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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May 07. 2018

ㄴr는 ㅈr쥬 ㅍ1를 흘린ㄷr..☆

면생리대 1년 차가 본 <피의 연대기>

“혹시, 리대 있어?”

여자들은 한 번에 알아듣는 말. 누구는 가끔, 누구는 자주. 시간차는 있어도 우리는 모두 피 흘리는 사람들이니까 그 심정 안다. 아, 지금 곤란하겠다. 생리대 없어서. 그래서 없을 줄 뻔히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가방을 한번 뒤져본다. 나는 이럴 때마다 핀잔을 듣곤 했다. 아! 나 생리대 있다! 기쁨에 찬 큰 소리를 내는 바람에. 야, 좀 작게 말해. 근데 왜 숨겨야 되지? 편의점 검정 봉투? 다 하는 건데, 왜 숨겨. 내가 잘못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생리를 숨기는 건 역시 그게 임신 능력을 뜻하기 때문일까. 지금이 생리라면 배란은 대략 언제겠구나, 유추할 수 있어서? 여성들이 자신의 임신 능력을 함부로 보여주는 건 조신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이구, 됐다 그러세요. 생리도 귀찮은데 숨길 에너지 없어요. 그런데, 생리가 굳이 숨길 게 아니라면서도 난 어쩜 이리 몰랐을까. 18년간 생리해온 프로 생리어이면서. 어쩌면 변비보다도, 남자의 발기보다도 생리에 대해 몰랐던 거 아닐까.




나는 왼쪽 난소가 1/3밖에 없다. 대학생 때부터 왼쪽 하복부에 이물감이 있었는데, 아프지도 않고, 나의 생리는 칼같이 주기가 딱 들어맞았고 생리통도 없었던 터라, 배에 살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고만 생각했다. 취직 후 처음 시도한 질 초음파에서 무려 7*6cm 태아 머리통만 한 혹이 발견됐다. 위치가 하필 난소 옆이고, 모양이나 음영이 안 좋다고 해서 겁을 잔뜩 먹고 대학병원에 갔다. 수술을 받았고 (이 정도의 복강경 수술은 놀랍도록 회복이 빠르다! 거의 아프지 않다!) 혹과 함께 난소를 뗐다. 결과는 난소 낭종. 원인은 아직 모른다고 했다. 생리혈이 역류하여 고이는 것을 한 원인으로 본다고.


초음파의 X자 쳐진 검정 동그라미가 나의 혹



아아, 그렇다면 생리를 하는 한, 이 병은 계속 나를 위협하겠구나. 딱히 애 낳을 생각도 없건만, 젠장.

왜 생리혈은 역류했을까. 그것도 모른다. 난 생리할 땐 절대 섹스하지 않으니 펌핑 과정에서 역류됐을 리는 없다. 술이 문제일까. 아니 아무리 술이 만병의 근원이라지만 설마 그럴 리가. 가장 큰 원인은 생리대 같았다. 생리대에 쓰는 화학 응고제. 피를 빨리 굳게 하는 게 항상 질구에 닿아있으니 영향을 안 받았을 리 없다. 18년간! 그래서 생리대의 대안을 찾았다.

내가 아는 대안은 탐폰, 면생리대, 최근 이슈되었던 생리컵 정도. 생리컵은 넣는 것도 넣는 건데, 몸 안에 피가 고여있는 상태인 게 무서워서 탈락. 탐폰을 써봤다. 질정도 넣어봤으니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뿔싸, 내비게이터부터 무서웠다. 이걸 주사처럼 쏙 밀어 넣는다고? 아픈 거 아닌가. 그래도 기왕에 낸 용기니 마저 내봤다. 아니 그런데 솜뭉치가 질 안쪽에 안착되자,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어중간한데 넣어서 그런 걸까, 일단 뺐다. 쏙 빠지는 느낌은 재밌었다. 다시 더 깊이 넣어봤다. 새 솜뭉치를 또 밀어 넣자, 어찔어찔하며 속이 울렁거렸다. 곧 진정이 되자 익숙해졌다. 걸어봤다. 걸리적거리지 않는다. 뛰어도 쓸리지 않는다. 물에 들어가도 새지 않는다! 서너 시간 신세계를 맛보고 다시 새 탐폰으로 갈아 끼우는데, 아아 또 현기증과 울렁거림. 나는 탐폰에 약한 쇼크 반응이 있구나.


탐폰을 처음 넣는 사람들에게. 이 자세야말로 궁극의 자세다. 한쪽 다리를 올리면 다소 긴장한 상태에서도 잘 넣을 수 있다.      그림은 <피의 연대기> 중에서


그렇게 나는 면생리대에 안착했다. 저번 달 생리를 끝으로 면생리대 쓴 지 1주년이 되었다.   




