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가 진입할 수 없는 곳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막 들어서는 찰나였다. 운전 5일 차의 운전을 긴장 속에 바라보던 보조석의 소방관이 물었다. 그는 나의 운전 선생님이자 8년 차 남자 친구인데, 구급차를 모는 구급 기관이기도 했다.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구급차가 들어올 수 있게, 없게?”
아니, 이 당연하지만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은 뭐란 말인가. “당연히 들어와야지!”라고 대답하려다, 출제자의 의도를 떠올렸다.
“헐, 설마 못 들어와?”
“못 들어갑니다.”
“헐!”
“지하 주차장 높이가 2.3m인데, 구급차는 그거보다 커서 못 들어가.”
정말 헐이다.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가 대세가 된 게 벌써 얼마인데, 지하 주차장에 구급차가 들어가지 못한다니.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친구네 아파트에 놀러 갔다가, 2시간을 헤맨 적도 있다. 물론 술에 취한 상태였지만, 126동, 120동… 배치는 너무 뜬금없었고, 중간중간 공원이 껴있어 단지는 너무 컸다. 공원형 아파트를 만드느라 요새 아파트들은 지상에서 길 찾기가 좀 복잡한 게 아니다. 그래도 지하 주차장은 좀 나은 게, 벽마다 어느 동을 향하는지 사인이 크게 크게 되어있다. 또 지하 주차장은 일단 동만 찾고 나면, 차에 내려 바로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어 접근성도 좋다. 그런데, 구급차는 지하 주차장에 못 들어온다. 그럼, 우리 아파트에 처음 온 구급차가 지상에서 헤매는 1분 1초는 누가 감당할 몫일까.
우리나라 구급차들은 보통 그랜드 스타렉스를 특장한다. 관서에 따라 다르지만 바퀴부터 차 지붕까지 구급차의 높이는 대개 2.5m ~ 3m 정도. 신장이 큰 환자들을 위한 특수 대형 구급차는, 주로 현대 솔라티나 벤츠 스프린터인데 스타렉스 구급차보다 70cm가량 더 높다. 그런데 우리의 법은 다중시설 및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최소 높이를 2.3m로 허용하고 있다. 무려 40년 전의 규정에 따른 것이다.
아파트만 그런 게 아니다. 대부분의 복합 쇼핑몰도 마찬가지다. 신축 쇼핑몰들도 지하 주차장은 규정에 따라 최소 높이를 2.3m로 맞춘다. 만약 스타필드나 코엑스, 이케아 같은 대형 쇼핑몰 지하 주차장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한다면? 주차하고 내리던 누군가에게 심정지가 온다면? 실제로도 왕왕 일어나는 일이다. 소방관들은 바람 같이 출동을 해놓고도, 지하 주차장의 환자에게 바로 접근을 하지 못해 골든 타임을 놓친다. 건물 관리자들도 이런 상황에 무지한 건 마찬가지다. 지하 주차장 높이가 갖는 문제를 잘 모르다 보니, 관리자의 안내에 따라 지하 주차장으로 출동을 했다가 구급차가 파손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구급차가 가기 힘든 곳은 어디 되게 멀리 있을 줄 알았다. 일방통행 시골길이나 좁은 골목 속 공장처럼. 그런데 우리 집이 바로 구급차가 도착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시내 중심에 있는 새 아파트가, 내가 매일 다니는 바로 이 곳이, 구급차의 접근이 힘든 장소였다. 우리 집 지하 주차장은 나를 구할 수 없었다.
“너랑 나랑 요새 운전 연습한다고 여기저기 다녔잖아.”
“응.”
“그중에 구급차가 들어갈 수 있었던 곳 몇 개나 있었을 것 같아?”
“어… 하나…?”
“없어. 하나도 없었어.”
구급 기관의 눈엔 보였나 보다. 여기가 도착할 수 있는 곳인지, 환자를 빨리 구할 수 있는 곳인지가. 그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내가 보는 것과 전혀 달랐다. 나는 그냥 살기 괜찮은 아파트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거기서 안전을 보고 있었다. 이토록 일상적인 곳에, 이런 위험이 있었다니.
그의 말을 듣고 찾아보니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김영호 의원이 “주택법” 일부 개정안을 지난 6월 19일에 발의했었다. 그의 주장대로 주차장 높이를 40cm 올리기만 해도, 더 많은 구급차들이 지나다닐 수 있다. (탑차 택배 기사님들도 함께 다닐 수 있다!) 그렇게 올라가는 건, 비단 주차장 높이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안전도 함께 높아질 거다. 언제 어디서든 쓰러질 수 있는 한 사람으로서 이 개정안이 꼭 시행되길, 바란다.
커버사진은 아래의 문어님댁 블로그에서 허락을 받고 사용하였습니다
글은 이런 기사들을 함께 보고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