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보다 흑백에 더 끌릴 때

by 이태화


고등학교 1학년 때인지 2학년 때인지 가물가물하다. 검은색을 긁으면 흰색이 나오는 판에 그림을 그렸다. 흰 종이에 검은색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검은 종이에 흰색으로 그리는 식이다. 익숙하던 검은색과 흰색이 바뀐 것도 재미있었고, 사각사각 긁는 느낌도 좋았다. 당시 미술 선생님은 터치 한 번만 잘못 해도 뒤통수를 후려갈기던 싸이코라서 미술 시간이 무서울 때가 많았지만 저 때만큼은 재밌게 작업했던 기억이다.


종종, 아니 자주 흑백에 더 끌린다. 흰 종이에 검은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더 좋을 때가 많다. 색칠을 하고 나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독립 출판한 책 <인생 연출>도 흑백이 컨셉이다. 컬러는 비싸기도 하고 제대로 된 출판사와 작업을 하지 못한 것도 이유겠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그냥 흑백이 더 좋았다.


화선지에 먹을 찍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흑백 만의 고요함이 있다. 깔끔하다. 때로는 강렬하고, 소박하다. 어둠과 밝음에 더 집중하게 되고 저절로 그라디에이션이 보이는 신비한 경험도 하게 된다. 오래된 느낌을 주지만 세련되어 보이고, 오래된 느낌 때문에 그윽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 그냥 흑백에 더 끌릴 때가 있다.


어떤 색에 끌리나?

그 색은 어떤 느낌을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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