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백이가 항상 평온하고 반성만 하는 건 아니다.
아이가 커 갈수록 힘이 세져서 이제는 엄마한테 주먹으로 덤비려고 할 때도 있다.
그날은 애아빠가 집에 있었으니까 토요일이었던 거 같다. 뭐가 원인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내 기억력 저하도 병이 원인이긴 하지만...) 여하튼 태블릿과 관련해 아침부터 엄청난 짜증을 부리기 시작해서 온 식구가 하백이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럴 땐 집안 분위기가 다운되면서 하백이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신랑은 워낙 바르고 착실하게 자란 사람인 데다 인내력이 좋아서 화 한번 내지 않고 하백이의 짜증을 견뎌내며 받아줄 건 받아주고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고 구분을 해가며 상대해주고 있었고, 나는 내 감정이 얽매여 들어갈까 봐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저녁즈음 되자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짜증과 화내는 소리를 들어야 했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뿐이 아니었다. 그 소리를 들은 사춘기 첫째의 화. 둘째와 셋째와의 싸움. 집안이 하루종일 난리법석.
결국 칼을 빼들었다.
"김하백!!!!"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던 것이다.
"너 아침부터 지금까지 짜증 내고 화낸 거 알아?"
"알아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이때 나는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말로 차분히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소리를 지르며 얘기하니 가뜩이나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아이한테 먹힐 리가 없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소리를 막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에 나는 화가 나서 엉덩이를 한 대 쳤고 그에 화가 난 하백이가 갑자기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달려온 신랑이 나의 양 손목을 잡고는 하백이와 사이에 서서 나를 막기 시작했다. 얼마나 꼼짝도 안 하던지 남자의 힘을 그때 실감했다.
내가 밀자 신랑이 나를 뒤로 밀기 시작했다.
"일단 안방 가서 쉬고 있어요."
하백이는 그런 나를 따라오며 발로, 손으로 때리더니 급기야는 머리채를 잡았다.
나는 헛웃음 밖에 나오질 안았다.
미친년처럼 웃음밖에 안 나오더라.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가 엄마 머리채를 잡다니...
"이거 놔. 당장 놓으세요. "
하지만 신랑은 놓지 않았다. 조울증인 엄마를 놓으면 내가 자식을 죽이기라도 할 것 같았나 보다.
"애가 머리채를 잡는데 이걸 그냥 둬? 놓으라고"
결국 나는 신랑한테 소리를 지르며 놓으라고 말했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내가 장난감 총을 들게 되었고 신랑이 다시 내 손을 잡으면서 총을 놓쳤다. (이미 이때부터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 같다.) 하지만 그 총을 잡았던 건 내 온몸이 결박되어 있었기 때문에 휘두르려고 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나도 총을 잡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백이는 그게 위협이 되었던 것 같다. 그때 당시 나는 그걸 몰랐다.
그 와중에도 나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엄마 머리채를 잡아 이 녀석이."라고 소리치며 하백이를 계속 혼냈고 신랑은 계속 나를 말리기 바빴다.
"일단 좀 들어가 있어요. 내가 말해볼게. "
그러면서 나를 계속 안방 쪽으로 밀었다. 나를 안방에 밀어 넣고는 하백이랑 말을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말리는 신랑 때문에 이성을 잃었고 화가 났다.
문제는 여기서 일어났다. 하백이는 아까 내가 든 총을 들고는 몸부림치며 발광하는 나를 보며,
"엄마 죽여버릴 거야"라고 소리쳐버린 것이다.
그에 나는 더 이성을 잃었으며,
"너 이놈의 새끼. 진짜 두들겨 맞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어디서 엄마한테 그런 말을 써."
라고 험한 말을 하기 시작했고,
옷이 찢어지도록 신랑을 떼어내기 위해 악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신랑을 떼어낼 순 없었고 그의 의도대로 그의 힘에 의해 안방에 억지로 들어간 뒤에야 종결이 되었다.
나는 안방에 들어간 채 울었다.
