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브런치가 있었다면 여행을 다녀온 직후, 그때 그 기억을 고스란히 여행기록으로 남겼을까?
지금 정리하려니 쉽지 않다.
앨범에 사진을 꽂아두던 시절이 지나고 디카 전성시대를 거쳐 첨단 스마트폰의 대활약이 벌어지는 이 시대에 나는 '사진 보관 방법으로 인한 공황 상태'를 겪고 있다. 어떻게 보관하지? 다 뽑아야 하나? 드라이브에 넣어두고 클라우드에 업로드해두고. 그러다 보니 뿔뿔이 흩어져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찾는 것부터 다운로드하고 다시 폴더를 만들고 묶어야 하는 것이 일이 되었다. 끄응~.
어느 날인가 초등학생인 제자가 핸드폰 속 사진을 보고 "선생님~ 사진이 왜 똑같은 게 100장이에요?"라고 물은 기억이 난다. 여행을 다녀온 후 동행자들이 보내준 사진을 일단 모두 내려받기하는 나의 습관에 대한 일침.
아프리카에서 찍은 사진들도 폴더에 고스란히 있지 못하고 흩어져있음을 알게 됐다. 어딘가에 몽땅 넣어둔 것 같은데. 뇌에 부하가 오고 있다. 클라우드를 싹 다 뒤져야 할 것 같다. 살아남아 있을까?
��용을 타고 홍콩으로
한국에서 홍콩까지는 용(드*곤 항공)을 탔다. 경유지를 두바이와 홍콩 중 어디로 할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홍콩은 사실 따로 여행하러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경유지로 삼아 둘러보기로 했다. 아프리카 여행의 동반자였던 후배가 과거에 홍콩을 저 홀로 자유 여행했던 경험이 있어 가이드를 자처했다. 칼칼한 목소리의 그녀가 "언니, 나만 믿어요."라며 홍콩을 떠맡았다. 다음엔 두바이로.
홍콩 국제공항은 공항마저 홍콩다웠다. 북적임과 화려함의 공존으로 기억되는 누아르 풍의 홍콩스러움이 공항에서 느껴졌던 것은 내 마음과 추억과 기억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홍콩에서 사용할 옥토 버스 카드를 사야 했다. 가지고 있는 게 달러뿐이라 우선 환전을 하러 은행을 찾았다. 따듯한 커피 한 잔에 美친 듯 갈증을 느끼고 있던 차인데 은행에 들어서자마자 프리 커피 코너가 한눈에 쏙 들어왔다. 아프리카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돈을 펑펑 쓸 수도 없거니와 홍콩 달러가 없어서 호카호커 (카페를 카페라 말하고 커피를 커피라 말하기)를 못하는 것이 홍길동 신세나 다름없었는데. 하느님이 보우하셨다.
아프리카 여행 일정은 한 달.
아프리카를 오가는 왕복 편으로 홍콩은 두 번, 경유할 때마다 여행하기로 했다.
1차 여행은 거리와 음식, 2차는 장국영 코스. 우리끼리 명명한 테마가 그랬다.
홍콩의 낮 거리
대한민국의 교통 시스템에 대한 국뽕 유튜브가 넘쳐나고 있다. 홍콩의 교통 시설도 이용하기에 하등 불편함이 없었다. 공항 앞에서 버스를 타고 '옥토버스카드' 하나면 모두가 통한다. 충전 금액으로 지하철, 버스, 편의점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자유 여행을 하기 전, 그 나라의 교통 시스템을 이해하고 가는 것은 기본적인 자세라 생각한다.
홍콩의 낮 거리는 그 자체로 "홍콩"의 모든 것이었다. 사람과 건물, 거리의 색채, 스카이 라인, 계단의 모양새, 골목의 비 오고 습하던 날씨마저 누아르 영화로 보았던 정취가 물씬 담겨있었다. 한 번도 와본 적이 없는 곳인데 추억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여행지가 홍콩이었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상을 받는, 작금의 한국 영화 전성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들은 잘 모를 것 같다.
홍콩 영화 전성시대의 추억. 홍콩은 그 추억으로 30대~50대 만의 감성 세포가 살아나게 하는 곳이다.
대학 시절, 롱 바바리를 입고 긴 옷자락을 펄럭이며 담배를 입에 물고 다니던 동기들이 생각났다.
주윤발을 흠모하던 싱거운 동기 녀석들. 지금은 어엿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생활 전선에서 장렬하게 싸우고 있는 그들의 젊은 시절에 대한 기억이 새삼스러웠다.
