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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카 Jul 15. 2023

남편이 아닌 남자에게 고백받은 이후

남편의 가상 오피스와이프

가끔 남편이 조그마한 선물을 들고 온다. 뭐냐고 물으면 아는 후배가 고마워서 준 선물이란다.


그런데 그 크기가 매우 작다.


뭐 아메리카노 한잔.


생일 땐 케이크(아 이건 큰가? 매년 챙겨줬으니...)


놀러 갔다 오면 작은 거북이 유리공예 같은 거?(설마 이 글을 보고 있진 않겠지? 정정하겠다. 학 공예로...)


그런 크고 작은 선물을 한지 몇 년째...


워낙 남자들이 많은 회사라 난 당연히 남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자...


"아니 왜 여자인 거 말 안 했어요?"

"굳이 말할 필요 있나요? 까마득한 후밴데?"

"아니 그래도 기분 나쁘잖아요."

"뭐가 기분 나빠요. 내가 관심 없으면 됐지."


이미 일친 나로선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몇 년이면 나보다 먼저잖아?


그리고 난 그 이후로 비꼬기 시작했다.


"오늘은 오피스와이프 수연(멋대로 이름 지어서)에게 안부 전해주세요."

"수연이 누구예요.?"

"당신의 오피스와이프요."

"....."


신랑은 어이가 없어하며 피식 웃었다.


그다음 날도 난 말했다.


"오늘은 정은이에게 안부 전해줘요."

"정은이는 누군데요?"

"당신 오피스와이프요."

"......"


신랑은 또 피식 웃었다.


그다음 날도 난 또 말했다.


"오늘은 수연인가요? 정은인가요? 아님 미팅인가요?"

"미팅은 맨날 하죠."

"사랑의 짝대기?"

"......"

"잘 골라와요. 새로운 오피스 와이프. 이번에는 간덩이 좀 큰 여자로. 쩨쩨하게 조그마한 선물이 다 뭐람. 좀 큰 선물 사달라 해. 이왕이면 향수 같은 걸로."

"... 왜 그래요... 그런 사람 없어."


신랑이 한숨을 쉬래 내가 말했다.


"알았어요. 장난은 여기까지 하는데... 그 사람한테는 선물 같은 거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해줄래요? 와이프가 별로 안 좋아한다고."


뭐... 속 좁은 여자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언제는 헤어지자 난리 치더니 이런 거에 질투한다고 해도 난 원래 변덕쟁이인걸...


"내가 이러는 게 싫고 그 사람이 좋고 그 사람도 당신 좋다 하면 이혼해도 좋아요. 대신 애도 데려가. 나 애들도 싫으니까. 나 모성애고 뭐고 없어."


요즘 들어 간덩이가 부어터졌나보다. 툭하면 이혼이혼...

모성애도 없나 보다. 그냥 시댁에서 구박받고 그러면 애부터 미워진다. 


시어머니는 내가 이혼얘기는 절대 못 꺼낼 거라 생각했는지 14년 동안 폭언을 했다. 그동안 신랑방패막이가 되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남편이 나한테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이유도 있다.


내가 시댁이랑 인연 끊고 싶어 '시댁에는 내가 얘기 못하겠으니까 당신 어머니는 당신이 설득하라'라고 그러니 신랑이 한 얘기가 '내가 우울증이어서(조울증이라고 하기엔 좀 그랬나 보다) 시댁에 당분간 못 가겠다'라고 한 거였다.


"나 병자 만들어놓으니 좋았어?"(병자 맞긴 하지)


이혼 얘기를 처음 꺼낸 건 이때였다.

'폭언 얘기하지 않으면 난 이혼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땐 정말 죽고 싶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어서...


그 이후로는 둘째가 ADHD판명이 나고 너무 힘들어서 그냥 다 포기하고 싶었다. 나보다 좋은 엄마가 어디엔가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그런 엄마 구해달라고 이혼 얘기를 꺼냈다. 아니면 나 그냥 버려달라고 얘기한 적도 있었다. 그냥 죽었으면 싶었다.


요즘은 그래도 조금 낫다. 약을 먹고 있어서인지...


그래도 의욕은 잘 안 생긴다. 항상 텐션이 낮다. 


아이들에게 충분히 해줘야 할 것들을 못해줘서 미안하긴 하다. 그런데 나 한 사람조차 건사하는 것도 못하겠는 걸...

그저 죽어라 버티고 있다. 그저 죽어라... 그게 아직까진 내 한계다.




여하튼  그때 여실이 느꼈다.


사랑만 가지고 사는 건 현실에서 말이 안 된다는 걸...


그건 꿈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가상 오피스 와이프 사건은 이제 그만해 달라며 거의 울먹하는 남편의 애원으로 끝이 나긴 했지만... 뒤끝이 안 좋은 건 내가 나쁜 년이 된 것 같아서다.


나도 남자한테 고백받고 울음이 났다고 말한 것이(그래도 배째라고 한다면... 말한게 어디야) 잘한 건 아니지만... 몇 년 동안 꾸준히 생일 챙겨주고 작든 크든 챙겨주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그냥 화가 났다.


그 뒤로 선물을 가져오지 않긴 하지만...




에너지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아예 우울이라면 그렇게 다그칠 힘도 없을 텐데...

분노, 짜증 아니면 낮은 텐션이라니...

파이팅 하는 것만도 힘들다. 약으로 분노와 짜증은 어느 정도 조절은 되지만 이 우울감은 사실 조절이 잘 안 된다. 

조울이란 병에 기대어 너무 자기 합리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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