“생리대를 그냥 버리는 행위다시 쓰기 위해 깨끗이 하는 건 되게 다른 경험이죠”

- <피의 연대기> 중, 은실의 이야기


면생리대는 일회용 생리대와 모든 감각을 달리 한다. 일회용 생리대는 결국 쓰레기지만, 면생리대는 두고두고 입을 내의 같다. 그래서 소중히 다뤄야 한다. 보는 감각도 다르다. 겉면의 디자인이 제각각 다르고, 사이즈도 더 다양하다. 촉감도 다르다. 보송보송한 느낌. 그래서 겁이 났다. 직장인인데 면생리대 쓸 수 있을까. 나처럼 야근도 많은 직장인이. 나는 툭하면 생리가 새는 덜렁이인데, 서른 살을 넘긴 지금도 그렇다. 안 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리를 안 해본 인류의 절반은 절대 모를 거다. 나는 뭐 양이 많고 싶어 많은가. 자궁 내벽이 다른 사람보다 좀 더 두꺼운가 본데 그게 죄는 아니잖아. 면생리대 첫날은 그래서 너무 떨렸다. 아니 그런데!


왜… 계속 보송보송해? 물론 축축하다. 안 축축할 수가 없다. 생리는 피가 나오는 거니까. 그런데 일회용 생리대는 특유의 비닐 느낌 때문에 습해진다. 조금만 늦게 갈아도 바로 발진이 온다. 심지어는 제대로 갈아줘도 생리 끝날 때쯤 되면 밑이 퉁퉁 부으면서 따갑고 간지럽다. 어린애들 기저귀 발진처럼. 몇 번이나 브랜드를 바꿔봤지만 마찬가지다. 그냥 일회용의 한계 같다. 그런데 면생리대는 피는 날지언정 부숭부숭하다. 1년을 쓰면서 저런 문제를 가져본 적이 없다!

밤마다 생리대 애벌빨래는 물론… *같다. 시발, 개*같네,  피곤해 뒤지겠네, 하면서 피를 쥐어짜 내는 건 정말 괴롭다. 직장에서만 하루에 서너 개는 쓰니까, 매일 밤 4~5장은 빨아야 한다. 당장 침대에 몸을 던져도 시원찮을 판에, 저놈의 것을 오늘 빨지 않으면 내일은 더 괴로워진다.


*1년 된 생리대 중 가장 자국이 많이 남은 두 친구. 왼쪽은 거의 처음 그대로인데, 오른쪽은 24시간을 넘겨 빨아서 어쩔 수 없이 자국이 좀 남았다. 나중에 과산화수소랑 베이킹소다로 팔팔 끓이면 지워진다고 한다.

*세탁 작업을 할만하게 만드는 팁. EM세제를 쓰면 핏자국이 아주 쉽게 잘 지워진다. 그리고 최초 설명서에 찬물로 핏물을 빼라고 돼있는데, 뜨거운 물이 훨씬 수월하다. 고온이라고 피가 굳고 그러진 않았다. 흐르는 물에서 피를 헹굴 땐 뜨거운 물로 하고 찬 물에 담가놓으면 된다. 생리대 개수를 고를 땐 생리 기간 중에 빨아서 돌려쓴다는 생각은 하지 말자. 그냥 한 달에 필요한 총개수를 선택하자. 내 경우엔 17장이면 생리 한번 끝난다. 본인의 양, 기간마다 다를 것이다. 이렇게 한달분을 구입하면, 생리 끝날 때까지 핏물만 빼서 물통에 담가놨다가 마지막 날 한 번에 세탁기 돌리면 된다. 속옷 빨래 모드로 돌리면 꿀이다. 그렇게 생리기간에도 건강하고 보송보송한 가랑이를 얻을 수 있다! 회사에서 생리대를 갈면, 비닐 팩에 담아오는데 냄새 전혀 안 난다. 그리고 24시간 안으로만 물에 담가놓으면 핏물은 잘 빠진다.


피로 흥건한 세면대를 보면 기분이 묘하다. 살인자의 기분도 상상된다. 피가 이렇게 많은데 의외로 비린내는 거의 없구나. 아주 선명한 빨간 피. 가끔은 내벽 조직 같은 것도 본다. 일회용 생리대를 쓸 때에는 굴 낳는 느낌만 들었을 뿐인데, 내 생리대를 빨면서는 조직의 생김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생긴 애였구나, 건강 상태가 바로바로 체크되는 느낌이다. 물론 조직을 봤다는 건 몸상태가 그리 좋지 않았다는 뜻인데, 최근 2개월간은 조직을 보는 횟수도 확실히 줄었다.