언젠가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면 같이 한 번 다니러 오면 좋을 곳인데...
홍콩에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라보고 싶다.
음식 사진이 분명 더 있는데 뿔뿔이 흩어져서 찾지 못하고 이것만 겨우 건졌다.
홍콩 맛집 '구기 우남'.
습하고 더운 날씨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줄줄이 있었다. 잠시 기다리며 줄을 선 위치에 이쁜 가게가 있어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천천히 기다렸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쇠고기 안심 카레에 튀긴 면'과 '쇠고기 안심 납작면'이다.
면이 퍼지지 않고 꼬들꼬들하고 국물이 꽤나 맛있었다. 습한 날씨에 땀 줄줄 흘린 각오를 하고 먹어야 했지만 입에 붙는 감칠맛도 있었던 듯하다. 글을 쓰는 중에도 입에 침이 고이는 걸 보면 한국 음식 애호가인 나에게도 꽤 잘 맞았다. 음료는 늘 시원한 듯 그렇지 않고 많이 달았던 것 같다. 날씨를 고려하고 맛을 고려하면 홍콩에서의 음료는 생수를 추천하고 싶다. 커피 역시 좀 연한 편이었다.
홍콩 '미드레벨 엘리베이터'
더위에 약한 나는 복날 혀를 길게 빼고서 그늘을 찾는 누렁이의 심정에 격하게 공감하며 토스트 맛집 '란퐁유엔'으로 갔다. 먹는 걸 멈출 수는 없었다. 언제 올 지 모른다는 여행자들이 흔히 하는 말. 그 말엔 필사의 각오가 담겨있다. 각오의 실행 끝에 먹게 된 밀크 티와 샌드위치 맛은 정말이지 기가 막히게 좋았다. 역시나 글을 쓰는 지금 다시 침이 고이는 것이 그 증거. 밀크 티와 함께 나온 샌드위치는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달달한 듯 고소하고 고소한 듯 달달한 맛도 있던 샌드위치는 묘하게 맛있었다. 꼭 드셔 보길 권한다.
그때, 같은 좌석에 앉은 홍콩인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칭찬하는 액션을 취해줬던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웃음의 소통을 잠시 나눈 것 같은 느낌이 어렴풋하다.
언젠가 출장으로 방문했던 중국에서 빼갈을 맛있게 마시는 것을 보고 기뻐하던 중국 공안 아저씨의 기억이 겹쳐진다. 자기 나라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은가 보다. 한식 사랑하는 외국인들이 많아지는 것에 조금 국뽕이 차오를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우리도 매한가지. 음식은 사랑인가 보다. ^^
이제 마지막 여행지 홍콩 소호 거리에 위치한 영화 속의 그곳 '미드 레벨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영화 '중경삼림'이란 제목만 들어도 심쿵한다.
갓 사회인으로 방송일을 시작했던 시절인 듯하다. 이번엔 중경삼림의 왕자웨이 감독의 미장센에 흠뻑 빠져있던 후배가 떠오른다. 입술 라인이 선명하게 화장하던 그 후배는 나중에 결국 드라마 작가로 데뷔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중경삼림'과 '태양은 없다'를 좋아하던 그 후배는 본인도 그만큼의 미장센을 가질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 했었는데. 지금은 어찌 살고 있을까?
비에 옷이 젖고, 땀에 옷이 들러붙고.
습한 날씨의 표본을 보여주던 홍콩은 축축한 날씨만큼 추억 놀이에 흠뻑 젖게 만들던 짧은 여행지였다.
공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에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계속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우산 없이 메뚜기처럼 건물과 건물 사이를 누비며 버텼는데 결국 남은 옥터 버스 카드 비용으로 우산과 칫솔을 사들고 다시 홍콩 국제공항으로 돌아왔다. 후배가 샤워하러 간 사이, 나는 아이폰을 충전하고 미국인으로 보이던 외국인은 갤럭시를 충전 중이던 기억이 난다. 조금 아이러니했다. 내가 아이폰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지?
습하던 날씨 때문에 아프리카까지 항공 시간 내내 냄새가 날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양치와 물티슈를 적절히 사용하여 해결하고 드디어 꿀잠을 예약한 상태로 비행기에 올랐다.
깜깜한 밤에 꿀잠을 예약하고 남아공 항공에 탑승, 요하네스버그를 향해 출발했다.
어쩌다 갑자기
살짝이 가보게 된 아프리카.
일주일 만에 준비해서 떠나게 된
나의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이다.
코끼리 사자 기린 모두 기다리고 있었던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