신랑이 그렇게 말리지 않았으면, 그렇게 하백이가 내 머리채를 잡지 않았을지도, 몇 번 훈계를 하고 넘어갔을지도 몰랐을 텐데... 그리고 사건이 이렇게 커지지도 않았을 텐데...
아이는 아버지를 등에 업고 의기양양하게 엄마를 때렸고 머리채를 잡았고 죽여버릴 거라고 했으며, 신랑은 그런 말을 하는 아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나를 강제로 진압해 안방에 넣는 행동까지 했다. 옷이 너덜너덜 해지도록 힘을 써가며...
난 비참했다.
신랑은 내가 어른이고 아픈 사람이니까 내가 아이를 어떻게 할까 봐 그랬다고 하지만 그랬어도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무조건 그렇게 옷이 찢어지도록 힘을 써가며 막았던 것이 무조건 맞는 행동이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안 한다고 해서 내가 내 자식을 TV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학대를 했을까?
그렇게 안 하고 싶어 병원에 달려가 살려달라고 울었던 나다. 그렇게 안 하고 싶어 하루에 11개나 되는 약을 매일 먹고 있는 나다. 그런 내가... 내 아이를?
그리고 그전에 내가 아이를 어떻게 할까 봐란 전제부터가 슬펐다. 신랑부터도 나를 편견의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이.....
난 너무 상처를 받아 신랑이 날 만지는 것조차 싫었다.
"나 만지지 말아요. 상처받아서 아프니까 당신 손 닿는 거 너무 끔찍하고 싫어요. 이럴 거 알면서 나랑 왜 결혼했어. "
한동안 그의 손이 닿는 것조차 몸서리 쳐졌다.
난 단언한다. 신랑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사건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신랑이 내 손이 아니라 하백의 손을 잡았다면 난 하백이를 훈계정도로만 끝내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신랑의 입장도 이해한다고 했다. 처음 시작이었었던 때면 몰라도 신랑이랑 몸싸움으로 그 화가 엄청 많이 났던 중에 놓였다면 아마 아이를 훈계하는 것으로 끝내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매로 다스렸겠지. 그건 인정이 되었다. 하지만 난 지금 생각해도 나를 그렇게까지 만든 신랑이 밉고 아직도 서럽다.
하백이하고는 그날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내 마음이 너무 상해서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내 마음이 풀리고 나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랑은 그날 밤, 몇 시간 후 바로 하백이를 사과하러 나에게 보냈다.
"엄마 죄송해요."
"뭐가 죄송한데... "
하백이는 우물거리더니
"화내고 짜증 내고..."
그리고 말을 못 하고 서 있었다. 나는 그에 아무 말도 안 하다가 결국...
"어느 자식이 엄마를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머리채를 휘어잡고 죽일 거라고 그래? 그건 잘못된 거야. 그거 정말 잘못한 거라고.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 네"
"엄마는 지금 너무 기분이 안 좋아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할게. 네 마음은 알았으니까 그만 가봐."
그날은 그렇게 끝냈고 하백이는 아이답게 그다음부터 신나게 놀아대기 시작했다.
그래. 저 아이도 아픈 아이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나도 아픈 걸.... 이렇게나......
그날은 나한테 너무나 큰 상처를 남긴 하루였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이 사건을 쓰기 너무나 많이 망설였고, AD엄마 HD아들 작가님께서 ADHD아들을 아픈 아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는 글을 보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발행글을 눌러봤습니다.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일들만 있다면 좋겠지만 저처럼 이렇게 실패할 때도 있거든요. 문제는 제 자신이겠죠. 저는 아이를 때렸고 아이를 흥분하게 만들었어요. 조금 더 현명하게 반응할 순 없었을까. 여긴 정말 훌륭한 엄마도 많은데 그런 자괴감도 듭니다. 또 그런 일이 안 일어날 보장도 없어요. 그럼에도 또다시 안 그러겠다고, 다시 사랑해 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총은... 다시 들지 말아야지요. 때리지도 말고요. 그러나 신랑이 아직까지 미운건... 그도 잘못한 게 아니니 마음 풀어야겠지요. 그러나 속상한 건 속상한 거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