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 글쓰기 좋은 질문 444번

by 마하쌤

* 세상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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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을 상상한 적이 있다.

요즘 가능한 시나리오로는,

거대한 자연 재해나 제3차 대전으로 인한 핵폭탄, 혹은 요새 만든 드론 폭탄(?) 같은 것이 제일 유력하지 않나 싶다.



예전에야 전쟁이 터지고, 재난이 발생하면, 어떻게든 짐 싸서 이고지고 피난이라도 가고 그랬지만,

요즘 재난과 신무기들은 훨씬 더 거대해져서, 그럴 시간과 장소를 허용하지 않는 것 같다.

피할 도리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런 '세상의 끝'이 오기 전에,

그냥 보통의 죽음(?)으로 평범하게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만 용케 '세상의 끝'을 보기 전에 먼저 죽어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세상의 끝'을 맞이할 걸 생각하면, 그냥 다같이 한 방에 죽는 게 나으려나 싶기도 하다.




이 죽음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유일하게 확실한 운명인데,

언제, 어떤 방식으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야말로 정말 신비한 일인 것 같다.



그게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내내, 내가 가진 최고의 궁금증이기도 하다.

과연, 나는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죽게 될까?



작년 가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 곁에서 나홀로 임종을 지키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버지는 81세에 파킨슨병으로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는데,

과연 나는 몇 세에, 무슨 병으로, 어디서 죽게 될까?

그리고 죽음의 순간에 나는 혼자 있게 될까, 아니면 곁에 누가 있게 될까? 있다면 그건 누구일까? 하고.



아마 나는 죽음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아! 바로 이렇게였구나!' 하고 오랜 궁금증이 드디어 해소된 표정으로 죽게 될 것 같다. ㅋㅋㅋㅋ



세상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아니, 거의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일들을 대할 때마다 설레임과 놀라움으로 맞이하고 싶다.

수없이 많은 가능성 중에서 내가 당첨된 한 가지를, 투덜거리지 말고 재밌게 받아들이고 싶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도 나에게는 고칠 수 없는 통증이 있다.

한 달에 보름 정도는 꼬박 앓아야 한다.

하지만 참 감사한 것이,

통증이 그렇게 심해도, 밥을 먹을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다.

물론 얼굴은 죽상을 하고, 허리를 꼬부랑 할매처럼 구부려야 하지만,

그래도 할려면 할 수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을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내겐 세상의 모든 병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그 중에서 하필 이게 걸린 거라면, 이것의 장점에 감사하면 그만이다. 단점은 견디면 그만이고.



세상의 끝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어떤 종류의 끝에 당첨될진 모르지만, 그것 또한 수많은 가능성 중에 내게 주어진 하나일테니,

'와우! 바로 이거였군...' 하면서, 그 죽음의 좋은 점을 생각하며 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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