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발표하는 기자회견문을 써보라. 그 일에 대중이 관심을 가지
고, 기자들은 기사를 쓰겠다고 결심할 만큼 설득력 있게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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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이 자리에서 기독교를 믿는 크리스찬이 되겠다는 결심을 밝히려 합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어? 너 원래 기독교인 아니었어?"라고요. 맞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인으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보니 가족들이 다 기독교인인, 그런 집안에서 자랐지요. 그러다보니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일요일이 되면 무조건 가족들과 함께 교회를 가야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고, 그렇게 그 문화에 익숙해졌고, 일요일엔 으레 교회에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물론 불만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일요일에 남들처럼 늦잠을 자고, 오전에 하는 TV 만화도 보고 싶었고, 친구들과 놀러가고 싶은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허락되지 않았지요. 그래도 중학교 때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교회 고등부 오빠를 짝사랑하게 되는 바람에, 교회에 가는 것도 즐거웠거든요.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그러니까 나름대로 머리가 커진 다음부터는 '도대체 내가 왜 이래야 하는가?'에 대한 불만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추한 일들에 대해서도 반발심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신앙인이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안 믿는 착한 사람들만도 못하게,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거나, 목사님이 십일조 내라는 설교를 할 때마다 하나님은 어차피 돈 쓸 데도 없으실 텐데, 이건 다 교회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괴로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매주 교회 나오라고 강요하는 것 자체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남의 뜻이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래서 교회를 떠났습니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거역하고, 예배에 나가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나의 운명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사주명리, 별자리, 타로 등등 온갖 역술 분야를 배우러 드나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우주의 에너지에 대한 영성 공부에도 몰두했었지요. 다 흥미로웠고, 재밌었고, 유용했습니다. 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세상이 돌아가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살다가 막힌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오면, 나도 모르게 교회에 가서 앉아있곤 했습니다. 그 당시 내게 교회란, 내 힘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을 때, 나보다 더 큰 힘에 의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즉, 내가 원하는 게 있는데, 내가 되고 싶은 게 있는데, 좀 도와주시죠? 하는 식이었죠. 주체는 어디까지 나이지만, 하나님 당신이 그렇게 크고 능력있고, 또 자기 사람들을 아낀다고 하니, 저한테 힘 좀 빌려주십쇼 하는 식의 접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뻔뻔한 요구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평소 스스로를 낯이 두꺼운 편은 아니라고 믿어왔었는데, 하나님 앞에서는 진짜 염치고 뭐고 하나도 없는,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그런 캐릭터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한다. 그러니 당신이 도와라.
아주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오만방자하게 진행되어왔던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이제 뒤집으려 합니다.
이것은 제게는 아주 중요한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저에겐 제 뜻, 제 의지, 제 생각, 이런 것들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이걸 내려놓는다는 것은 마치 내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너무도 두렵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것이 남의 뜻대로 끌려다니는 거라고 생각하는 제가,
이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저 자신을 내맡기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장이 벌렁벌렁 뛸 만큼 무서운 일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죽으라고 하면 죽겠다, 하는 결심과도 같은 일입니다.
내가 탄 자동차의 운전대를 하나님에게 넘기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애초에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마치 자신이 운전하는 것처럼 뻐기면서 다니지만,
실은 뒤에 있는 부모가 그 장난감 자동차를 밀어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니 사실 이건 운전대를 넘기네, 내 뜻을 내려놓네, 이런 문제가 아닌 거죠.
그냥 인정하는 겁니다.
어이쿠, 제가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라고요.
오늘의 선언을 계기로,
지금까지 내 선택으로, 내 노력으로, 내 열심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한 모든 일들을 다시 생각해보려 합니다.
과연 정말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요.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