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 글쓰기 좋은 질문 549번

by 마하쌤

* 당신이 지금까지 겪은 최악의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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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일은 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공개된 글쓰기를 통해 말할 수 있는 걸 하나 골라보자면...


종로에 시네코아가 있던 시절,

일본 영화제 상영작 중 하나를 보려고, 오후 2시 경에 시네코아에 갔었다.

나는 늘 맨 뒷자리에 혼자 앉아서 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때도 맨 끝자리에 의자가 딱 2개만 있는 자리로 예약을 했다.

당시 한창 인기 많았던 일본 여배우 미야자키 아오이를 보며 막 영화에 빠져들려던 찰나,


영화가 시작한지 15분 정도 됐으려나,

어떤 중년의 남자가 숨을 헉헉거리면서 상영관 입구에 들어섰다.

보통은 극장에 들어오면 아무리 숨이 차도, 숨소리를 좀 낮추려고 신경을 쓰는 게 보통인데,

이 남자는 오히려 더 들으란 듯이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속으로 '뭐지?' 그런 생각을 하며 영화에 다시 집중하려 했는데...


이 남자가 내 쪽으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참고로, 그 때의 극장은 거의 텅텅 비어있다시피 해서,

앞 쪽에 대여섯 명 정도, 중간에 서너 명 정도, 그리고 뒤쪽에는 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남자가 계속 위로 위로 올라오는 거다.

살짝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저 사람도 뒤에 앉아서 보는 걸 좋아하나보다... 생각하려 했건만,


오. 마이. 갓.


이 남자가 내 바로 옆 자리에 앉는 거다. @.@

내가 아까 분명히 예약 좌석 확인했을 때는, 내 옆에 아무도 예약한 사람이 없었다.

자기가 예약한 자리가 아닌 게 분명했다.

덩치는 크고, 바로 내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숨은 헐떡거리고,

자리가 이렇게나 많은데, 왜 꼭 여길 와서 앉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참고 참다가 조용히 일어나 두 칸 앞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남자의 쌍욕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흉측한 욕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자기를 무시했고,

자신에게 모욕감을 주었으며,

그래서 나를 잔인하게 찢어발겨 죽여버리겠다, 뭐 대충 이런 얘기였다.


정말이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무작정 도망쳤다가 이 사람이 쫓아오면 그땐 더 큰일이 날 것만 같고,

그렇다고 거기 계속 앉아서 영화 끝날 때까지 저 소리를 듣고 있을 수도 없고,

그래서 기회를 노리다가, 영화가 어두운 장면으로 바뀌면서 극장 전체가 어두워진 순간,

가방을 움켜쥐고 전속력으로 달려서 일단 상영관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나는 달리기가 빠르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뛰다간 잡힐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아서,

일단 화장실에 들어가 몸을 숨겼다.

다리가 안 보이게 변기 뚜껑 위에 올라가 쪼그리고 앉아서, 숨 죽이고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동태를 살폈다.


그렇게 한참을 숨죽이고 있다가,

그 사람이 쫓아오는 기색이 없는 걸 확인하자,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달려서 극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종로에서 대학로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그 이후로 시네코아가 없어질 때까지,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둘 밖에 없는 의자 옆 자리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예약하면,

예매했던 것을 취소하는 버릇이 생겼다.


평생 잊지 못할 공포 영화 같은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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