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과 설렘

by 반똥가리

어느 날, 파업. M* 방송사 파업. 나는 프리랜서 방송 작가다. 프리랜서에겐 집에서 돈을 써대거나 여행을 하면서 돈을 써대거나 둘 중의 한 가지를 할 수 있는 선택의 기간이다. 프리 한 듯 프리 하지 않다. 일도 마음대로 쉬면 밥줄이 끊어지기 십상이라 '뜻밖의 휴가'를 늘 기다린다. '파업' 시기가 그랬다. 어설프게 방송 작가로 살아가는 이의 아프리카 여행은 그렇게 '갑자기' 시작됐고, 언제 또 갑자기 파업이 해제될지 모르기 때문에 눈대중으로 안전빵 기간을 추측한 후 '살짝이' 구경하고 오기로 했다.


지나치게 모르는 땅. 오돌오돌 무서움도 있었지만 "에라, 모르겠다'가 내게 힘을 주었다.

그렇게 갑자기 살짝이 아프리카 여행은 1달과 200만 원이란 두 숫자로만 계획을 세우고 저질렀다.

평생에 꼭 또다시 다녀오고 싶은 여행지 - 아프리카로.


< 아프리카 여행 준비>
------------ 당시의 메모지에 적힌 그대로는 아래와 같다.
챙기지 못하고 리스트에 이름만 있는 것들이 더 많다. 갑자기 여행의 부작용

신*환전 880불 994,400

우*환전 880불 996,142


마트 - 라면, 하리보, 신라면, 건빵, 휴지 ---> (마트 대신 코스트코를 다녀와서 음식으로만 한 박스를 꾸렸다)

약국 - 모기 뿌리는 약, 바르는 약, 팔찌 약 + 솔루펜 2 +베로신 G 2 + 파스+ 모기향+라이터

출력 - 여행자보험증명서 출력, 레터 출력, 신청서 출력, 여권사본 챙기기

화분 맡기기

....

노트 볼펜 비상연락처 메모 (항공, 사고 시)

명함 여권사본 레터 출력 국제면허증 접종증명서

침낭 랜턴 배터리 선글라스 모자 머리핀 안약

아프리카 관련 책 (각 나라 환율 메모)

카메라

여행자보험

보건소-말라리아 약 처방


직업적 특성상, 아프리카 여행에 필요한 필수품을 불꽃이 튀도록 검색해서 준비했는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것이 있었다. 망원경!!! 아프리카 사파리에서 동물의 왕국을 제대로 보려면 망*원*경* 꼭 가져가야 한다.

망원경이 없어서 땅을 치고 싶었던 순간들은... 절레절레.. 다시 생각해도 아쉬움에 억장이 무너지고 한숨이 나온다. 밤눈마저 어두운 나인데... 덕분에 저 멀리 오매불망 나타난 '사자'는 '노란 강낭콩' 같더라. 아프리카를 여행하시려면 꼭! 망원경을 챙깁시다.

아프리카 여행 일정


<출국>
9.9 울산출발, 홍콩 도착, 홍콩 투어-요하네스버그
9.9-9.10 요하네스버그-케이프타운-숙소(5박 6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9.11 케이프타운 - 나미비아 대사관, 사전 비자 신청, 장보기, 환전, 휴식
9.12 항구 테이블마운틴, 전망대, 야경
9.13 볼더 비치, 와인농장
9.14 비자발급, 환전, 다운타운
9.15 캠핑 장보기, 캠핑장비 구입

<나미비아>
9.16-9.17 나미비아 국경 캠핑장 (1박)
9.17-9.19 세스림 캠핑장 (2박)
9.19-9.20 스바코프문트 백패커스 (1박)
9.20-9.21 스피치 코프 사막 캠핑장 (1박)
9.21-9.23 에토샤 국립공원

<보츠와나>
9.23-9.24 중간 어디쯤 (1,000km 이동 구간,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
9.24-9.26 보츠와나 마운 (허름한 천막 캠핑 1박, 습지 캠핑장 1박)
9.26-9.28 보츠와나 카사네 초베 캠핑장 (2박)

<짐바브웨 - 빅토리아폴>
9.28-10.1 짐바브웨 백패커스 (3박)

<귀국>
10.1-10.2 요하네스버스 (1박)
10.2 요하네스버스-홍콩 - 장국영 코스 투어
10-2-10.3 한국 도착


아프리카는 '하쿠나 마타타' 우리는 '인생 뭐 있나?"
다르지만 통한다.


'하쿠나 마타타'의 아프리카인은 '인생 뭐 있나?'를 좋아하는 한국인과 참 많이 닮은 느낌이었다.

그들의 느낌과 이야기.. 잘 전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하쿠나 마타타~"

"인생 뭐 있나"의 대한민국인답게 기억을 전하고 싶다.


떠남의 기억을 되짚어 설렘이 다시 찾아오기 시작하는 나의 아프리카 이야기는 캠핑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인들과 생일이면 글램핑 여행을 가고 한다. 봄과 가을에 가볍게 몸만 가는 글램핑은 호캉스나 펜션 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즐거움이 있다. 한적함과 일상을 벗어나는 기분을 만끽하는 데는 캠핑이 최고가 아닐까.


하물며, 캠핑하러 아프리카는 간다면 두 말이 필요 없다. 아프리카에서 캠핑을 한다고? 말도 안 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말이 된다. 아프리카는 캠핑의 나라다. 정글과 사파리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해서 잘 정비를 해뒀다.

이름도 모르는 낯선 아프리카의 어떤 곳을 찾아서 인디아나 존스처럼 다니는 것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안전한 캠핑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 잘 준비하고 정보를 얻은 후에 떠나면 된다. 사람들도 대체로 친절했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의 첫인상으로 무뚝뚝함을 꼽는다. 하지만 알고 나면 정이 넘친다고 말을 한다. 아프리카인들도 그랬다. 먼저 웃지는 않는다. 하지만 속내를 보여주면 바로 빗장을 풀고 잘 대해주는 이들이 많았다. 벤치를 빌려준 아주머니가 그랬고, 수건으로 착각하고 행주를 사용하는 나를 보고 웃어주던 할머니가 그랬고, 한국 이름은 철자가 어려워 내가 직접 기록부에 이름을 쓰는 선뜻 허락해주면서 호기심을 보여주던 카운터 언니가 그랬다. 오히려 경계심 가득했던 못난 모습을 보여주고 와서 미안할 따름이다.


여행은 이래서 좋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볼 수 있게 한다. 민낯으로 낯선 곳에 서게 하고 배우게 한다.

촬영이나 여행으로 다녀온 국가가 정말 많다. 에베레스트 원정을 나선 한국 등반대와 네팔 히말라야도 가봤고 뉴질랜드를 자유 여행으로 돌아다니기도 했다. 몽골과 러시아로 촬영 겸 여행을 다녀온 기억도 각별하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캠핑과 장거리 드라이브가 내겐 최고의 여행이었다.

머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페셜했던 아프리카.

다음엔 좀 더 나은 여행자로 아프리카에 다시 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오길 바라면서 "캠핑하러 아프리카로 가실게요"를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