또 신기한 건, 생리 내용의 변화다. 일회용 생리대를 쓰던 때에는 5일 내내 계속해서 피가 나왔다. 면생리대 1년 차인 지금은 이삼 일째까지 콸콸콸 쏟아지다가, 4일째 아침부터는 뚝 끊긴다. 물론 간간히 갈색 냉은 나와도, 훨씬 깔끔해졌다. 화학 응고제에서 내 자궁이 드디어 원래 상태를 회복하고 있는 거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면생리대를 쓴 이후로 질염도 똑 떨어졌다. 주기적으로 칸디다성 질염을 앓았는데, 지난 1년간은 이 문제로 산부인과에 간 적이 없네! 지금 알았다.


매달 생리대 쓰레기가 생기지 않으니, 물값은 좀 쓰고 쓰레기봉투값은 좀 벌었다. 난소부터 지구까지, 미시세계부터 거시 세계까지, 나는 환경 지킴이가 되었구나. 멘탈에 긍정성이 +1 생겼다. 생리가 끝나고 잘 마른 생리대를 갤 때도 기분이 좋다. 이렇게 또 한 사이클 끝났군. 아, 친구들의 생리대 SOS엔 속수무책이다. 지금 당장 생리대 1개가 급한 주변의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는 건 딱 하나 슬픈 점이다.   



"다양한 생리도구를 탐험해볼 수 있다면 내 몸에 더 소중하게 접근하는 길을 알게 되겠죠"

- <피의 연대기> 중, 정연의 이야기


<피의 연대기> 중에서, 다양한 생리도구들


나에겐 면생리대가 찰떡이지만 누군가에겐 생리컵이 더 좋을 수 있다. 영화를 보니 별난 게 다 있었다. 해면 탐폰도, 스펀지 탐폰도, 울 탐폰도 있고, 그중 몇 개는 나라면 절대 시도해보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건 어떤 방식이 더 우월하고 좋냐가 아니다. 왜, 우리 여자들이, 이런 선택지를 몰랐었단 말인가다. 나는 심지어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는데도 생리 컵이라는 건 작년에서야 처음 들었다. 그게 1930년대에 이미 나왔었다는 걸, 세계대전에 라텍스를 죄다 쓰느라 생산이 중단됐었다는 건 이 영화를 보고서야 알았다. 그때 남자 정치인들이 전쟁 안 했으면, 우리가 생리하는 방식이 완전 달랐을 수도 있었다는 것도.


기술과 ‘가정’ 수업도 듣고, 출산에 대해서도 배우고, 성교육도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아니 콘돔 끼우는 건 그렇게 가르쳐줬으면서 왜 생리에 대해서는 공부를 안 시켰을까. 섹스는 선택이지만 생리는 선택이 아닌데. 어떤 방식이 있는지, 뭐가 더 각자에게 맞을지, 어떤 역사가 있는지 왜 안 가르쳐줬을까. 우린 왜 고작, 마트에서 생리대가 왜 이리 비싼지, 어디 제품이 좀 더 나은지 정도밖에 말할 수가 없었을까! 분하다.


정말로 이 세상은 남자들의 것이었구나. 여자는 태어나 살아가는 이상 생리를 중단할 수 없다. 난자를 다 쓰기 전까지는, 임신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만둘 수 없다. 오늘부터 생리 그만해야지! 해서 안 할 수 있는 거라면 내가 했다, 그거. 호흡을 참을 수 없듯 생리는 참아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 생리대 비과세는 왜 이렇게 최근에야 된 걸까. 무상급식 이야기는 나와도, 왜 무상 생리대 얘기는 역차별일까. 학교 화장실에 휴지는 진작부터 무상제공인데, 왜 초등학교에서 생리대 제공이 안될까. 생리가 정말 개인의 문제일까. 이 하나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지켜지거나 무너지거나 할 수 있는데. 정말 기본적인 조건인데. 남자들에겐 자기 일이 아니었구나.




빚을 졌다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알려준다. 가만히 있는 나에게도, 그 혜택을 안겨준다. 그들이 고민하고 싸우는 것으로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나에게도 투표할 기회를 만들어준 사람들이 그랬고, <피의 연대기>를 파고들어, 세상과 나눠준 사람들이 그렇다. 이 다큐멘터리가 더 어린 친구들에게 보여졌으면 좋겠다. 남자애고 여자애고 다 보고 자랐으면 좋겠다. 누가 여자아이를 낳게 될지 모르잖아. 새로 태어날 여자애들은 이런 걸 다 알고, 생리대를 쓸지 해면을 쓸지 골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누가, 그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든 신발 깔창을 생리대로 쓰거나, 수건을 깔고 누워 생리가 그치기만을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가 됐든 생리는 귀찮지만, 최소한 그 방식은 우리가 더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선택의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는 여러분이 서로의 역할 모델이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함께 더, 더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 <어른이 되어 더 큰 혼란이 시작되었다>, 이다혜


곧 지방선거다. 내겐 새로운 기준이 하나 생겼다. 누가 어린 친구들의 생리 기본권에 대해 고민하는가. 나는 그런 말이 한 줄이라도 있는 후보를 골라야겠다. 피 흘리는 사람들이 함께 더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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