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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Jun 16. 2018

27. ‘구글’은 알고 ‘당신’은 모르는 것

<모두 거짓말을 한다>,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이 사람은 스네이프 교수다. 

들고 있는 건 베리타세룸. 운이 좋아 이 약을 구하면, 지구를 지배할 수도 있다. 이것만 있으면 트럼프와 김정은의 속마음 같은 글로벌 중대사는 물론, 우리 회장님이 정말 협력업체 직원과 불륜 중인지도 알아낼 수 있으니까. 베리타세룸은 해리포터에 나오는 진실을 말하는 약이다. 

그리고 오늘 책은 디지털 베리타세룸에 대한 이야기.






사람들은 평생 세 번에 한번 꼴로 거짓말을 합니다.

- <모두 거짓말을 한다> 중

이제는 지겨운 이야기지만, 또 한 번 해보자. 왜 인스타나 페이스북엔 행복하고 멋진 사람들만 있을까. 섹시한 여자들. 어깨는 깡팬데 멘탈은 젠틀한 남자들. 닭살 돋을 만큼 서로에게 헌신적인 커플들. 이렇게 잘 사는 사람들이 또 한 둘이 아닌지라, SNS를 하다 보면 현타가 찾아온다. 이번 생이 틀린 건 나뿐인가. 그런데, 왜, 길거리에 미남미녀들은 넘치지 않고,  뉴스에선 매해 이혼율이 높아질까.  

인간은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그런다. 생후 3개월 된 아이도 관심을 받기 위해 거짓 울음을 울고, 두 돌쯤 되면 언어를 사용해 구체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이 모든 것을 배우지 않고도 해낸다. 우리는 좀처럼 속을 보이지 않는 짐승들이다. 그래서 배운다. 거짓말하면 나쁜 어린이. 거짓말은 나쁜 것이니까, 함부로 의심하지 않는 법도 배운다. 우리는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최대한 믿도록 배운다. 이게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거짓말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약간의 윤색으로 팔로우가 늘고, 거기서 보람을 느낀다면 그건 꽤 건전한 취미생활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최종 선택된’ 포스팅을 보며 우울해지지 않는 거다. 사람들은 사진에만 필터를 입히지 않는다. 글 한 줄, 생각 하나에도 흑백 필터를 입힐지 감성 필터를 입힐지 선택한다. 사람들이 크든 작든 거짓말을 한다는 걸 인정하고, 우리가 같이 살아갈 사람들의 진짜 속내를 안다면 사는 것이 조금 더 편해지지 않을까. 베리타세룸까지는 못 구하더라도 말이다.


빅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원한다고 말하는 것,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고, 정말로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다.
- <모두 거짓말을 한다> 중

이 책은 빅데이터에 대한 책이다. 여기서 사용한 빅데이터는 주로 ‘구글 검색 데이터’다. 그렇다, 방금 내가 네이버 검색창에 무엇을 썼는 지로 이 책을 만든 것이다. 우리는 네이버에서 온갖 정보를 다 얻는다. 그런데 네이버는 우리에게서 돈을 받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돈을 벌지? 그들의 진짜 자산은 유저 그 자체다. 유저가 많아질수록 네이버에는 수많은 데이터가 쌓이고, 데이터가 많아지면 서비스는 더 완벽해진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실 돈보다 더 비싼 것들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취향, 속마음, 맛집 정보, 투표 대상까지! 


사람들은 심리상담가에게도 못할 말을 검색창에서는 한다.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낸 검색어를 써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유인은 충분하고, 네이버 녹색창엔 나를 공격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래서 자신의 페니스가 얼마나 큰가 하는 질문이나, 남편이 섹스를 안 해줘서 고민이라는 얘기를 구글에겐 털어놓는다. 구글과 네이버는 디지털 세대의 베리타세룸인 것이다. (그러니 사실 네이버나 구글이 우리에게 돈을 줘야 한다)

미국 구글 데이터가 바탕이고 보니 한국인들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책을 보면 인간은 너무나 인간다워서 웃기다.

사실 1) 구글에는 대화를 하지 않는 남편에 대한 불만보다 섹스를 원하지 않는 배우자에 대한 불만이 16배 많다.
사실 2) 미혼의 애인들 사이에는 답문이 안 온다는 불만보다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5.5배 많다.

인스타에선 다들 사랑이 넘치는데, 우리 커플만 섹스가 없다고 생각했다면 이제 고민은 NAVER. 

남들도 당신만큼이나 못하고 있다!

질문) 미국의 성생활 조사를 역산해보면, 여성의 답변을 기준으로는 11억 개의 콘돔이, 

남성의 답변을 기준으로는 16억 개의 콘돔이 사용되어야 한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답) 둘 다. 매년 판매되는 콘돔은 6억 개에도 못 미친다.

듀렉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다행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섹스를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까지 보고 뭔가 위로를 얻었다면, 아래 이야기들도 재밌을 것이다.


질문 1) 미국 남성들이 ‘여자 오르가즘 느끼게 하는 법’만큼 검색을 많이 한 것은? 

