야기는 낙천성 회로의 작동 원리로 설명된다.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리면 복측 전방 대상 피질이 활성화되어, 편도체가 감정에 반응하지 않도록 조절한다. 일단, 이것만으로도 두뇌가 부정 편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돕는다. 더욱 강한 긍정 생각을 하면 결국 전전두 영역을 활성화시켜 문제 해결적인 사고를 시도하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꿈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자신이 무엇을 알아차리는지 알아차려라. ~  " 오호, 흥미로운데? 나는 이번 빨간불은 알아차렸는데 아까 파란불을 통과할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네." 한마디로 판단하지 않는 알아차림을 연습하라는 말이다. ~ 상황이 기대한 대로 풀리지 않을 때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단지 그 상황을 알아차리기만 하는 것이다. 감정과 인식은 각자 다른 뇌 영역이 매개하기 때문에 알아차림에는 감정이 필요치 않다. 실수를 감지하면 감정적인 편도체가 자동적으로 가동될 수 있지만, 자신의 반응을 인식하면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어 편도체를 다시 진정시킬 수 있다.

- <우울할 땐 뇌 과학> 중


내가 무엇을 인식하는지 감정의 개입 없이 받아들이는 것. 이 책을 읽고 나는 나를 더 자세히 알게 됐다. 나는 일을 미루고 미루다가 정말 너무 하기 싫을 때 오히려 시작을 해버리는 습관이 있다. 정말 개똥 같은 한 줄이라도 일단 써본다. 미뤄서 괴로운 것보다 쥐오줌 같은 것이라도 쥐어짜서 더 큰 괴로움을 피할 수 있다면, 그 편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 정도로 나는 괴로운 게 싫다. 근데 일단 일을 시작하면 문제 해결을 위해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고, 결과적으로 편도체가 잠잠해져 더 이상 감정이 날뛰지 않게 된다. 나도 모르는 새 내가 우울 하강 나선에 빠지지 않도록 도움을 줬던 것이다. (비록 내게는 항상 쥐오줌만도 못한 결과물들만 남게 되었지만)  


세로토닌계가 제 기능을 못하면 의지력이나 활동 의욕이 부족해진다. 집중하거나 사고하기가 어렵다고 느끼면 노르에피네프린계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 도파민계의 기능에 장애가 생기면 나쁜 습관을 갖게 되고 즐거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 ~ 우울증은 단순히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 도파민이 부족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신경전달물질들의 수치를 높여주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해결책의 일부이기는 하다.

- <우울할 땐 뇌 과학> 중


의지력이 낮아서, 집중력이 없어서, 온갖 이유로 우리는 앞으로도 우울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내 의지력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뇌가 그냥 그렇게 생겨먹었다. 위험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회로들이 바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내가 지금 우울하다면, 그건 내가 최선을 다해 나를 지키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울감을 정확히 다룰 필요가 있다. 우울증을 극복해서, 행복해져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매일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살아가야 하니까, 일상은 좀 더 살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어제보다 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 위해.  


"이 깊은 겨울의 한가운데서, 나는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는 여름이 내 안에 살아있음을 깨달았다."

- <우울할 땐 뇌 과학> 중, 알베르 까뮈


우울증에 걸린 뇌가 발견하지 못하는 여름이 우리 안에 분명히 있다. 그 여름은 우리가 새로운 맥락을 만들기만 하면 다시 따스하게 우릴 비춰줄 것이다.


이 책에 있던 모든 걸 옮기고 싶다. 그렇지만 그것은 명백한 낭비다. 더 좋은 원본이 있으니까. 그냥 이 책을 권하면 되니까. 지금 혹시 우울감을 느낀다면, 이 우울감이 금세 나를 압도할 것 같아 걱정이 된다면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이 책을 천천히 읽어보면 좋겠다. 300페이지를 다 읽을 정도로 힘이 없다면 순서를 건너뛰자. 조금 만만한 계획을 세워보자. 햇볕을 쬐며 어느 페이지든 딱 5장만 읽기. 목표를 세우는 바로 그 순간 도파민이 증가할 테니까. 한 장, 한 장 목표를 향해 가는 동안 전전두피질이 반응할 것이고 그렇게 천천히 새로운 맥락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마지막 한 줄을 잊지 말자.


시도해보기 전에는 자신의 뇌가 어떤 식으로 조율되어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 <우울할 땐 뇌 과학> 중
 


 


 


어쩌면 이 책은 곁에 우울한 친구가 있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를 해주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못 찾아 곤란한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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