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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똥가리 Sep 26. 2021

죄송한데요

송편 때문에.

일 년에 두 번, 명절이 되면 온 가족이 이유 불문하고 부모님 집에 모인다. 부모님이 거의 평생을 살았던 좁디좁은 아파트에 올 추석에도 가족 모두가 집합했다. 아직도 부모님을 모시고 명절을 지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선 늘 행운으로 여기는 마음을 품고 산다. 설거지 하나 하는 것도 못 미더워서 잔소리에 군소리를 취미로 하는 엄마지만 소중하고 감사하다. 아버지에게 과일 포크를 건네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방바닥 청소를 하듯 부모님 집에서 기어 다니던 조카들은 쑥쑥 자라서 '덩치 큰 그룹'이 되어가고 있다. 반면, 20대 시절부터 보았던 올케들과 나와 동생은 부모님 뒤를 이어 늙어가고 있다.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나이 들어서 힘들다."에 동의하는 그룹이다.


청춘이 되어가는 10대 조카들과 청춘이 그리운 늙은 어른들이 모여서 윷놀이와 고스톱을 치는 것이 우리 집 명절의 풍경이다. 엄마를 위한 이벤트다. 나는 당연히 "나이 들어서 힘들다." 그룹의 대표적 주자이다. 나이 들고 힘들어진 늙은 그룹은 추석에 송편을 사서 먹기로 몇 해전부터 합의를 했다. 


 "송편도 사야 하는데 집 옆 방앗간이 코로나 때문인지 문을 닫았더라." 


추석 전전 날,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 내용인데 "송편 사와."라는 말이다. 

송편 종류가 뭐가 맛있고 뭐가 어떻고. 

누가 어떤 송편을 좋아하고 등등. 한 참을 통화한 후 일찍 오라는 말과 함께 통화를 끝냈다.


다음 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시장으로 나섰다. 울산에서 꽤나 오래되고 큰 시장이라 맛집이 많다. 보약을 먹은 듯 땀까지 빼게 해 주던 칼국수 집과 감칠맛 나던 김밥 파는 가게 등에 한 끼 해결을 위해 방문한 적이 있지만 명절 음식을 사러 가보긴 처음이다. 

이 날, 시장을 돌아다니던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죄송한데요"다. 


"죄송한데요..." 

죄송한 말은 안 해야 맞는데 나이 든 그룹이 된 다음부터 갖추게 된 언어 습관이다.

죄송하지만 꼭 말해야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청춘이던 시절에는 죄송할 것 같은 말은 하지도 않았다. 

쿨하게 그냥 사고, 그냥 먹고, 그냥 물었을 뿐인데

나이가 들고 나서는 죄송해도 묻고 또 묻는다. 때론 따지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다는 억하심정으로.


코로나가 맞나 싶게 북새통 같던 시장에서 사람들은 마스크를 끼고서 추석 음식과 장보기를 하느라 분주했다.

쭉 가던 중에 보이는 떡집을 방문했다. 송편 한 팩에 7천 원. 떡돌이인 덩치 큰 조카 1명이 1분 만에 먹어치울 값이다. 헐. 어떡하지? 그 순간 내 뇌가 알아서 "죄송한데요"를 장착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이 날의 "죄송한데요"는 엄마의 잔소리 면피용 기능을 갖추고 작동됐다.


"죄송한데요, 저건 무슨 떡이에요? 얼마예요?" 

"죄송한데요, 저기 저건요?" 

죄송한데요... 죄송한데요...


가격표가 팩에 붙어 있지 않은 데다 떡 종류도 확인이 안 된다. 

엄마가 사 오라고 명한 메인 송편은 "깨 넣은 송편". 

떡집에 놓인 송편은 하얗고 초록이고 분홍이고, 색깔만 구분이 될 뿐이라 정신없이 바쁜 가게 사장님과 시선이 마주치길 기다렸다 물어야 한다. 그래서 죄송하다. 

돈을 내는 건 나지만, 그래도 죄송하다. 따끈따끈 만들어져 나오는 송편은 누가 채가는 듯 금세 팔린다. 부족하거나 빈자리가 생기지 않게 떡이 나오자마자 팩에 나눠 담아 파느라 가격과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따로 부착할 시간은 없어 보인다. 그나마 팩이 아닌 박스 상품에는 매직으로 쓰인 글자들이 보인다.

깨송, 녹송, 콩송......


"죄송한데요... 이게 깨인가요?"

"죄송한데요... 깨랑 뭐가 같이 들어갔나요?"

"죄송한데요,,, 얼마예요?" 

"죄송한데요.. 팩은 얼마? 박스는 얼마예요?" 


미칠 노릇이다. 엄마는 깨송을 메인으로 하고 다른 종류도 골고루 한 번 사 오라고 했다. 넌지시.


"죄송한데요,, 녹송은 뭐예요?" 


그때였다. 


"이거 맛있어요. 노인네들이 억수로 좋아해. 송가루에다가 녹두를 넣은 건데.. 별미라 별미. "


떡을 사러 온 어떤 아주머니가 짬을 내서 송편 소개를 해주신다. 

나의 죄송함을 없애주는 기적 같은 말들이 그 이후에도 시원한 폭포처럼 쏟아졌다.


"저, 깨송은 팩보다 박스로 사야지. 식구들 입에 갖다 붙일라믄 팩은 택도 없어요."
"식구가 몇 명? 작은 거 살라고 왔어요?" "팩은 5천 원. 박스는 2만 5천 원."

"여기가 제일 싸. 괜히 다른 데 뱅뱅 돌다가 다시 왔네, 나도."


여름날의 폭포수 같다.

아주머니 말씀을 들은 떡집 사장님이 잠깐 숨을 고르며 방긋 웃으신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한데.


"녹송은 시부모님 갖다 드리면 좋아해요. 맛있어~맛있어~무 봐요(먹어봐요.)"


나는 싱글인데.....

우리 엄마라도 좋아하면 됐지, 뭐. 


"감사합니다." 


시장 안 떡집에서의 "죄송한데요~"가 고달파질 즈음 나서 주신 그 아주머니의 말씀.

별거도 아닌 일인데 지금도 입꼬리에 살짝 웃음이 난다. 친절 같은 흔한 것 때문은 아닌 것 같다.

허물없음 같은 것이다. 


나이 들면서 생겨난 두 가지 언어 습관이 있다.

"죄송한데요"를 남발하면서도 꼭 물어야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이 하나이고, 내가 아는 게 있으면 모르는 사람일이라도 끼어들어 알려주기가 나머지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습관이 음양의 조화로 생겨난 것임을 오늘에야 깨달았다.

오늘 나는 전자의 언어의 습관으로 시장에서 서 있었고, 아주머니는 후자의 언어 습관으로 내 옆에 서 계셨다. 


올 추석에는 깨송 한 박스를 사서 집으로 갔다. 

그리고 까다로운 우리 엄마의 입맛을 생각해 호불호를 대비해서 구입한 녹송 1팩 추가.

어린 조카들을 위한 바람송(팥이 들고 분홍, 초록, 하양 색색깔 고운 떡) 1팩 추가.


송편은 맛있었다. 점심 대신 송편으로 한 끼를 해결하던 조카들. 시장을 다시 가야 하나 싶어 잠시 식은땀 나던 기억도 행복이다. 코로나 때문에 물가가 오르고 있으니 송편 가격도 바뀌겠지.

내년에도 다시 "죄송한데요"를 하러 떡집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또 다른 아주머니를 만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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