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에서 보내는 당신의 마지막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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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별로 이주하는 일정이 어제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앞으로 딱 1년 후. 그러니까 올해가 내가 지구에서 보내는 마지막 해인 셈이다. 날짜가 정확히 정해진다는 것은 좋은 점이 꽤 많다. 왜냐하면 남은 날들을 헤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눈을 뜨면서 '아, 이제 지구에서 보낼 수 있는 날이 364일 남았군'이라고 생각했다. 이 숫자는 매일 조금씩 줄어들거고, 언젠가는 '아, 이제 지구에서 보낼 수 있는 날이 30일 남았군', 혹은 '3일 남았군'하는 그 날도 오고야 말테지. 그렇게 남은 하루하루를 더 귀하게, 소중하게 여기며 살게 될 것 같다.
지구에서 50년 평생 살아온 내 삶을 뒤돌아보면, '참 좋았다'라고밖엔 할 말이 없다. 지금처럼 공기가 오염되고, 농산물이 흉작이고, 온갖 자연재해로 신음하기 전까지, 지구는 내가 그 존재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에게 좋은 것만을 제공한, 참으로 풍요로운 땅이었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사계절이 뚜렷했을 뿐 아니라, 모든 날씨들이 각 계절다웠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봄은 봄답게 눈부시게 아름답고 온화했으며, 여름은 여름답게 화끈하게 더웠고, 가을은 가을답게 화려하고 시원했으며, 겨울은 겨울답게 화끈하게 추웠다. 모든 것이 '쨍한' 느낌이었다. 분명했고, 확실했고, 이건 이거구나 하고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구가 어느 순간부터 기후 위기를 겪게 되면서, 모든 것이 흐리멍텅해졌다. 4월의 봄에도 눈이 내렸고, 5월에도 계속 추웠으며, 장마가 아닌 우기가 된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폭우가 쏟아졌다. 겨울의 한기는 도를 넘어서 시베리아 한파가 골수를 얼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여길 떠나게 된 거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날 날을 생각할 때마다 내 안에는 지구에서 보낸 좋았던 시절에 대한 감사가 먼저 떠오른다.
산이 주는 청량함에 감사한다. 눈을 들어 주위의 먼 산을 볼 때 그 푸르름이, 그 녹색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바다가 주는 광대함에 감사한다. 언제고 찾아가 영원히 계속되는 파도를 볼 때마다 나는 괜찮아질 수 있었다. 공기가 주는 편안함에 감사한다. 그동안 한 번도 숨 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특히 새벽 공기가 주는 그 생명력 넘치는 맑음에 감사한다. 인간의 생명은 숨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사 새삼 느끼게 되었다. 땅이 주는 견고함에 감사한다. 수시로 구멍이 뚫리고 뒤집히지 않는 땅 위에 서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중력이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고 있다는 것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세상에 넘쳐나던 사람들에 감사한다. 어디를 봐도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던 그 시절이 눈물나게 그립다. 그 다채로움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노인만 가득하고 아기 울음소리가 완전히 끊긴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마지막으로, 세상이 망할 것이라는 것, 세상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조차 없이, 모든 것이 영원할 거라 믿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던 시간들에 감사한다. 세상의 끝이라는 게 이렇게 쉽게 올 줄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 평생 걱정만 하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무지함과 생각보다 둔했던 마음에도 감사해야 하려나?
망가진 지구에서의 1년을 더 버티고 견뎌야 하는 걸 힘들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남은 1년 동안 지구에게 그동안 미처 감사하지 못했던 모든 일들에 대해, 온 마음을 다해 충분히 감사하고 떠날 작정이다. 지구를 이렇게 망친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이었기에, 떠나는 그 날까지 계속해서 사과하고, 감사하고, 그러고 가야겠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아직 364일이나 남아 있어서 진심으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