답) ‘자기 자신에게 오럴할 수 있나요?’  


질문 2) 다음 중 돈을 갚을 확률이 더 높은 사람은?
 보기 1) 하나님께 맹세컨대, 

제 병원 진료만 끝나면 빌려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한 마음 깊이 새겨 이 돈을 꼭 갚을 것을 약속합니다.

 보기 2) 저는 텍사스 대학 졸업 후 10년 간 세후 000만 원가량의 소득을 벌었습니다.
기존 부채가 없는 만큼 가능한 저금리로 빌려주신다면 향후 5개월에 걸쳐 00만원씩 최소 지불하겠습니다.
 

답) 2번. 대출 사이트에서 하나님에 맹세하는 문구를 남긴 쪽의 채무 불이행 확률은 2배 이상이다.

질문 3) 로또에 당첨되면 정말 불행한 말로를 걷게 될까?
 답) 로또에 당첨된 본인은 불행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당첨자의 이웃은 파산 확률이 올라간다.

질문 4) 얼마나 많은 사람이 책을 끝까지 읽을까?
 답) 마이클 카너먼의 ‘생각의 관한 생각’의 경우 7%. 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경우 3%.

이 구절들을 읽다 보면 한 남자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발기한 상태에서 어떻게든 혓바닥을 쭉 빼보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대출 사이트에서 온갖 뜨거운 약속을 해대는 허풍선이도 상상할 수 있다. 옆집 마당에 새로 생긴 벤틀리를 보며, 슈퍼카까진 못돼도 볼보 XC90 정도는 새로 뽑아주는 이웃 주민도 상상할 수 있다. 또한 이 글을 조금 내려보다, 아이 씨발, 개노잼 하며 페이지를 벗어날 사람들도 짐작할 수 있다.

데이터에는 이야기가 있다. 삶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 데이터는 너무도 크고 너무도 풍성해서 아주 가까이 확대해도 어떤 특정한, 대표성이 없는 인간에 국한되지 않으면서 생각을 환기하는 복합적인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 <모두 거짓말을 한다> 중

데이터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데이터 하나하나가 우리의 사는 꼴을 보여준다. 이 책은 19금 이야기가 많아서도 재미있지만, 우리가 최대한 숨기려 했던 부분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더 흥미롭다. 질문에서 답으로 이르는 추론 과정도 신선하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책을 끝까지 읽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행동경제학자들의 경우, 사람들이 주로 인용하는 문장을 분석했다. 주로 인용되는 문장이 책의 앞/뒤 어느 쪽에 분포해있는지 조사해보면 완독률의 모양새가 잡힐 것이다. 과학적 사고를 따라가는 것은 언제나 신선한 자극이다. 그런데 그 끝엔 뜻밖에 중요한 인생 교훈이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믿지 말고 행동하는 것을 믿어라’라는 교훈 말이다.
- <모두 거짓말을 한다> 중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만큼 나이스하지 않다. SNS 닭살커플로 유명한 남자는 여자 친구와 떨어지면, 거유가 나오는 포르노를 검색해 볼지 모른다. 평범하디 평범한 나의 남자 친구처럼. 진보 정치인이 공개 토론을 마친 뒤 “깜둥이 개그”를 검색해보며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다. 빅데이터를 들여다보면 - 특히 구글 검색어처럼 조금의 자기 검열도 없는 -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그 윤곽을 알게 된다. 우리가 정말은 어떤 지, 요란한 수식어를 걷어낸 날 것의 우리가 보인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파악하는 것은 왜 그렇게 중요할까? 개개인일 때 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고 애쓴다. MBTI 검사, DISC 검사, 사주팔자 등.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 내게 더 맞는 일, 피해야 할 일 등을 알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개개인이 모인 ‘우리들’에 대해서는 종종 함정에 빠진다. 채무자의 확신에 찬 약속을 믿고, 사회에서 인종 차별은 거의 사라졌다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신을 맹세하는 사람에게 돈을 꿔주고, 절절한 사랑 노래를 하는 남자에게 마음을 준다. 명문대에 가지 못하면 인생이 망한 것처럼 굴기도 한다. 내가 지지하지 않는 후보가 대통령이 돼서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인간 세상을 정확히 알면 이런 일들을 피할 수 있다. 빅데이터를 통해 우리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불행을 그저 피하는 것뿐 아니라 더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알게 된 건, 그저 사람들은 모두 비슷하게 찌질하다는 자조가 아니다. 그간 인류가 숨겨온 은밀한 본능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위대한 일이 시작될 수도 있다. 스타트업의 황제, 피터 틸의 이야기를 다시 옮겨본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것'과 '아무에게나 말하는 것' 사이의 가장 적절한 중도의 길, 그게 바로 회사다.
모든 위대한 기업은 남들에게는 감추고 있는 비밀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 <제로 투 원> , 피터 틸

구글이 안다면 우리도 알 필요가 있다. 똑똑히 보자.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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