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냐냐 Aug 18. 2017

예민해진다.

나를 예민하게 만드는 세 가지 유형.



첫 번째는 대화의 맥락을 모르겠는 유형이다.


옷을 좋아하냐 물어서 좋아한다고 답했더니 전 여친에게 얼마 짜리 옷을 얼마나 쿨하게 얼마만큼 선물하곤 했었는지를 늘어놓는다.


-옷 좋아함?

=좋아함

그렇다면,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느냐

혹은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느냐

혹은 그래 옷을 잘 입는 것 같다

이런 대화의 흐름이 되어야 하지 않은가...?



두 번째 모든 걸 다 아는 유형.


내가 사진을 좋아한다 말하면 그는 반드시 이전에 사진을 찍었던 경험이나 사진을 좋아했던 경험이 있거나 집에 아버지가 쓰시던 좋은 카메라가 있거나, 주변에 내게 소개하여줄 만한 유명한 프로 사진가가 있지만 실제로 만나본 경험은 없다.


미술 하는 친구의 전시가 있어 다녀왔다 말하면 그는 반드시 이전에 자신도 미술을 좋아했고, 미술관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으며, 자신 역시 미술을 전공한 친구가 여럿 있으며, 내게 소개하여줄 만한 유명한 미술가가 있지만 실제로 만나본 경험은 없다.


내가 음악을 전공했다고 말하면 그는 좋은 이어폰을 여러 개 가지고 있지만 지금은 번들 이어폰을 쓰고 있거나, 집에 좋은 음향 장비가 있거나 재즈 클럽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으며, 자신도 재즈는 좀 들었었다 말하지만......말을 말기로 하자.


내가 좋아하는 맛집이 있다면 그곳은 그 역시 잘 알고 여러 번 다녔던 맛집이라는데 오랜만에 와서 그런지 길은 모른다.


왜 그러는 건데.

질문에 대답하기도 겁난다.

나 지금 어디 있다고 하면 거기 예전에 항상 다니던 곳이라 잘 안다고 답한다. 제발!!!!



세 번째 근본 없는 네거티브형.


나는 평가를 원하지 않는다. 조언도 원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요즘 이런 걸 하고 있단 얘기가 대화중에 나왔고, 보여달라고 하길래 보여줬을 뿐이다.


서른이 넘어하는 조언이란, 정확하고 조목조목 해야 한다. 뭣보다 상대가 그걸 원할 때에 한하여.

"음 글쎄 뭔가 요즘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 뭐 어쩌라고 요즘 스타일이 뭔데 

요즘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이게 요즘 추세고 지금 한건 조금 이전 스타일. 네가 의도한 거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한번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아" 할 수 있지 않으면 좀 다물고 있어라. 나 좋자고 하는 취미 활동을 니가 대체 뭐라고 평론질이냐.


복합형태의 모든 걸 다 아는 근본 없는 네거티브형도 있다.

"나도 주변에 이런 거 하는 사람이 많아서 잘 아는데......."






34살의 3/4 지점에 서있다.

내 시간은 여전히 내 것이 아닌 듯 흐른다.

그래도 제법 나일 먹었기 때문에 이젠 주변 풍경을 즐길 줄도 알고 보기 좋은 몇 개의 돌탑을 쌓아놓기도 하고

다른 이의 시간에 발도 담가봤다.... 안 맞더라.


경험은 판단력을 키웠고

판단력은 냉정을 키운다.

원래도 따듯한 편은 아녔던 나는 특히나 사람에게 냉정해지고 있다.


나라고 완전무결한 것도 아닌데 너무 사람을 평가하고 선을 그으려 하는게 아닌지 걱정하던 시기도 잠깐 있었지만... 취향은 달라도 된다. 삶의 방향이나 이유가 다른 건 흥미롭다.

그러나 무의식은 살면서 쌓아온 모든 것을 행동과 말투를 통해 압축하여 발현시킨다.

그러니 말투와 행동이 거슬리는 건 더 알아봤자 더 싫어질 뿐이니 돌아서라는 신호와 같다. 그랬다.


"세상의 사랑을 축내지 말자"

승은 씨의 노래 넌 별로 날 안 좋아해의 한 구절이다.

사람을 많이 만나봐야 안다는 게 내겐 맞지 않았다.

내겐 만남과 이별을 통해 쌓이는 경험치보다 피로도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고, 그래.

그놈이 그놈이었다. 

죄다 사랑만 축내고 끝나버렸다.


그렇지만, 

여전히 인연을 기다린다. 내 영혼의 반쪽을 메꿔줄 한 사람 말이다.


나는 점점 사람에게 예민해지고 있다.

아니다 싶으면 딱 돌아서게 됐다.

스스로가 냉정해진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건 나빠지는게 아닐꺼다.

인연이 나타났을 때 단번에 짚어서 낚아채도록 반사신경을 훈련하는 것이리라.

그렇게 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